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선생님 앞에서 학생 따귀를 때리다

자존감을 가지고 자기 속도에 맞게 살도록 가르친다는 것

등록 2009.10.23 12:12수정 2009.10.2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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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과 금주를 전제로 퇴원하셨던 공영석 선생님은 의사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은 결과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소엽 선생님께서 퇴원 전에 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공선생님께서 건강을 되찾으시면 점심을 내기로 한 것입니다.

 

다음 달 중순 개인전을 앞두신 안상규 화백님과 그 전시 도록작업을 돕고 있는 타우가 함께 공 선생님께서 운전하는 차에 올라 공 선생님이 입원 전에 종종 들르시던 축현리의 순댓국밥집으로 갔습니다. 순댓국에 막걸리도 한 병 주문했습니다. 공 선생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건배를 외쳐도 공 선생님은 단호하게 물컵을 들었습니다.

 

a  안선생님은 내달 13일에 오픈하는 개인전의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안선생님은 내달 13일에 오픈하는 개인전의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 이안수

안선생님은 내달 13일에 오픈하는 개인전의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 이안수

 

소엽 선생님께서 최근 그린 그림을 찍은 사진을 안 선생님께 내밀었습니다. 될성부른 그림인지를 보아달라는 청이었습니다.

 

a 소엽선생님의 그림을 보고계신 안상규화백님 공선생님의 건강회복을 빌미로 소엽선생님께서 점심을 쏘셨습니다.

소엽선생님의 그림을 보고계신 안상규화백님 공선생님의 건강회복을 빌미로 소엽선생님께서 점심을 쏘셨습니다. ⓒ 이안수

▲ 소엽선생님의 그림을 보고계신 안상규화백님 공선생님의 건강회복을 빌미로 소엽선생님께서 점심을 쏘셨습니다. ⓒ 이안수

 

안 선생님께 누군가가 그림을 지도해달라고 아무리 간촉을 해도 단호히 거절합니다. 그림을 가르친다는 것은 창의성과 개성을 거세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론의 실천입니다. 수십 년간 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오랫동안 전업화가로 사시는 과정에서 이런 주관을 확신하게 된 결과입니다.

 

그래서 소엽 선생님도 묵묵히 그리고 많이 그려보면 된다는 안 선생님의 유일한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a  이미 확실한 본인의 세계를 구축하신 서예가이신 소엽 신정균선생님은 사유가 자유로운 보기 드문 분입니다. 저는 이 분의 자유분방한 사고와 재능이 서예로 국한되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장르를 탈피한 도전을 권했습니다. 지금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하고 계십니다.

이미 확실한 본인의 세계를 구축하신 서예가이신 소엽 신정균선생님은 사유가 자유로운 보기 드문 분입니다. 저는 이 분의 자유분방한 사고와 재능이 서예로 국한되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장르를 탈피한 도전을 권했습니다. 지금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하고 계십니다. ⓒ 이안수

이미 확실한 본인의 세계를 구축하신 서예가이신 소엽 신정균선생님은 사유가 자유로운 보기 드문 분입니다. 저는 이 분의 자유분방한 사고와 재능이 서예로 국한되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장르를 탈피한 도전을 권했습니다. 지금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하고 계십니다. ⓒ 이안수

 

소엽 선생님의 그림을 보고 '좋다'라는 한마디 말로 평을 끝내고 대신 70년대 동료 미술교사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셨습니다.

 

"새로운 수업 모델의 개발을 위해 연구수업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연구수업을 해야 하는 교사는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교과 선생님들의 참관 하에 진행되는 것은 물론, 수업 후에 평가를 받아야했기 때문에 수업준비를 더 철저히 해도 심리적으로 상당히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제 동료 교사의 차례였어요. 평소에도 주관이 뚜렷한 미술교사였습니다. 수업 당일, 그 교사는 야외수업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참관 교사들이 운동장에 의자를 나란히 놓고 도열한 후 그 교사의 연구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5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말했어요. '오늘 수업은 교정 곳곳의 낙엽을 주워서 자신의 생각대로 스케치북에 붙이는 것이다. 그럼 시작!' 선생님의 '시작' 소리와 함께 학생들은 교정 곳곳으로 흩어졌지요. 아이들은 20분쯤이 지나자 스케치북을 팽개치고 교정 곳곳에서 급우들과 장난이 벌어졌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이 불편한 마음이 된 참관선생님들은 언제쯤 다른 학습이 이어질지를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든 참관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담당교사는 원래의 자리에서 50분간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수업 종료종이 울리자 아이들을 불러 모아 한마디 했습니다. '낙엽붙이기 수업결과는 다음 시간에 조사하겠다. 수업 끝.' 참관교사들은 50분간 아이들의 장난만 지켜본 꼴이 되었습니다."

