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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일초 선생님 길놀이를 유심히 보고 있는 천일초 선생님의 뒷모습 ⓒ 김종길
지난 주말 여주 여행 첫날이었다. 이날은 운이 좋았다. 여주읍 중앙동 문화의 거리에서 여주 민족예술인총연합회가 주관하는 각종 문화 행사를 하고 있었다. 여행지의 멋진 풍광을 보아도 좋겠지만 오랜만에 우리 옛 전통 문화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여행이라 더욱 신이 났다. 풍물 길놀이를 시작으로 고사를 지내고 흔암리 쌍용거 줄다리기를 재현하는 행사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거대한 욕조로 변할 4대강을 우려하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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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일초 선생님 그는 1978년 흔암리 쌍용거 줄다리기 상쇠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 김종길
풍물패의 길놀이가 시작될 무렵 곱게 한복을 입은 노인 한 분이 사물놀이 장단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여행자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왠지 모를 기운이 노인의 어깨에서 느껴졌다. 뒷짐을 한 노인은 손에 꽹과리를 다부지게 쥐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예인의 기운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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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일초 선생님 82세라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신명나게 꽹과리를 치며 멋진 춤사위를 보여 주었다. ⓒ 김종길
이윽고 길놀이가 시작되고 한바탕 놀이가 이루어지자 노인은 무리 속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아, 그제야 그분이 상쇠였음을 알 수 있었다. 천일초 선생님. 그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점잖게 꽹과리를 치던 선생님은 몸에 흥이 붙자 꽹과리를 신들린 듯 치시더니 온몸으로 장단을 맞추었다. 행여나 장단을 못 맞추는 이가 있으면 살며시 다가가 꽹과리로 이끌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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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나리 고사를 앞두고 선생님의 구성진 비나리가 시작되었다. ⓒ 김종길
한바탕 길놀이가 끝나고 선생님께 다가갔다. 주위가 소란스러워 인터뷰를 길게 할 수는 없었다. 선생님의 연세를 여쭈어보니 82세라 하신다. 짐작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 정정한 모습에 순간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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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사위 한 예술인이 흥겹게 어깨춤을 추고 있다. ⓒ 김종길
열일곱 살 때부터 꽹과리를 잡고 상쇠가 되셨다고 하니 햇수로도 어언 65년이나 되었다. 온몸에서 예인의 기운을 느낀 건 나의 매서운 눈초리가 아니었음을 그제야 이해를 하게 되었다. "아, 이제 못하겠어. 나이가 팔십하고도 둘이나 되었어. 이제 힘에 부쳐. 예전만큼 신명도 없고…."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이어지는 고사 비나리에서 그의 구성진 가락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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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암리 쌍용거 줄다리기 천일초 선생님이 줄(용)의 비녀를 끼우고 있다. 흔암리 줄다리기는 한때 남한강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의 줄다리기였다. ⓒ 김종길
선생님은 1978년 흔암리 쌍용거 줄다리기 대통령상을 수상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령 상쇠이시다. 그 뒤에도 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하셨으니 실로 대단한 분임을 알 수 있다.
쌍용거 줄다리기는 여주군 내 12개 마을이 참여했던 큰 규모의 대동놀이로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이루어졌다. 줄은 암줄과 수줄로 나뉘는데 그 줄을 용(龍)이라고도 부른다. 300여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쌍용거 줄다리기는 일제강점기에 중단되었다가 복원되었다.
한때 수천 명이 남한강가에 모여 줄다리기를 했다는 것이 이제는 실감이 나지 않지만 지역에서는 옛 영화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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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물 흥겨운 풍물놀이에 노인 한 분이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고 있다. ⓒ 김종길
선생님도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옛 줄다리기에 대한 추억을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대통령상까지 수상한 줄다리기가 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수도권과 가까운 천혜의 땅 여주의 남한강가 백사장에서 수천 명이 운집하여 줄다리기를 한다면 여주가 가진 풍부한 관광자원의 촉매가 되어 문화관광의 새로운 명소로 여주가 전국적인 관광지로 부상할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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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물놀이 아이들의 사물놀이 공연이 시작되었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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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령 상쇠 천일초 선생님 동영상 대통령상을 수상한 최고령 상쇠 천일초 선생님의 꽹과리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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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나리 천일초선생님의 구성진 비나리 가락을 들을 수 있습니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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