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함께 잘살자'는 자연사랑 잡지 하나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2] '한살림' 잡지, <살림이야기> 6호

등록 2009.09.11 18:15수정 2009.09.1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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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일곱 시 이십육 분에 길을 나섭니다. 엊저녁에 서울 충무로 쪽에서 '사진쟁이 전민조 님 사진잔치'가 있어, 이곳에 들러 집으로 돌아오니 밤 열 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아직 잠들지 않은 아기를 안고 어르며 놀고 있자니, 옆지기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당신 눈 반쯤 감겼는데 어여 자요" 합니다. 안 그래도 제 눈꺼풀은 무겁고 따갑습니다.

 

 잠이 든 뒤 거의 깨어나지 않다가, 옆지기가 "여보" 하고 부르는 소리에 퍼뜩 깹니다. 용하게 깹니다. "애기 기저귀 좀 갈아 줘요." 거의 뜨지 못하는 감긴 눈으로 엉금엉금 기어 아기 기저귀를 벗깁니다. 새 기저귀 한 장 집고, 마른 기저귀싸개를 찾아서 바닥에 깝니다. 젖은 기저귀는 빨래통에 담가 놓고 기저귀싸개는 문고리에 널어서 말립니다. 아기 엉덩이와 허벅지를 토닥거리며 젖은 몸이 말리도록 합니다. 1분쯤 뒤 엉덩이를 살며시 들어 기저귀에 대고 살짝 채웁니다. 아기는 깨어나지 않습니다. 돌이 지난 아기는 밤에 자면서 오줌을 적게 눕니다. 한 시간마다 깨서 칭얼거리던 일이 엊그제였는지 언제였는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더없이 고맙다고 느끼면서도 이렇게 한 번 깨는 일도 몸이 무겁습니다.

 

 새벽 여섯 시 이십사 분에 벌떡 일어났습니다. 뿌옇게 밝아 오는 바깥 날씨를 느낍니다. 늦었나? 시계를 보고 한숨을 쉰 다음, 부리나케 씻는방으로 가 머리를 감고 어젯밤 쌓인 기저귀를 빱니다. 빨아 놓은 기저귀를 널면서 셈틀을 켜고, 어제 찍은 사진을 셈틀로 옮겨놓습니다. 메모리카드에서 셈틀로 옮겨가는 동안 가방을 꾸립니다. 다 옮긴 사진파일을 들여다보면서 파일이름을 하나씩 붙이고 작은크기로 바꾸어 줍니다. 이동안 마른 기저귀 넉 장을 갭니다. 시계를 보니 일곱 시 십사 분입니다. 늦겠다 싶어 더 개지 못합니다. 어제 찍은 사진 189장을 다 줄였고, 몇 장을 추려 유에스비에 옮깁니다. 이렇게 하여 대문을 나설 때가 일곱 시 이십육 분입니다.

 

 동인천역에서는 일곱 시 삼십이 분에 용산 가는 빠른전철이 떠납니다. 앞으로 육 분. 맞출 수 있나? 한손에 책을 들고 한쪽 어깨에 사진을 걸친 채 신나게 달립니다. 옛 축현초등학교 자리부터는 걷습니다. 지하도로 들어설 때 조금 뛰다가 다시 걷습니다. 역에 닿으니 삼십삼 분. 떠났을까? 아직 있을까? 밀리는 자동계단을 천천히 걸어올라가니 빠른전철이 막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야,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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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지난 호 <살림 이야기>와 함께 이번 호 <살림 이야기>를 나란히 놓았습니다. 아침에 일 나가는 전철길에는 오른쪽 책을 다 읽었습니다. ⓒ 최종규

겉그림. 지난 호 <살림 이야기>와 함께 이번 호 <살림 이야기>를 나란히 놓았습니다. 아침에 일 나가는 전철길에는 오른쪽 책을 다 읽었습니다. ⓒ 최종규

 

.. "아니, 내가 형 보고 가요? 형님은 그렇게 외롭고 힘들어도 가야 할 길이라면서 가는 거 아니에요. 나도 내 갈 길을 갈 거예요." 했지 … "사람들이 그래요, 넌 맨날 쌈하는 데만 찾아다니냐고. 하지만 난 그게 쌈이 아니고 삶이라고 생각해요." … "나, 제비꽃이 그렇게 이쁜 줄 몰랐어. 아스팔트 틈새에 핀 꽃을 보고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일어설 수가 없는 거야." ..  (문규현 신부/101∼103쪽)

 

 막 떠나려던 전철을 가까스로 잡아타고 가방을 내려놓으며 가쁜 숨을 돌리면서 생각합니다. '푸훗. 이놈아, 1분 늦었는데 전철 잡아타니 기쁘니? 이렇게 작은 일로?'

 

.. 그런 그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거리며 빛을 반짝거리는 논을 발견하게 된다. 예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또다른 아름다움이 그의 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농사에 대해 그 자신이 먼저 공부하고, 세상에 말을 걸기 시작했다. '농사는 예술이다' … "그분들은 다 아시더라고요. 복잡한 전문서적이나 인터넷의 도움 없이도 심을 때와 거둘 때를 다 알고, 언제 물을 대야 하는지, 병충해가 생기면 어찌해야 하는지는 물론, 날씨와 계절, 자연 생태계 이치를 모두 온몸으로 익히고 감으로 실천하고 있었어요." ..  (쌈지 이야기/108∼110쪽)

 

 몇 분 뛰었다고 흐르는 땀을 훔치며 손에 쥔 책을 펼칩니다. 엊저녁에 집으로 온 잡지입니다. 지난달에 이 잡지사 기자가 저를 취재하러 왔고, 억수로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자전거를 몰고 서울마실을 하면서 헌책방에서 만나 책과 헌책방과 사람과 삶 이야기를 길게 나누었습니다. 그때 이야기가 실린 글을 찬찬히 훑습니다.

