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가 실직되지 않았더라면?!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시오노 나나미/오정환 옮김/한길사)

등록 2009.09.01 18:01수정 2009.09.0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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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 이명화

▲ 시오노 나나미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 이명화

시오노 나나미의 저서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오정환 옮김/한길사)를 만났다. 조금 딱딱한 면도 없지 않아 있어 마치 단단한 식물을 먹을 때, 꼭꼭 씹어서 삼켜야 하는 것과 같은 번거로움과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마키아벨리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 시대적 상황과 역사를 배경으로 깔고 있어 마키아벨리뿐만 아니라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그 시대의 다양한 인물들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마키아벨리란 인물을 시오노 나나미의 눈으로 바라보며 쓴 책이기에, 시오노 나나미의 시선으로 인물을 보며, 또한 그 안에 나의 시선을 접목해 바라보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왜, 마키아벨리를 쓰게 되었을까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인과 결혼까지 해서 살고 있는 시오노 나나미는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산탄드레아 산장의 마당에서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쿠폴라가 보이는 것을 안 것은, 15년 전 어느 가을'이었다고 말한다.

 

'구름 사이에 놓인 아름다운 장식물 같은 그것을 바라보면서 그는 언젠가 마키아벨리를 써야지 하고 마음먹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이 나오기 훨씬 전, 15년 전부터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는 삭고 또 곰삭고 있었던 결과물인 것이다.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라는 제목 또한 그때 이미 정했다고 한다.

 

마키아벨리가 산탄드레아 산장에서 은둔했던 장소를 돌아보며 마키아벨리의 그때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마흔네 살의 마키아벨리가 모든 것에서 격리된 채 거처하는 산장, 피렌체에서 10킬로미터의 거리는 단순한 10킬로미터가 아니고 마당에서 보이는 마리아 델 피오레는 단순하게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고 말한다.

 

"푸줏간 주인과 밀가루 장수와 두 사람의 벽돌공을 상대로 하찮은 돈을 건 카드놀이에 넋을 잃고, 남의 존재도 아랑곳없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자기는 불한당이 되겠다고 말하는 마키아벨리, 그렇게 함으로써 뇌에 눌러 붙은 곰팡이를 긁어내고, 자기에 대한 운명의 장난을 향해 분노를 쏟아 부은 그. 이처럼 자기를 짓밟는 것은 운명의 신이 자기를 괴롭히는 것을 여전히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마키아벨리. 그의 이 같은 분노는 생계의 길만 끊긴 자가 느끼는 분노와는 그 강도와 질이 다르지 않았을까? 사람에게는 누구나 그 사람만이 특히 필요한 무언가가 있는 법이다. 그것을 빼앗겼을 때, 그것에 관심이 없는 자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탈취당한 본인의 노여움은 처절하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책을 통해 마키아벨리란 인물을 말함은 물론이거니와, 마키아벨리를 주인공으로 앉힌 것은 마키아벨리의 생애가 곧 피렌체공화국의 쇠퇴기와 중첩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동체 의식이 강했던 베네치아 공화국과는 달리 피렌체공화국은 개인주의의 도가니 같았으니, 피렌체의 통사를 쓰려면 그 시대를 반영하는 개인의 생애를 쓰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즉, 마키아벨리를 충분히 묘사하면 피렌체공화국, 그리고 그 피렌체에서 태어난 르네상스의 쇠퇴를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책은 전체가 제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마키아벨리가 태어난 해인 1469년에서 공직에 취임하는 1498년까지의 29년간을 다루고 있으며, 여기서 저자는 마키아벨리가 '무엇을 보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2부에서는, 1498년에서 1513년의 15년간을 이야기 한다.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피렌체 공화국 제2서기국 서기관의 시대이다.

 

스물아홉 살에서 마흔네 살로 접어들기까지의 시기인 셈이다. 제2부에서 주제를 이루는 것은 '마비아벨리가 무엇을 하였는가'에 대해 썼으며, 제3부에서는 1513년에서 1527년에 이르는 시기의 마키아벨리를 이야기한다. 그가 실직한 해에서 죽을 때까지의 기간이다. 제3부에서는 마키아벨리가 '무엇을 생각했는가'를 이야기한다.

 

마키아벨리는 누구인가?

 

책을 열면서 본문 첫장 첫 구절에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눈을 뜨고 세상에 태어났다. 소크라테스처럼, 볼테르처럼, 갈릴레오처럼, 칸트처럼..."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프레촐리니의 저서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생애>의 첫 구절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1469년 5월 3일, 피렌체 시내에서 태어났다.

