거듭된 실패와 좌절, 한 때 자살을 시도했다

우부현자(愚父賢子)...어떤 영원히 사는 길

등록 2009.09.01 14:58수정 2009.09.01 14:5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몇 해 전 같은 사무실서 근무했던 선배님이 작고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나는 다른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바람에
그 선배님의 부음(訃音)은 이미 장례가 치러진 뒤에서야 비로소 듣게 되었다.
그 분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지인과 저녁을 먹으면서 물었다.

"문상객은 많이 왔습디까?"
허나 지인은 금세 손사래를 쳤다.
"말도 마슈, 나도 마당발 이상으로 상갓집을
다닌다고 자부하는 사람인데 그처럼 썰렁한 장례식은 처음 봤수."

순간 아서 밀러의 희곡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이 떠올랐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가족을 위해 급기야 보험에 가입하곤 자살을 하는.

물론 선배님의 사인은 자살이 아닌 자연사였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선배님에게도 아내와 자식이 있었으되
어찌된 연유인지 집을 나와 객지서 먹고 자며 출근했던 분이었다.

좋아하는 거라곤 밥보다 술이었으며 담배는
하루에 얼추 두 갑 가까이를 태웠던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야위더니 그예 그처럼 허무하게 가셨구나... 싶어 마음이 착잡했다.


나도 선배님과 같은 비정규직의 세일즈맨인데
그렇다면 나도 죽을 적엔 그처럼 문상객이 없겠지?!

사람을 일컬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렇다고 한다면 왜 오늘날 사망자 중
자살이 차지하는 비율은 갈수록 증가하는 것일까.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그런 때문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슬픔, 그리고
괴로움과 분노 따위가 뒤범벅되면 누구라도 죽음이라는 걸 한번쯤은 떠올리기 마련이다.

다신 떠올리기도 싫지만 여하튼 나에게도 죽음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얼씬거린 적이 있었다.
거듭되는 실패와 앞이 안 보이는 안개 같은 좌절의
겹겹이는 자연스레 자살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까지 초청하게 되었다.

나는 죽어도 가족들만큼은 그나마 살아야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에 후배를 불러 보험에 가입했다.
그리곤 물에도 뛰어 들었고 만취하여 가드레일이라도 받고
죽을 요량으로 고속도로에도 차를 몰고 들어섰다.

하지만 그건 죄 실패했고 남은 건 더욱 눅진한 우울증과
1년간 면허정지, 그리고 벌금 300만 원의 부과였다.
벌금을 낼 돈이 없어서 차라리 교도소에 들어갈까도 생각했다.
그럼 최소한 자살만큼은 미연에 막을 수 있을 듯 싶었다.

하지만 문득 떠오른 건 그로 말미암아
내가 '전과자'가 되면 내 아이들이 받을 불이익 등이었다.
아무리 못 났기로서니 아비가 되어 자식의 앞길을 막아서는 안 되는 노릇이었다.

그 바람에 지인에게서 돈을 빌려 벌금을 내긴 했다.
그렇지만 하루가 다르게 우울증의 농도는 더욱 가중되었다.
행시주육(行尸走肉)이란 건 바로 당시의 나를 두고 한 말에 다름 아니었다.

생업보다는 술이 먼저였다.
술을 마시면 어쨌든 괴로운 현실은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는 때문이었다.

허나 궁극적으로 그같은 현실에서의 '도피행각'은
나의 건강을 더욱 갉아먹는 자충수일 뿐이었다.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그야말로 뒤죽박죽으로
살고 있을 무렵에도 세월은 저벅저벅 잘도 갔다.

고 3이었던 딸이 수능을 앞둔 즈음부터 수시전형으로
대학 입학원서를 내고, 아울러 대입에 대비하고자 동분서주하기 시작했다.
남들처럼 학원은커녕 학교의 공교육비조차 제 때
납부해 주지 못한 무능한 아비라는 자조에 딸을 보기에도 미안하기만 했다.

하여간 내가 정신을 차려야만 죽을 쑤든 밥을 해도 할 노릇이었다.
여전히 없는 살림이었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대입 면접고사 준비와 직접 해당 대학에까지 가서
원서를 접수하는 일정에도 차질이 없도록 노력했다.

이윽고 마침내 결과가 발표되었다.
딸은 그 해에 S대학교와 모 의대에 동시에 합격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지독한 가난과 음습한 집안분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그예 관철시키고야 만 딸이 너무 고마웠다!
감사와 미안함이 교차하면서 참을 수 없는 눈물이 마구 솟았다.

아울러 지난 날 나의 경거망동이 묵직한 회한으로 다가왔다.
다시 뛰자!!

