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들어 강사 1천여 명 '우수수'
바른 소리 하던 교수들 다 어디 갔나

[보따리강사 이야기 18] 학생들만 "학습권 침해" 반발

등록 2009.09.10 22:19수정 2009.09.1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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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 개강을 계기로 한풀 꺾일 법도 한데 좀처럼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름방학과 함께 시작된 잔인한 시간강사 해고바람은 언제나 잠잠해 질까. 따지고 보면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이 가져왔다. 더 잔인하고 무서운 건 전국 각 대학에서 많은 시간강사들이 거리로 쫓겨나고 있지만 누구도 공론화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강사를 거친 많은 교수들이 대학에 있다. 시간강사 제도의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공론화하지 않는 이유를 학생과 학부모들은 어떻게 해석할까. 이슈가 너무 작아서 일까. 정치적 이슈엔 물불 가리지 않고 나서는 교수들도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주류언론을 자처하면서 각 대학을 평가하고 서열을 매겨 줄 세우기를 밥 먹듯 하던 언론들도 이 문제에 관해선 무섭게 침묵하고 있다.

오히려 학생들이 나서고 있다. 이 문제를 학습권과 연계시켜 학보사나 학내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공론화하려는 노력이 차라리 눈물겹다. 이와 함께 몇몇 진보성향의 언론이 최근 이 문제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갖고 심도 있게 보도함으로써 해촉바람 앞에 떨고 있는 수많은 지식노동자들의 위안이 돼 주고 있다.

시간강사 해촉자료, 대학마다 철통같이 보안유지 해오더니...

a 시간강사 해촉현황 김진표 국회의원이 공개한 시간강사 해촉현황 자료.

시간강사 해촉현황 김진표 국회의원이 공개한 시간강사 해촉현황 자료. ⓒ 김진표

비록 소수이지만 이 같은 개혁의 시도와 변화를 갈망하는 노력들은 꿈쩍도 하지 않던 국회를 움직이게 했다. 각 대학들이 그토록 쉬쉬하며 시간강사 해촉자료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더니 한 국회의원의 관심이 일부이긴 하지만 해촉자료를 파악해 공개했다.
긴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해촉통보를 받기 시작한 시간강사들이 대학본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시간강사 정책에 어필한 대학들, 엄밀히 말하자면 비정규직교수 노동조합분회가 설립된 대학들 외에는 거의 대부분 대학들이 해촉현황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특히 언론에는 철통같은 보안유지를 해왔다.     
   
그러나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김진표 민주당 의원이 참을 수 없었던지 팔을 걷어붙였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제출받은 '대학별 시간강사 해촉 현황' 자료를 10일 공개했다. 그동안 다른 주류언론, 특히 보수신문들이 심층적으로 다루지 않던 시간강사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온 <한겨레신문>이 발 빠르게 전했다.

'시간강사 추풍낙엽...2학기 1천여명 잘렸다'란 제목의 기사에서 전국 112개 대학에서 해고된 대학 시간강사를 비교적 자세히 밝혔다. 기자도, 부장도, 국장도 많이 놀란 눈치다. '추풍낙엽'이란 표현을 제목으로 뽑았다.   

기자도 각 대학별 해촉현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자 김 의원 측에 세부자료를 요청했다. 자료를 전달받은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부분 전국 각 대학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고루 해촉해 왔던 것이다.           


각 대학들, 쉬쉬하며 시간강사 1219명 줄줄이 해촉하다니...

a 김진표 의원  민주당 김진표 국회의원 홈페이지.

김진표 의원 민주당 김진표 국회의원 홈페이지. ⓒ 김진표


김 의원 사무실 관계자는 "일반, 산업, 교육대 등 전체 200개 대학 가운데 절반가량의 집계 결과"라며 "앞으로 추가 자료를 합칠 경우 전체 해촉된 시간강사 수는 더욱 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에게까지 88개 대학은 한 달 가까이 자료 제출을 미루고 있다고 하니 철통보안 자료임에는 분명한 듯하다. 


'대학별 시간강사 해촉 현황'에 따르면 비박사이면서 올 2학기 강의를 맡을 경우 연속 4학기 이상 강의하게 돼 지난 1학기부터 해촉 된 강사수가 112개 대학 중 1219명에 달했다. 이는 각 대학들이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되기 이전과 이후에 지속적으로 시간강사들을 해촉해 왔음이 드러났다. 해촉 강사가 10명 이상인 대학은 다음과 같다.