 

아르노 강에 걸린 폴테 베키노 다리까지 1분, 그것을 건너 시가의 중심 시뇨리아 광장까지 가는 데는 대로를 걸어가도 5분이 걸리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아버지의 '비망록'에 의하면 일곱 살 때 문법과 읽기, 쓰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열네 살에 산수와 부기, 열두 살에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적혀 있다. 이것은 당시 중류계급 이상의 자제는 거의가 다 받는 교육이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데생을 잘 그리는 아이라면 곧장 공방에 제자로 들여보내기 때문에 학교에는 다니지 않는다고 하니, 마키아벨리는 그 방면의 두드러진 재능은 없었던 것 같다. 마키아벨리는 대학출신도 아니었다. 그의 친구이면서 역사가인 바르키한테서, "어느 쪽이냐 하면, 학문이 별로 없는 사나이"라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공무원이 된 마키아벨리, 꽃의 도시 피렌체, 그 피렌체가 르네상스의 황혼이 짙어가는 피렌체에서 벌어진 잦은 정변과 음모, 내분과 외침, 세도가의 끊임없는 흥망성쇠가 펼쳐지는 가운데서 '의자가 뜨뜻해질 겨를도 없이' 동분서주했던 그는 결국 15년간의 공직에서 해직되었고, 자신의 재취업을 위해 명망가들에게 자신의 저서를 바치기도 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거리낌 없이 애썼지만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갔다.

 

대학을 나온 적도 없으며, 중키에 작은 머리, 용모도 빈상이었던 그는 또 거동도 경망했고 점잔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약지 못하고, 놀기를 좋아했지만 맡은 일에 대해서는 의자가 뜨뜻해질 겨를도 없이 뛰어다녔고, 일을 시키면 기대이상으로 해치울 뿐 아니라, '욕심꾸러기 할망구'처럼 스스로 일을 찾아 신나게 해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당시 로마 주재 피렌체대사가 정세분석보고서를 부탁할 정도였다고 한다. 대외적으로 협상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불려갔고, 여러 나라에 파견되어 왕과 군주, 지도자들을 만나 교섭하고 협상하곤 했다. 그러나 그의 신분은 여전히 낮았고 결정권은 그가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그래서 그의 '진언'은 채택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그랬던 그가, 마흔세 살의 사나이 마키아벨리가 어느 날 갑자기 직장에서 해고된 것이다. 마흔세 살의 남자에게 해직을 당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스물아홉 살 봄부터 15년간 근무해온 피렌체공화국 제2서기국 서기관직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출장비가 적어서 가끔 툴툴거리기도 했지만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진정 마음에 들었고 기대이상으로 해냈다. 어떤 비리나 업무상 실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나 돌연 해임당한 것이다. 공화정체가 무너지고 그동안 추방되었던 메디치가가 다시 정권을 장악하면서부터였다.

 

'욕심꾸러기 할망구'처럼 일을 끌어안고 일을 즐기며 생활했던 15년간의 나날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의 공직생활은 거기서 어느 날 갑자기 끝이 온 것이다. 그는 그동안 해 왔던 모든 것을 갑자기 박탈당했을 뿐만 아니라 반메디치의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체포당했으며 고문을 당했던 그에게 10년치 봉급에 해당하는 벌금까지 부과되었다.

 

실직, 그리고 새로운 시작

 

산탄드레아 산장에 틀어박히게 된 마키아벨리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는 아주 오래도록 재개를 꿈꾸었던 것 같다. 온갖 수단을 다해 여러 방면으로 재취업에 매달린 것을 볼 수 있다. 로마 교황청의 피렌체 대사로 파견되어 있던 친구 '프란체스코 베트리를 비롯해 여러 사람에게 자기의 복직을 부탁하는 글을 보내는 등 취업에 미련을 오랫동안 버리지 못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원치 않았던 은둔생활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이 제2의 인생을 예고했다. 그는 낮에는 생계를 위해 노동하고 선술집에서 노동자들과 어울려 노름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술을 마시기도 하다가 밤에는 예를 갖추고 관복으로 갈아입고 '옛 사람들이 있는 옛 궁전에 입궐'하면서 그의 저서들이 탄생했던 것이다. 프란체스코 베트리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이 있다.

