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리스 공연당당한 아버지로 살고 싶은 그들은 아이들과 학생들 또한 사회문제에 관심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사진은 09년 노동절
이호준
용돈 타 쓰는 서른 넷, 촛불을 만나엄씨가 본격적으로 음악과 인연을 맺은 건 고등학생 시절이다. 학생들의 탈선을 방지하기 위해 취미생활을 장려하던 선생님이 노래 잘하는 엄씨에게 합창단을 권유했다. 그렇게 '취미생활'로 음악을 시작한 그는 성악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이후 그는 자연스레 대학 성악과에 입학하고, 졸업 후 당당하게 국립오페라단에도 들어갔다.
하지만 사회는 이제껏 그가 배워왔던 음악만큼 낭만적이지 않았다. 국립오페라단에서 받는 월급 30만 원으로 살아가기란 쉽지가 않아 여러 고민과 방황 끝에 이탈리아 유학을 결심한다. 4년 후인 2005년, 집안 사정으로 귀국하지만 전공을 살려 다닐 수 있는 직장은 없었다. 그는 돌연 "음악을 하지 않겠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했다.
자신과 같은 'B급 음악가'들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그는 공연기획을 배우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동시에 돈을 벌기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 조그만 회사도 창업했다. 그러나 벌이는 없었고, 대학원 등록금 대출로 빚더미에 앉는 신세가 되었다. 엄씨의 이 경험은 잡리스 결성 후, 그들의 노래 '내 나이 서른 하고 네 살'에 고스란히 담겼다.
"내 나이는 서른하고 네 살 / 왜 아직도 용돈 타 쓰나 / 그건 내가 실업자기 때문 / 어떡하죠 구해줘 임영박 / 3백만 개 일자리 만든댔죠 / 취직 안 돼 대학원 갔죠 / 학자금 대출로 빚쟁이죠 / 내 나이는 서른 하고 네 살" <잡리스, 내 나이 서른 하고 네 살, 노래 : 김우섭 엄태호, 분장 : 최사장, 홍보 : 안대혁, 영상 : 강의석> '잡리스'의 시작은 '촛불'이었다. 부모님께 효도도 하고 싶고 용돈도 드리고 싶은데, 카드값 문제로 어머니께 전화하는 자신이 답답했다. 그렇게 소주 한 잔 하고 회사 사무실로 다시 돌아온 작년 어느 날, 엄씨는 동생(직원)들이 한참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바쁘게 클릭하는 것을 봤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투표를 하고 있던 것. 광우병 쇠고기 수입으로 인터넷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때였다. 그때 동생들과 함께 아고라 투표를 하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고라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서 자신 역시 '촛불'이 돼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11월, 마음 맞는 친구들인 최민수(32)씨, 김우섭(34)씨와 술자리에서 "음악으로 세상을 노래하자"고 의기투합했다. UCC영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잡리스'는 네티즌들의 열광적 검색에 힘입어 인터넷 스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