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흙서점>.
최종규
서울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에서 4번 나들목으로 나오면 헌책방 〈흙서점〉이 코앞에 보입니다. 서울시내뿐 아니라 나라안 어디에서도 전철역에서 가까이 자리한 곳은 퍽 드뭅니다. 진주와 남원에서는 시외버스터미널 옆에 헌책방이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버스역이나 기차역 둘레에 헌책방이 많았습니다. 오늘날 지하철역 둘레는 가게삯이 비싸 웬만하면 엄두를 못 낸다 할 텐데, 사람들이 퍽 많이 드나드는 목 좋은 자리에 〈흙서점〉 한 곳은 다부지게 뿌리내리며 아주 많은 책손이 찾아오는 손꼽히는 곳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흙서점〉 일꾼은 책방 앞에 마련해 놓은 '책 아닌 헌 물건' 파는 값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에 쓰기도 합니다. "저 물건들 팔아서 한 달에 십만 원밖에 안 되지만, 저 물건들 그냥 버려지면 아깝잖아요. 이렇게 해서 새로운 사람이 찾아가면 버려지지 않아 좋고, 이렇게 판 물건으로 번 돈은 또 누군가를 도우면 더 좋고요."
열 몇 해째 이곳 〈흙서점〉을 찾아오면서 '낙성대역 앞에 있으'니 으레 "낙성대 앞 헌책방"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현동 헌책방 〈책창고〉부터 골목 안쪽으로 인헌동을 거쳐 찾아가다가 이 헌책방이 행정구역으로는 '봉천동'임을 깨닫습니다. 인헌동에 〈인헌헌책방〉이 있다가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여태껏 '인헌동'이 있어 그 헌책방 이름이 〈인헌헌책방〉이었다고 뒤늦게 알아차립니다. '나 스스로 이렇게 걸어 보지 않으면 모르는구나' 하고 새삼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이 붉어집니다. 제가 서울사람이 아니니 서울 길이름을 얼마나 알았겠느냐 싶으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헌책방을 찾아다니면서 그 헌책방이 무슨 동에 있는지 제대로 살펴야 하지 않았느냐 거듭 뉘우칩니다. 〈흙서점〉에서 책값을 셈하며 넌지시 여쭙니다. "여기도 봉천동에 들어가 있었어요?" "네, 봉천동이었지요. 그런데 얼마 전에 낙성대동으로 바뀌었어요. '봉천동' 하면 가난한 이미지가 박힌다며 안 좋다나 봐요."
그러고 보니 '구로공단역'이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헌책방 〈흙서점〉 아주머니는 예전에 독산동에서 〈오거서〉라는 이름으로 헌책방을 따로 꾸리기도 하다가 이제는 가시버시가 한 곳에서 책방 살림을 꾸리고 있습니다. 〈오거서〉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마주해야 했던 수많은 공장들이 떠오릅니다. 봉천동과 독산동 사이에 얼마나 많은 공장이 있었고, 얼마나 많은 쪽방이 있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 눈물과 웃음이 서려 있었을까 곰곰이 떠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