▲국립대: 충남대(10명)
▲사립대: 경남대(71명), 고려대(75명), 국민대(37명), 그리스도대(31명), 단국대(47명), 대진대(95명), 동국대(69명), 세명대(34명), 수원대(53명), 아주대(36명), 우석대(34명), 전주대(36명), 중부대(16명), 한국외국어대(124명), 한남대(195명), 한라대(18명), 한림대(53명), 한세대(13명), 한신대(21명), 호남대(27명)  -가나다 순- 
▲산업대: 우송대(66명)  

가장 많은 강사를 해고한 대학은 한남대 195명, 한국외국어대 124명, 대진대 95명 순으로 나타났다. 대학 유형별로 보면 112개 대학 가운데 80개 사립대에서 해고한 강사는 1208명, 32개 국·공립대학에서 해고한 강사는 11명으로 사립대학의 해고 강사 수가 훨씬 많았다.

이에 대해 한남대 측은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 대학 홍보팀 관계자는 "비정규직보호법안은 고용된 이후 2년 연속 근무한 근로자를 대상으로 적용하므로 매 학기 단위로 시간강사를 임용하는 대학의 경우 올 2학기(9월1일 임용자)부터 적용대상이 된다"며 "전체 해촉강사 195명 중에는 지난 1학기에 해촉된 189명이 포함돼 있어 2학기에는 사실 6명만이 해촉됐다"고 밝혔다.

항의조차 못하고 쫓겨난 강사들... 학생들 "학습권 침해, 부당해고"    

a 시간강사 해촉대상 김진표 의원이 공개한 시간강사 해촉현황 자료.

시간강사 해촉대상 김진표 의원이 공개한 시간강사 해촉현황 자료. ⓒ 김진표

이번에 해고된 시간강사들은 2학기 개강에 앞서 4학기 연속으로 강의한 강사들 가운데 박사학위가 없는 강사들로, 이들은 2년 이상 강의를 맡았기 때문에 비정규직보호법에 의한 정규직 전환 대상이라는 점을 들어 대부분 대학이 해촉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서  방학 중에 시간강사 70명을 무더기 해촉한 부산대는 제외됐다. 대학측과 부산대 비정규교수 노조분회 사이의 갈등이 해당 강사들에게 주 5시간 미만의 강의를 배정하는 것으로 해결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최근 2학기 개강을 앞두고 연속 4학기(2년) 이상, 한 학기에 5시간 이상 강의한 비정규교수 가운데 박사학위가 없는 강사들을 무더기 해촉한 대학들이 부산대 외에도 많지만 강사들과 대학간 단체협약 또는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무노조 대학들은 항의조차 못한 채 막무가내로 떠밀리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2학기를 앞두고 연달아 강의가 취소된 진중권 전 겸임교수가 수업을 맡기로 했던 중앙대와 홍익대도 뒤숭숭한 사정은 비슷하다. 중앙대의 경우 수업이 폐강된 것은 물론 진 전 교수의 해임을 반대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징계까지 검토하고 있어 학습권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처럼 각 대학과 강사들 사이에 빚어진 갈등과 마찰의 골이 깊어가고 있는 가운데 학생들은 개강하자마자 '학습권 침해' 또는 '무리한 비정규직법 적용'이라며 대학과 맞서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각 대학신문의 2학기 첫 호에서 묻어난다. 

"비정규 강사 문제는 학생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연구자의 문제"

a 강사해고 규탄... <고대신문>이 내보낸 강사해고 규탄집회 기사.

강사해고 규탄... <고대신문>이 내보낸 강사해고 규탄집회 기사. ⓒ 고대신문


<고대신문>은 10일 '강사해고 규탄집회 열려'란 제목과 함께 "지난 4일 민주과장에서 '비정규강사 해고 규탄대회'가 열렸다"는 내용을 부각시켰다. 기사는 "이날 집회엔 안암총학생회,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비정규교수노조 고려대분회 등이 참여했다"며 "비정규강사 문제는 학생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연구자의 문제기도 하다"고 밝힌 이지웅 대학원총학생회장의 말을 인용해 무게 있게 실었다.

