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입에서 "부끄러운 언론" 자백케 한 대통령의 전능

반민족·반민주 악행도 사과 안한 조선일보의 기이한 반성문

등록 2009.10.01 11:28수정 2009.10.0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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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얼굴 두껍기로 유명한 조선일보가 스스로를 "부끄러운 언론"이라 고백하며 마침내 반성문을 썼다. <변방서 중심국 된 대한민국, 그리고 부끄러운 언론>이란 제목을 단 10월 1일자 사설에서다.

 

a  2009년 10월 1일자 조선일보 사설

2009년 10월 1일자 조선일보 사설 ⓒ 조선일보

2009년 10월 1일자 조선일보 사설 ⓒ 조선일보

 

사설 전반부는, "변방서 중심국 된 대한민국"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이명박 대통령이 자랑하는 G20 정상회의 유치의 의미와 성과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꾸며졌다. 이 대목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조선일보가 이 대통령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옳습니다. 지당한 말씀이십니다"는 추임새를 반복하고 있다는 거다.

이를테면, "이제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변방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됐다"는 말에 "결코 과장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맞장구치거나, "북핵은 남북 당사자 문제인데 우리가 미국 안만 따라갈 수 없다"는 도발적 말에도 "한반도의 장래 문제가 이제 더 이상 우리가 빠진 자리에서 논의되는 일이 없도록 실력과 결의를 다져나가야 한다"고 화답한다거나, 그런 식이다.

그러면서 "불과 100여년 전인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입장도 하지 못했던 처지였던 우리가 세계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G20 정상회의를 주최"하게 된 것은 "세계 역사에 찾아보기 어려운 '100년간의 기적'이라 불러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G20 정상회의를 유치한 이 대통령의 치적에 대해 극찬의 말을 아까지 않았다.

사설 전반부가 이처럼 낯간지러운 추임새의 연속이었다면, 후반부는 "부끄러운 언론"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제 할 일을 다하지 못한 못난 언론을 자책하는 감동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대통령 회견은 대통령이 말하고 싶은 내용을 말하는 자리인 동시에 국민이 대통령에게 묻고 싶어 하는 것을 언론이 국민을 대신해 물어보는 자리"이기도 한데, 청와대가 회견에 앞서 "대통령에게 세종시 관련 질문을 말아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뭇 언론들이 "모두가 궁금해하는 세종시 문제를 대통령에게 단 하나도 질문하지 않았다"는 게 조선일보가 인정한 잘못의 전부.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부끄러운 언론 직무의 포기였다"고 자책하면서 "조선일보도 그 잘못된 한국 언론 속에 포함된다"고 고백했다. 자존심 강한 조선일보 입에서 극미한 분량이나마 이런 반성의 말이 나온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조선일보는 이어 클린턴 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폴란드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미국 기자들이 클린턴에게 르윈스키와의 불륜 스캔들만 집중적으로 캐물은 사례를 들먹이며, "만일 그때 미국 기자들이 르윈스키 관련 질문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면 미국은 이날 얼마나 우스운 나라가 돼버렸겠는가"라고,'우스운 나라'로 전락한 한국에 자조의 웃음을 던지기도 했다. 


겉으로만 보면, 조선일보가 언론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을 심히 부끄러워하며 자괴감으로 제 가슴을 후려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서, 이는 전적으로 쇼(SHOW)다. 무늬만 반성이고 실제로는 구역질 나는 더러운 변명만 가득한 저질쇼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권력의 횡포를 비판하는 말이 들어가야 할 곳에 생뚱맞게 언론의 허물을 탓하는 반성의 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번지수가 틀렸다고나 해야 할까.

생각해 보라. 이명박 청와대가 언론에게 물어야 할 것도 묻지 못하게끔 질문을 제한했다면, 조선일보가 말끝마다 부르짖는 언필칭 '언론자유'를 위해서라도 그와 싸워야 마땅할 터. 그런데 싸워야 할 상대에게 비판의 말 한 마디 던지지 못하고 애꿎게 제 가슴만 친다는 게 이해가 가는가. 조선일보가 언제부터 이렇게 순한 양이 됐기에?


만약 노무현 전임 정부 때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면 조선일보가 어찌 반응했을까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필경 입에 거품을 물고 '언론탄압' 운운하며 몇날 며칠동안 정부에 십자포화를 퍼부어댔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을 트집잡아 공격하고 비난한 조선일보 아니던가.

노 전 대통령이 한 마디 하기만 하면 어떻게든 그를 비틀어 비난의 주제로 삼은 조선일보의 놀라운 저격솜씨는 예전에 인터넷서 회자됐던 '다음날 조선일보...'이라는 패러디만화물에도 잘 나타나 있다 오죽 했으면 그런 만화까지 나왔을까.

그런데 청와대 주인이 바뀌니 조선일보의 맹독성 이빨도 절로 순치되는 모양이다. 언론을 욕보이는 벼라별 짓을 해도 짖기는 커녕 꼬리치며 제 허물부터 되돌아보는 걸 보니...

그래서다.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이명박 대통령의 전능과 위대성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무나 물어뜯는 광견을 말 잘 듣는 애완견으로 둔갑시키는 게 어디 보통 사람의 할 일인가.

더구나 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에 민족을 배반하고 군사독재시절에 민주를 능욕하고도 아직 반성과 사과의 말도 내뱉은 적이 없는, 입 무겁고 마음이 강팍하기로 소문난 신문지다. 그런 신문지로 하여금 사소한 잘못만으로도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들었으니 그 놀라운 능력이란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다.

G20 정상회의를 손쉽게 유치하시어 볼 품 없는 한국의 운명을 졸지에 '변방에서 중심으로' 순간이동시키시고, 세계 역사에 찾아보기 어려운 '100년간의 기적'을 행하신 이 대통령에게 이런 것쯤은 어쩌면 시시한 일에 속할지도 모르겠지만...

이전부터 입만 열면 '미국과의 공조'를 암송하던 이 대통령이 뜬금없이 "미국안만 따라갈 수 없다"고 말을 바꿔도 조선일보가 마냥 공손하게 '아멘'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도 그가 자기를 변화시킨 전능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게다. 아무렴.

조선일보의 진짜 잘못, 아니 파렴치한 죄악에 대해선 언급을 회피한다. 분량이 너무 광대해서다. 대신 권력 비판을 자기 반성으로 떼운 이 사설도 조선일보의 부끄러운 죄악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임을 분명히 해 둔다.

2009.10.01 11:28ⓒ 2009 OhmyNews
#G20 정상회의 #조선일보의 반성문 #이명박 대통령의 전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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