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에 체조가 아니라 달밤에 배드민턴

등록 2009.10.04 09:32수정 2009.10.0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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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지만 갈수록 사람냄새 나는 일은 점점 사라져갑니다. 2003년부터 설날과 추석 하루 전 날에 어머니를 모시고 읍내에 있는 떡집에 떡을 하러 갑니다. 처음 2-3년은 아침 7시에 가도 줄을 서서 4-5시간은 기다려야 겨우 떡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2-3년 전부터 9시에 가도 1시간만 기다리면 떡을 합니다. 떡을 해 먹는 집들이 점점 없어지고 조금씩 사 먹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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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만 해도 떡집은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는데 올해는 썰렁합니다. 어머니와 할머니 몇 분만이 떡을 했습니다. ⓒ 김동수


떡집이 썰렁할 정도입니다. 어머니하고 할머니 두 분이 떡을 하기 위해 기다라고 계셨습니다. 그때는 지겨워서 짜증이 났는데 요즘은 썰렁해서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어머니는 찹쌀에 대한 대단한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찹쌀을 먹으면 오장육부가 튼튼해진다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떡을 찰시루떡을 하십니다.

어머니가 젊었을 때는 집에서 명절 준비를 다 하셨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찰시루떡을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하시는 떡이라 다들 먹지만 우리 가족은 설날에는 찰시루떡이 아니라 다른 떡을 먹고 싶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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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찹쌀이 몸안을 튼튼하게 한다고 명절마다 찰시루떡을 합니다. 올해는 밤과 붉은 콩까지 넣어 맛있었습니다. ⓒ 김동수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와 제수씨가 추석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집 큰 아이가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자기 꿈이 요리사입니다. 어릴 때부터 요리를 배워야 한답니다. 제수씨 친정이 고향 동네라 우리집과 제수씨 친정이 추렴하여 돼지를 한 마리 잡습니다. 올 추석도 돼지 한 마리를 잡아 반 마리씩 나누었습니다. 정말 풍성합니다. 큰 아이가 한 요리는 돈가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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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 꿈이 요리사입니다. 엄마와 작은엄마를 도와준다고 팔을 걷도 나섰습니다. ⓒ 김동수


"인헌이가 만든 돈가스 맛 좀 볼까?"
"아빠 한 번 보세요. 내가 만들었어요."
"네가 만들기는... 작은엄마하고, 엄마가 다 만들어 놓은 것이잖아."
"아니예요. 내가 만들었어요."

"야 맛 있는데. 우리 인헌이 일류 요리사 되겠다."

큰 아이가 엄마와 작은엄마를 도와주니 두 사람이 슬슬 눈치를 줍니다. 왜 눈치를 주겠습니까? 함께 하자는 것입니다. 못할 것 없습니다. 해마다 도와주는 것 이번에도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집 남자들 정말 안 합니다. 동생 정말 안 합니다. 어머니와 함께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설거지 한 번 안 한다는 것이 제수씨 생각입니다. 명태전을 굽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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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전을 굽다가 기름이 틔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 김동수


명태전만 아닙니다. 오징어전도 부쳤습니다. 오징어전을 부치고 있으니 제수씨가 돼지고기 버섯전을 부치자고 합니다. 쇠고기가 없어 돼지고기로 선택했습니다. 제수씨와 함께 버섯전을 부치기 위해 돼지고기를 다졌습니다. 잘 다졌다고 생각했는데 하고 보니 절반은 다져졌고, 절반은 그대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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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준비 ⓒ 김동수


추석 준비를 다 놓고 제수씨와 아내가 배드민턴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하겠다고 합니다. 우리집 막둥이 예설이는 큰 엄마가 자기를 안아주지 않는다고 보챕니다. 큰 엄마가 힘이 얼마나 좋은지 예설을 안았습니다. 안고서도 배드민턴을 할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어떤 때는 나보다 더 무거운 것을 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정말 놀랍니다.

"우리 엄마 이겨라."
"우리 엄마 이겨라"

사촌들끼리 자기 엄마 이겨라고 응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이겨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추석 전 날 동서끼리 배드민턴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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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준비를 다 해놓고 아내와 제수씨 아이들이 배드민턴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 김동수


달밤에 체조가 아니라 달밤에 배드민턴입니다. 저녁을 먹고 배가 부르자 아이들이 배드민턴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아이들은 배드민턴 라켓을 처음으로 잡아보았습니다. 잘 될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용대 선수보다 더 열심히 배드민턴을 했습니다. 달밤에 하는 배드민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누가 제일 잘했지?"
"인헌이 형아요."

"인헌이 형이가 다 이겼어요."
"제대로 받는 사람이 없다. 인헌이도 서브만 넣으니까 그렇지 다른 사람이 서브 넣으면 제대로 받겠나."
"공이 안 보여요."
"공이 아니라 셔틀콕."
"그냥 공이라고 하세요."


보름달 아래서 하는 배드민턴 가족 사이 사랑을 쌓는 아주 좋은 경기입니다. 달밤에 체조가 아니라 보름달 아래 배드민턴 한 번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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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에 체조가 아니라 달밤에 배드민턴(?)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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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에 배드민턴 ⓒ 김동수


#추석 #떡 #배드민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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