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사용을 안 하던 것이라 피대가 자주 벗겨진다. 그때마다 아저씨는 사다리를 타고 천장 가까이까지 올라가서 마치 서커스단원처럼 거꾸로 서서 피대를 조정한 다음 내려와서 끼워넣는다
김수복
아저씨 왈 "게으른 일부 공무원들이 국민을 범죄로 인도한다"아주머니와는 달리 '전라도말'을 거의 쓰지 않는 아저씨는 무슨 말을 해도 표정에 변화가 없다. 평생을 화 한 번 안 내고 살았을 것 같기도 하지만, 특이하게도 돈 얘기만 나오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큰소리를 내기도 한다.
"사람이 돈에 미치면 정신도 미쳐버려. 그렇게 되면 버리는 거지 뭘. 저기 저 사람들이 아주 좋은 본보기지, 그럼."그가 말하는 '저기 저 사람'이란 농산물 가공공장을 세운다고 조립식 건물 한 동 달랑 지어놓고 정부 지원금 수억 원을 받아 잠적해 버린 사람이다. 한때는 그것도 유행이었다. 현장조사 없이 사진과 서류만으로 도장 찍고 지원금에 융자금 보증까지 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돈을 눈먼돈이라고 한다. 그런 눈먼돈을 집행하는 일부 공무원이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활개를 치며 유지 행세를 한다.
"담당 공무원이 바보 같아서 당했다고는 해도, 저게 어디 공무원 한 사람의 일인가. 여러 말 할 것도 없이 내가 낸 세금도 최소한 천 원은 들어갔을 텐데, 응? 이게 어찌 남의 일인가 말이지. 그것만 봐도 나는 내가 옳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해먹고 도망간 그 사람은, 편할까? 아니지. 편할 수가 없는 것이지, 제아무리 뭐라 해도 사람이거늘. 사람이 어째 그런 짓을 하고도 편할 수가 있겠어."아저씨 주장에 따르면 게으른 일부 공무원들이 국민을 범죄의 길로 인도한다. 형법상 범죄는 차라리 아무 문제도 안 된다. 양심의 죄를 어찌할 것인가. 덮어도 덮을 수 없는 양심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 헛된 노력을 기울이다 보니 낯은 점점 두꺼워져 간다. 때문에 게으른 공무원은 이중 삼중으로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아저씨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런 게으른 공무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신분보장을 해주는 정부는 어떻게 되나? 이 질문에 대해 아저씨는 이렇게 한 마디 하신다.
"만악의 근원이여, 만악의 근원."정부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것인지 돈이 그렇다는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다루면 다룰수록 재미도 없고 짜증만 나기 마련이다. 시작을 했으면 끝낼 시기도 적절히 알아서 수습을 해야 하는 법, 나는 한참을 가만히 앉았다가 요즘 생활은 어떻게 꾸려가느냐고 뻔한 질문을 해본다. 그러자 아저씨는 갑자기 신이 나서 손가락까지 꼽아가며 설명을 해준다.
꿀벌 열두 통을 관리해서 나오는 꿀을 서울의 딸네가 팔아주니 그것으로 가용을 한다, 한 달에 한두 건씩 들어오는 도정료를 모아보면 일 년에 쌀로 십여 가마나 되니 식량을 하고도 남아 아이들에게까지 보낸다. 게다가 닭을 몇 마리 길러 매일 서너 개씩의 알을 낳아주니 반찬도 부실하지만은 않다. 이만하면 노부부 살아가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뭘 더 바래, 응? 하고 되묻는 아저씨의 눈은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 진실로 잘살고 싶다면 돈 많이 벌지 마라.
돌아오는 내 발걸음은 가볍지만, 그러나 머리는 무겁다. 나는 과연 저런 여유만만한 노후를 맞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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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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