 

그 수업의 참관교사였던 안 선생님께서는 지금도 죄스럽게 느끼고 있는 본인의 일화를 덧붙였습니다.

 

"70년대 체벌은 당연한 교육의 한 방법론으로 받아들여졌어요. 사실 저도 간혹 아이들의 손바닥을 때리곤 했지요. 특히 준비물을 갖추지 않은 학생들이 주로 체벌을 받았어요. 늘 친구의 스케치북 한 장을 찢어서 자신의 책상위에 올려놓는 말썽꾸러기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그림을 그려오라는 숙제를 냈는데 그 학생이 구도와 채색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출중하게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평소 수업에 주목을 하는 대신 다른 학생들의 수업을 방해하는 것에 몰두했던 녀석이었으므로 그의 그림실력과 창의성을 발견할 기회를 갖기가 어려웠어요. 저는 조심성 없이 그 학생에게 말했어요. '네가 그린 게 아니지?'라고. 그 학생은 자신이 직접 그린 것이라 주장했지만 전 내심 그의 주장을 믿지 않았어요. 나중에 우연히 그 학생이 미술학원을 다니고 있고 재능도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의 경솔한 한마디 때문에 그 학생이 그림을 계속 그리고자 했던 꿈을 접었을까 걱정돼요."

 

a  수십년전에 제자에게 한 사려깊지못한 

한마디를 아직 가슴에 담고 죄스러하시는 

안상규화백께서는 평소 

말씀을 아끼시는 편이지만 

이 분의 생각과 행위는 누구도 

이 분을 70대 중반을 살고 계신 분이라고 

여길 수 없을 것입니다.

수십년전에 제자에게 한 사려깊지못한 한마디를 아직 가슴에 담고 죄스러하시는 안상규화백께서는 평소 말씀을 아끼시는 편이지만 이 분의 생각과 행위는 누구도 이 분을 70대 중반을 살고 계신 분이라고 여길 수 없을 것입니다. ⓒ 이안수

수십년전에 제자에게 한 사려깊지못한 한마디를 아직 가슴에 담고 죄스러하시는 안상규화백께서는 평소 말씀을 아끼시는 편이지만 이 분의 생각과 행위는 누구도 이 분을 70대 중반을 살고 계신 분이라고 여길 수 없을 것입니다. ⓒ 이안수

 

체벌 얘기가 나오자 다시 동료 미술교사의 얘기로 되돌아갔습니다.

 

"평소 학교 육성회장의 아들이 수업태도가 좋지 못했어요. 다른 교사들도 문제를 느끼고 있었지만 말로 타이르곤 했지요. 마침내 그 학생이 운동장에서 연구수업을 진행했던 그 교사에게 따귀를 맞는 일이 벌어졌어요. 예상대로 다음날 육성회장이 교장실로 왔고, 난처해진 교장선생님은 해당 교사를 교장실로 호출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육성회장 앞에서 교사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학생을 어떻게 때린 거예요?'

 

교장선생님의 질책성 발언에 해당교사는 그 학생을 불러줄 것을 청했고, 그 학생이 들어와 세 사람 앞에 서자마자 다시 힘껏 따귀를 때렸습니다. 그리고 말했어요. '이렇게 때렸습니다.' 당황스러워하는 교장선생님과 육성회장을 향해 이어서 말했습니다. '저는 문교부장관으로부터 자격을 받은 교사로서 문제 학생을 올바르게 지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문교부장관으로부터 발령을 받은 제가 학교를 떠나거나 이 학생이 학교를 떠나야 합니다. 교장선생님이 결론을 내려주십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교장실을 나갔습니다. 결국 사건은 육성회장이 교사에게 교권침해에 대해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요."

 

돌아오는 길, 탄포천 변에 잠시 차를 세우고 거의 추수가 끝난 텅 빈 오금리 들판과 개울 가득 몸을 흔들고 있는 갈대를 이야깃거리 삼았습니다.

 

a  탄포천에서 군락을 이루어 가을 바람에 따라 몸을 흔들고 있는 갈대와 억새

탄포천에서 군락을 이루어 가을 바람에 따라 몸을 흔들고 있는 갈대와 억새 ⓒ 이안수

탄포천에서 군락을 이루어 가을 바람에 따라 몸을 흔들고 있는 갈대와 억새 ⓒ 이안수

a  가을 억새를 바라보는 것은 가을에 누리는 호사입니다.