부산대학교 학보사 <부대신문>도 방학 중에 일어난 강사들과 대학간의 갈등 문제를 크게 다뤘다. 학보사는 인터넷을 통해 설문조사도 실시했다. '우리 학교가 비정규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비정규교수 70명을 무단해고 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란 질문에 10일 현재 '해고한 것은 잘못이다'에 응답한 학생은 85%에 달했으나 '해고할 수밖에 없다'에 응답한 학생은 15%로 나타났다. 

a 비정교수 교수 집단 해고사태 마무리? 부산대 학생들이 제작한 <부대신문>.

비정교수 교수 집단 해고사태 마무리? 부산대 학생들이 제작한 <부대신문>. ⓒ 부대신문


<부대신문>은 이 외에도 기획기사 '비정규 교수 집단 해고사태 마무리'의 기사에서 "주당 5시간 미만 강의에 합의했을 뿐 전원 복직은 불투명한 상태다"고 전하면서 해고 통보에서 최종합의까지 과정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중앙대학교 학보사인 <중대신문>은 개강하자마자 '교수 해임 논란, 학생징계까지…점입가경'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진중권 겸임교수의 재임용 불가 판결을 둘러싼 학내 또는 사회적 논쟁에 초점을 맞춘 기사를 내보냈다. 

"지난달 14일 독어독문학과 진중권 겸임교수 재임용 요청이 거부된 이후 학내 여론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각종 포털에는 진중권 교수 재임용 탈락과 학생징계에 대한 논란이  메인기사로 올라왔으며 Daum 기사에는 2천여 개의 댓글이 달리는 등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 또한 중앙대 학생 커뮤니티 카우인에도 180여 개의 관련 글이 올라온 상태다."

"시간강사 제도, 그야말로 21세기 문명시대에 존재하는 야만"

a 진중권 교수 해임 논란 <중대신문>의 진중권 교수 해임 사태 관련 기사.

진중권 교수 해임 논란 <중대신문>의 진중권 교수 해임 사태 관련 기사. ⓒ 중대신문

<중대신문>은 또 '보장받아야 하는 수업권'이란 제목의 기고를 비중 있게 실었다. 학생 입장에서 바라본 주장의 글이란 점에서 더욱 눈에 띈다.
"학생들의 선택권은 제한적이며, 어떠한 권리도 보장받고 있지 않다. 듣고 싶은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수업권을 보장해야 한다. 독문과 학생들의 징계와 같은 사안을 대화와 민주적인 방식을 택하여 해결해야 한다. 학교가 변화한다면 사랑받고 신뢰할 수 있는 중앙대학교로 거듭날 것이다."

서울대의 <대학신문>도 이와 관련된 의제를 개강과 함께 다뤘다. '당정 방관 속 기획해고에 숙청되는 비정규직'이란 제목의 기사는 "지난 7월 이후로 부산대 시간강사 70명은 해고될 위기에 처했었고, 현대차와 GM대우의 비정규직 노동자 1300명이 해고 당하는 등 비정규직 해고사태가 속출하고 있다"며 "그러나 신종플루, 청와대 개각 등 대형 이슈에 밀려 비정규직 문제는 기초생활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형국"이라고 개탄했다.

이처럼 비정규직 교수를 내치는 비정규직보호법이 대학 내부를 뒤흔들고 있는데 대한 불안감이 애꿎은 학생들에게까지 옮겨 붙은 양상이다. 문득 지난 2000년 6월 <인물과 사상(통권 26호)>에 기고한 최영환 박사의 '시간강사는 21세기 문명 시대의 야만이다'란 글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한 때문이다.

"오늘의 대학문제를 논할 경우는 구체적으로 시간강사 문제부터 얘기해야 정당한 출발이라고 믿습니다. 시간강사라는 제도 아닌 제도는 그야말로 21세기 문명 시대에 존재하는 야만이에요. 하지만 어느 대학 교수도 시간강사 문제를 공적으로 강하게 제기하고 자기 문제로 얘기하는 것을 못 봤어요. 그런 의미에서 대학교수들도 오늘 교육 모순의 공범자입니다. 진보 성향의 교수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시간강사 #해촉현황 #김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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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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