마음을 다잡고 밑바닥부터 다시 뛰기로 했다.
딸은 그러니까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한 동인(動因)이었다.
지금도 느끼는 건데 우리 부녀(父女)는 우부현자(愚父賢子)에 다름 아니었다.

딸은 이듬해 상경하였고 휴학을 한 작년을 빼고
9월 1일인 오늘 다시금 4학년 2학기로 복학하였다.
어느새 5년 차의 서울생활을 하고 있는
딸인지라 이젠 얼추 '서울사람'이 다 된 녀석이다.

올해로 5년 째 딸에겐 매달 얼마씩을 보내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늘 그렇게 허덕이는 삶의 수레바퀴는 여전하다.

혹자는 "그처럼 명문대학생이라고 하면 알바 과외를
해도 돈을 벌어서 졸업한다던데?"라고도 하지만 나로서는 전혀 가당치 않은 말이다.

딸은 4년 연속으로 장학생으로 자리매김하였기에
기실 등록금 납부에 있어선 별 부담이 없었다.
해당 대학 외에도 별도의 장학재단서 준 장학금이 큰 힘이 된 때문이다.

그렇긴 하더라도 매달 딸에게 용돈을 부치자면 늘 그렇게
조족지혈의 적은 금액이란 자괴감으로 말미암아 마음은 항상 시렸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전시킬 작심으로 나갔던 게
지난 1월의 모 방송 퀴즈 프로그램이었다.

거기서 달인이 되면 자그마치 기천만 원이나 되는
거액을 일거에 획득할 수 있는 때문이었다. 
그러면 딸은 물론이요 아들에게도 용돈을 듬뿍듬뿍 안겨주고
딸에게 4년 동안이나 장학금을 주신 딸의 대학에도
적지 않은 금액을 장학금으로 쾌척할 요량이었다.

허나 그같이 야무진 꿈은 나 자신의 능력부족으로 신기루처럼 날아가 버렸다,
오늘 고 장영희 교수와 연관된 뉴스를 보았다.

극심한 암 투병 중에도 강단에 서 희망을 노래했던
고 장영희 교수의 유족 측이 서강대에 5억 원대의 장학금을
기부하겠다는 것이 관심을 끈 뉴스의 골자였다.

장 교수는 세상을 떠나기 한 달여 전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듯
장례식에 나와 자기 장례 일을 도울 대학원 제자들을
위한 용돈과 격려 e메일을 미리 남긴 사실까지
그의 죽음 직후 전해져 세상 사람들의 가슴을 적신 바 있었다.

이같은 뉴스를 접하니 다시금 사람은
어찌 죽어야 잘 죽는 것인가... 하는 화두에도 잠시 몰입이 되는 것이었다.

한 때 자살이라는 유령이 꼬리처럼 따라붙어 당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실제로 우둔한 실행까지도 한 바 있었으나 이젠 아니다.

'자살을 하면 집안이 모두 안 좋다'는 풍설은 논외로 치더라도
기왕지사 한 번뿐인 내 인생을 이처럼
어이없이 죽을 순 없다는 사관이 생성된 까닭이다.
그것도 자연사가 아닌 스스로는 더 더욱이나.

이제 두 아이는 대학 졸업반 2학기로 접어들었다.
올해만 더 고생하면 내년엔 대망의 졸업이다!

취업을 하고 못 하고는 두 녀석이 다 잘 났으니
스스로 해결할 몫이라서 걱정은 안 한다.
다만 내가 지금부터 바라는 건 아이들이 졸업을 하고
그로 말미암아 나 역시도 현재의 궁핍에서 벗어나면 반드시(!) 내 딸이
받았던 고마움, 즉 장학금에 대한 되갚음(기부)을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죽으면 종국엔 가루처럼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내가 남기고 간 장학금은 내 딸처럼 어려웠던 학생에게도
힘이 되고 결국엔 미래의 가장 확실한 투자까지 될 터이니
그렇다면 이게 바로 어떤 영원히 사는 길 아니겠는가!

죽었으되 실은 지금도 살아있는 장영희 교수처럼.

덧붙이는 글 | ‘죽음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응모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죽음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응모글입니다
#특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이 기자의 최신기사 [사진] 단오엔 역시 씨름이죠

AD

AD

AD

인기기사

  1. 1 "연봉 천만원 올려도 일할 사람이 없어요", 산단의 그림자
  2. 2 은퇴 후 돈 걱정 없는 사람, 고작 이 정도입니다
  3. 3 구강성교 처벌하던 나라의 대반전
  4. 4 [단독] "문재인 전 대통령과 엮으려는 시도 있었다"
  5. 5 내 차 박은 덤프트럭... 운전자 보고 깜짝 놀란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