가을 억새를 바라보는 것은 가을에 누리는 호사입니다. ⓒ 이안수

가을 억새를 바라보는 것은 가을에 누리는 호사입니다. ⓒ 이안수

a  벌써 된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입니다. 이제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함께 동면을 준비해야할 때입니다.

벌써 된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입니다. 이제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함께 동면을 준비해야할 때입니다. ⓒ 이안수

벌써 된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입니다. 이제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함께 동면을 준비해야할 때입니다. ⓒ 이안수

a  어제 아침은 모티프원 정원에서도 하얀 서리를 보았습니다. 농부들도 이제 추수를 마무리 해야될 때입니다.

어제 아침은 모티프원 정원에서도 하얀 서리를 보았습니다. 농부들도 이제 추수를 마무리 해야될 때입니다. ⓒ 이안수

어제 아침은 모티프원 정원에서도 하얀 서리를 보았습니다. 농부들도 이제 추수를 마무리 해야될 때입니다. ⓒ 이안수

 

어젯밤 서울에서 돌아온 저의 처가 한 가지 고민을 얘기했습니다.

 

"영대가 큰 걱정을 하고 있어요. 이번 일제고사에서 학교 순위가 많이 떨어졌고 학교에서는 방과후 학습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한 모양이에요. 내년부터는 예외 없이 방과 후 학습에 참여해야 된다고 말했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학을 가야 할지도 모른데요."

 

고등학교 1학년인 영대는 지금 방과 후 학습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중국어를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스스로 정해서 하는 일이라 전례 없이 열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방과 후 학습에 열외될 수 없게 되면 중국어 공부를 계속하는데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미리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전에 우리마을 한솔이 어머님이 모티프원에 다녀가셨습니다. 이웃마을 해오름공동체에서 주최하는 마을학교에 헤이리주민들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참석하게 할 수 있을까 상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조치원 신안1리 마을 이장이신 강수돌 고려대 교수님을 모시고 '마을만들기와 지역화폐'에 대해서 강의를 듣게 됩니다. 한솔이 어머님은 오늘 그 내용을 헤이리회원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마을학교에 초대합니다!

 

우리들이 살아갈 마을을 가슴 속에 그려봅니다. 작지만 아늑한 마을도서관, 초롱초롱한 아이들 눈망울에 둘러싸여 옛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어르신들 얼굴에 행복이 묻어나옵니다. 젊은이들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기 속도에 맞는 삶을 살아가지요. 아이들도 그런 어른들의 삶을 바라보며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자존감을 갖고 자라납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자기 자신은 물론 서로를 돌보는 행복한 '마을 만들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함께 마음을 모아 여는 '마을 학교' 모두 오실 거죠?

 

'자기 속도에 맞는 삶을 사는 젊은이'와 '자존감을 갖고 자라는 아이들'이라는 말이 대안학교를 거쳐 지금은 홈스쿨링을 하는 한솔이 엄마이기 때문에 더 진솔하게 가슴에 다가옵니다.

 

헤이리 내에도 다양한 교육 방법론의 고민과 그 결과가 반영된 교육이 실천되고 있습니다.

 

전교조 활동으로 여러 건이 피소되어 선거공판을 앞두고 계신 가을이 아빠도 가을이를 본인 의사에 따라 홈스쿨링을 하고 있습니다. 바우재의 아들도 그렇게 하고 있지요.

 

예나 지금이나 교육은 동시대의 큰 고민거리입니다. 공교육의 현장도, 부모의 마음도 교육에 관한 한 과욕 탓에 원칙 없이 몸을 흔드는 탄포천의 가을 갈대 같습니다.

 

a  공교육 위정자들과 학부형들은 아이들을 계속 페달을 밟아주어야 넘어지지 않는 자전거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공교육 위정자들과 학부형들은 아이들을 계속 페달을 밟아주어야 넘어지지 않는 자전거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 이안수

공교육 위정자들과 학부형들은 아이들을 계속 페달을 밟아주어야 넘어지지 않는 자전거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 이안수

a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둑길에 흐드러진 갈대를 바라보는 것도 교육인데 말이지요.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둑길에 흐드러진 갈대를 바라보는 것도 교육인데 말이지요. ⓒ 이안수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둑길에 흐드러진 갈대를 바라보는 것도 교육인데 말이지요. ⓒ 이안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과 홈페이지 www.motif1.co.kr에 함께 포스팅됩니다.

2009.10.23 12:12ⓒ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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