 

 내 이야기 실린 꼭지를 보며 빙그레 웃습니다. 잘 썼고 못 썼고를 떠나, 제가 왜 빗길에도 자전거를 타며, 가방이 터지도록 산 책을 택배로 부치지 않고 가방에 질끈 챙겨 어깨가 빠지도록 집으로 날라 가는지를 잘 읽어냈다고 느낍니다. 기자한테 책을 한 권 선물하며 적은 쪽글을 기사 끝에 고스란히 옮겨적었군요. "스스로 즐겁게 살아가고자 품은 마음이라 한다면,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든지 내 마음밭은 즐거울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람들 눈이란 찬찬히 살필 노릇이지, 우리가 사람들 눈에 따라 움직여야 할 까닭이 없으니까요.(107쪽)"

 

 서른다섯에 농사지으러 시골로 와서 마흔다섯을 넘겼다는 어느 농사꾼이 쓴 '《월든》 독후감'이 눈에 뜨입니다. 농사꾼 아저씨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 삶을 한 마디로 잘 나타내 줍니다.

 

.. 모두가 꿈꾸는 세속적인 성공이 그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  (142쪽)

 

 이탈리아에서 소를 기르며 소젖을 짜는 농사꾼한테서 들은 이야기는 먼 나라 딴 겨레 이야기라 하지만, 우리 땅 우리 이웃하고도 넉넉히 나눌 만한 따순 깨달음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이탈리아 볼로냐 농사꾼 스테파노 브린타졸리 아저씨는, "요즘은 미국이나 아르헨티나, 브라질, 중국에서 사료를 수입하기도 하더라고요. 하지만 내 손으로 할 수 있는데 그냥 이렇게 농사짓는 게 마음이 더 편해요. 수입산 사료는 유전자조작이 되었을 가능성도 높잖아요? 또, 나중에 배설물 치울 것까지 생각하면 밭에서 농사도 짓고, 소도 먹이는 것이 훨씬 유리하죠.(113쪽)" 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유공장 차리는 대기업한테 따끔할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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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살림 이야기>가 어떤 잡지로 나아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번 호 특집을 대단히 꼼꼼하면서 골고루 담는 매무새로 보았을 때, 슬기롭고 튼튼히 잘 나아가겠다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 최종규

속그림. <살림 이야기>가 어떤 잡지로 나아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번 호 특집을 대단히 꼼꼼하면서 골고루 담는 매무새로 보았을 때, 슬기롭고 튼튼히 잘 나아가겠다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 최종규

 

.. "저희처럼 작은 목장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생우유를 많이 찾기 시작하면서 큰 유제품 기업에서 정부를 대상으로 압력을 계속 넣고 있어요. 살균하지 않은 우유는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허위정보를 바탕으로 말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언제부터 왜 우유를 살균해서 먹기 시작했는가를 살펴보면 그 답이 나오거든요. 큰 기업에서 유통기한을 늘려 더 먼 곳에서, 더 많이 판매하려고 살균을 시작한 걸 대부분 잘 모르고 있어요." ..  (114쪽)

 

 재미있다고 느끼면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얼마나 더 많은 사람한테 나눌 수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한살림'에서 철잡지로 어느덧 여섯째 책을 펴낸 《살림이야기》라는 잡지를 얼마나 많은 이한테 선보이면서 좋은 느낌과 생각을 주고받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집부터 일터까지 나오는 전철길에 《살림이야기》 6호를 다 읽어냅니다. 서대문역에서 내려 한글회관까지 걸어가면서 차례를 다시금 살펴봅니다. 여섯째 《살림이야기》는 "고기를 먹는 일"을 특집으로 삼는데, 이 특집 하나를 자그마치 스물한 꼭지나 싣습니다. '고기 좋아!' 하고 외치는 이들 목소리를 '고기 싫어!' 하고 외치는 목소리와 나란히 다룹니다. '고기는 알맞게!' 하는 목소리에다가 '고기는 무엇인가!' 하는 목소리 또한 알차게 담깁니다.

 

 일터에 닿아 눈코 뜰 새 없이 일을 보고 난 낮나절, 다시금 잡지를 들추며 '정기구독' 길잡이를 읽어 봅니다. 한 해에 18000원, 두 해에 34000원, 세 해에 48000원입니다. 이달 끝물에 일삯이 들어오는데, 이참에 이 잡지도 하나 받아볼까? 이따 집으로 돌아가면 인터넷으로 자동이체를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 《살림이야기》 : '한살림' 펴냄, 철 따라 한 번씩

 └ 정기구독 : 02-3498-3791 / www.salimstory.net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인터넷신문 <사람일보>(www.saramilbo.com)에 함께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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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1 18:15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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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이야기 2017.4 - 59호

한살림 엮음,
한살림(월간지), 2017


#책읽기 #책 #한살림 #살림이야기 #책이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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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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