 

"밤이 되면 집에 돌아가서 서재에 들어가는데, 들어가기 전에 흙 같은 것으로 더러워진 평상복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네. 예절을 갖춘 복장으로 몸을 정제한 다음, 옛 사람들이 있는 옛 궁정에 입궐하지. 그곳에서 나는 그들의 친절한 영접을 받고, 그 음식물, 나만을 위한, 그것을 위해서 나의 삶을 점지 받은 음식물을 먹는다네. 그곳에서 나는 부끄럼 없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행위에 대한 이유를 물어보곤 하지. 그들도 인간다움을 그대로 드러내고 대답해 준다네. 그렇게 보내는 네 시간 동안 나는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네. 모든 고뇌를 잊고, 가난도 두렵지 않게 되고, 죽음에 대해 공포도 느끼지 않게 되고 말일세. 그들의 세계에 전신전령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겠지. 나도 그들과의 대화를 <군주론>이라는 제목의 소논문으로 정리해 보기로 했네..."

 

칩거와 고독 속에서 그의 명저 <군주론>이 나오고 <전략론>이 나오고 여러 저서들이 나왔다. 낮에는 생계를 위해 일하고, 밤이면 관복으로 갈아입고 깊은 독서에 몰입하면서. 마키아벨리의 인생은 관료로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는 역사에 정치 사상가이자 역사가로 남았다.

 

탁월한 근대정치사상의 기원이냐 교활하고 기회주의적인 정치가냐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마키아벨리를 시오노 나나미는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책을 덮을 즈음, 독자들에게 물음을 던진다. '독자 여러분, 이 책을 다 읽고 나신 지금, 여러분에게도 마키아벨리가 '나의 친구'가 되었습니까?'하고 말이다.

 

글쎄, 과연 그는 내 친구가 되었을까?! 아직도 나는 그를 잘 모르는 것을. 다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만약에 마키아벨리의 삶이 관료로서 끝이 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때도 마키아벨리가 글 쓰는 자로 남았을까. 그의 이름이 역사에 남았을까, 생각하게 했다. 필경 그의 이름은 그의 죽음과 함께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43살, 한창의 나이에 정치적 혼란과 최고 권력자가 바뀌면서 열정과 맡은 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깊어지고 의욕이 아직도 충천하고 일할 수 있는 날들이 창창하게 남아 있을 그 나이에 그는 관직을 해직 당했다. 뿐만 아니라 반 메디치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당하였고 고문을 당했으며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산탄드레아 산장에 틀어박히게 되었다.

 

'생각하고 쓰는 일밖에는 할 일이 없는' 은둔생활 가운데서 처음에 그는 어떤 심경이었을까.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서는 최선뿐 아니라 기대이상으로 잘했던 일을 즐기며 했던 사람이 팔다리가 다 잘린 것처럼 갑자기 일이 없어진 상태로 그는 어떤 상태였을까. 아마도 한 동안은 공황상태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가 인식했든 못했든 그의 삶은 지금부터 또 다른 인생으로 접어든 것이었다. 처자가 딸린 가난한 삶 속에서 낮에는 노동을 하고 밤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고뇌와 고독의 산고 끝에 <군주론>을 비롯해 <전략론> 등 그의 저서들이 태어났던 것이다. 관직을 박탈당한 뒤 그는 본의 아니게 '글 쓰는 사람'이 되었고, 글 쓰는 사람이 되었기에, 그의 저서들이 사후에 빛을 얻었고, 그의 이름이 역사에 남게 되었던 것이다.

 

단테가 추방당하지 않았더라면 그 위대한 <신곡>이 탄생하지 않았을 것과 마찬가지로 마키아벨리가 관직을 박탈당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그의 이름과 저서는 역사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소개: 시오노 나나미

1937년 7월 7일 도쿄에서 태어나 학습원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뒤, 이듬해인 1964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어떤 공식교육기관에도 적을 두지 않고 혼자서 공부했다. 서양운명의 모태인 고대로마와 르네상스의 역사현장을 발로 취재하며 오랜 세월 동안 로마사에 천착하고 있는 그는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도전적 역사해석과 소설적 상상력을 뛰어넘는 놀라운 필력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한길사/오정환 옮김)2003년 4월 30일 2판3쇄 발행/ 값:15,000원

2009.09.01 18:01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한길사/오정환 옮김)2003년 4월 30일 2판3쇄 발행/ 값:15,000원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시오노 나나미 지음, 오정환 옮김,
한길사, 2002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마키아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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