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그리울 때면 찾아 가고픈 쌍향수

[09-055] 800년 긴 세월동안 이 고장을 지켜준 쌍향수

등록 2009.10.27 17:21수정 2009.10.2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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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순천시 송광면 이읍마을 천자암에 있는 곱향나무 일명 쌍향수

순천시 송광면 이읍마을 천자암에 있는 곱향나무 일명 쌍향수 ⓒ 서정일

순천시 송광면 이읍마을 천자암에 있는 곱향나무 일명 쌍향수 ⓒ 서정일

순천시 송광면과 외서면 사이에 있는 천자암에는 수령이 800년쯤 된 두 개의 곱향나무가 나란히 서 있다. 일명 <쌍향수>로, 고려시대에 보조국사(普照國師)와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를 내리고 가지와 잎이 났다는 전설이 있다.

 

그런데 그 형태가 담쟁이넝쿨처럼 꼬여 12미터를 올라섰다. 사람들은 보물로 지정된 번호인 88호처럼 똑같은 모양새로 꼬여있다고 신기해한다. 또, 이 나무를 한번 만지면 죽은 후에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믿어 사람들이 많이들 찾는다고 한다.

 

a  쌍향수를 찾아 나서는 길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있었다

쌍향수를 찾아 나서는 길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있었다 ⓒ 서정일

쌍향수를 찾아 나서는 길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있었다 ⓒ 서정일

단풍이 물들어 가던 지난 27일, 쌍향수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천자암 들어가는 길은 순천시 송광면 이읍마을이다. 산 중턱에 천자암이 있고 그 아랫마을이 이읍마을인 셈이다. 그런데 이 마을 이름을 배골이라고도 불렀는데 천자암에서 흐르는 물이 마을 앞을 흐르는 송광천과 합류되는 것이 마치 마을이 물로 둘러 싸여 있는 배 모양이라 하여 그렇게도 불렀다고 한다.

 

이읍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1210년경 고려시대에 여진금국 장종 왕비의 셋째아들 삼정국사가 송광사 천자암에 머무를 때에 마을의 생김새를 보고 앞으로 도읍지가 되겠다고 예언하면서부터 마을이름을 '이읍'이라고 부르게 됐다는데 그만큼 남모르는 비범함이 숨어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a  상이읍마을은 경사가 심해 계단식 논이다. 농부가 손으로 농사를 짓는 모습이 안쓰러워보인다

상이읍마을은 경사가 심해 계단식 논이다. 농부가 손으로 농사를 짓는 모습이 안쓰러워보인다 ⓒ 서정일

상이읍마을은 경사가 심해 계단식 논이다. 농부가 손으로 농사를 짓는 모습이 안쓰러워보인다 ⓒ 서정일

아래쪽 이읍마을을 지나면 또 하나의 이읍마을이 나오는데 그곳을 상이읍마을이라고 부른다. 아파트로 보자면 1층과 2층인 셈인데 평지인 이읍마을에 비해 경사가 훨씬 더 많이 져 있기에 논 모양새도 계단식이며 농사도 수작업이 많아 훨씬 힘든 곳이다.

 

이날도 한 농부가 벼를 손으로 베고 나르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였다. 하지만 마을입구에 세워놓은 표지석에는 지금은 빗물에 다 지워지다시피 했지만 협동의 마을, 범죄 없는 마을 등 심성 곱고 이웃끼리 돕는 정겨운 마을임을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a  등에 웃는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한 곤충이 필자를 먼저 반긴다

등에 웃는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한 곤충이 필자를 먼저 반긴다 ⓒ 서정일

등에 웃는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한 곤충이 필자를 먼저 반긴다 ⓒ 서정일

천자암 오르는 길은 암자 입구까지 콘크리트로 도로가 나 있다. 하지만 비좁고 경사가 심해 특히 자동변속기가 아닌 차량을 가진 초보자라면 포기하는 것이 낫다. 필자도 스쿠터 (바이크)를 타고 올라가는데 적지 않게 곤란을 겪은 게 사실이다.

 

차량을 주차장에 세워놓으면 약 20미터 정도 자연 돌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무모하다시피 스쿠터로 좀 위험(?)하게 올라온 것을 아는지 중간에 가다 보니 등에 사람이 웃고 있는 얼굴 모양의 문향이 있는 이름 모를 곤충이 필자를 반겨준다. 그것이 그나마 위안을 줬지만 쌍향수에는 비할 바가 못 됐다.

 

a  먼저 와 있던 관람객들이 휴대폰에 쌍향수를 담고 있다

먼저 와 있던 관람객들이 휴대폰에 쌍향수를 담고 있다 ⓒ 서정일

먼저 와 있던 관람객들이 휴대폰에 쌍향수를 담고 있다 ⓒ 서정일

천자암에 도착하니 절 입구에 야상차 나무가 있다. 절과 차는 서로 떼려야 땔 수 없는 관계이니만큼 신기한 모습은 아니지만 대부분 숨겨져 있거나 뒤쪽에 있는데 입구에 있어 정원수로 심어놓은 듯 한 인상이다.

 

법당을 돌아서니 드디어 쌍향수다. 이미 등산객 몇 명이 휴대폰으로 쌍향수를 담기 위해 분주하다. 몇 차례 왔어도 올 때마다 신기함이 있다. 작년 여름, 낙안군 폐군 100년째를 맞아 자전거로 답사할 때도 방문했었는데 그때는 병이 든 모습이었지만 오늘은 시퍼렇게 잎을 쏟아 내놓고 있는 건강한 모습이 필자의 마음을 후련하게 했다.

 

한참을 둘러보고 옆으로 올라가 잎도 만져봤다. 그리고 잠시 기도도 했다. 8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 고장을 지키고 서 있는 나무 앞에서는 누구나 경건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돌아서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은 정답게 나란히 서 있는 그 정겨움에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다.

 

a  한참을 앉아있다가 돌아서면서 다시 쳐다 본 쌍향수, 정답게 서 있는 정겨움이 정이 그리울때 찾게되는 나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참을 앉아있다가 돌아서면서 다시 쳐다 본 쌍향수, 정답게 서 있는 정겨움이 정이 그리울때 찾게되는 나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서정일

한참을 앉아있다가 돌아서면서 다시 쳐다 본 쌍향수, 정답게 서 있는 정겨움이 정이 그리울때 찾게되는 나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서정일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하지만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덧붙이는 글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낙안군 #남도TV #송광면 #이읍 #쌍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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