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섬 위에 올라앉은 아름다운 애련정

바람이 머무는 정자기행(23)

등록 2009.11.06 11:06수정 2009.11.0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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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련정 ⓒ 하주성

▲ 애련정 ⓒ 하주성

안흥지라는 크지 않은 네모난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의 물로 구만리 뜰의 논에 물을 대어, 천하제일미라는 진상미인 자채벼를 생산했다. 진상미인 자채벼를 생산하는 논을 서민들이야 갖고 있을 리가 없었다. 고려와 조선조의 대신들은 이 구만리 뜰 방죽 앞에 자채논을 갖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할 정도였다고 하니, 언감생심 서민들은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여지도서>에는 이 방축의 둘레가 약 388m(1250척) 정도로 기록하고 있다. 안흥지는 이천시 미란다호텔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조그만 연못이다. 애련정기에 따르면 조선 세조 때인 1456년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지역에서는 통일신라 이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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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련정 이천시 미란다호텔 뒤편 안흥지 중간에 있다. 2009년의 모습이다. ⓒ 하주성

▲ 애련정 이천시 미란다호텔 뒤편 안흥지 중간에 있다. 2009년의 모습이다. ⓒ 하주성

애련정기(愛蓮亭記)에 따른다고 했으니, 이곳에는 애련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애련정기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되어 있는 임원준의 <애련정기>를 말한다. 또한 <이천읍지>에 보면 객사 남쪽에 정자가 있어, 그 창건 년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세종 10년인 1428년에 중건하고, 세조 12년인 1456년에 이천 부사로 취임한 이세보가 지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애련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니 '이천 객관 동쪽에 작은 정자가 있었으나 돌보지 않아 기울어져 있었다. 이세보가 이 정자를 수리하여 전보다 더 크게 세웠다. 정자는 낮지도 높지도 않고 사치스럽지도 않다. 정자 아래는 자연습지였는데, 연못을 파고 연꽃을 심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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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련정 2002년 처음으로 찾아갔을 때의 모습이다. 앞에는 줄이 쳐저 있었다 ⓒ 하주성

▲ 애련정 2002년 처음으로 찾아갔을 때의 모습이다. 앞에는 줄이 쳐저 있었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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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 애련정에 걸린 현판. 애련정이라는 이름은 당시 영의정 신숙주가 지었다 ⓒ 하주성

▲ 현판 애련정에 걸린 현판. 애련정이라는 이름은 당시 영의정 신숙주가 지었다 ⓒ 하주성

결국 애련정은 그 이전부터 있었고, 자연습지였다는 것을 보아 방축의 기능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애련정은 영의정 신숙주가 정자이름을 <애련정>이라 지었다고 한다. 연꽃이 핀 경치가 좋아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역대의 왕들이 이 애련정에 들렸음을 기록하고 있다.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 능인 영릉에 참배를 하고 돌아가던 중종은 이곳에서 노인들을 위한 연희를 베풀기도 했다. 이 외에도 숙종과 정조 등이 이곳에 들렸다. 중종 23년(1528), 숙종 14년(1688), 정조 3년(1779)에 영릉에 들려 참배를 마치고 돌아가던 왕들이, 이천행궁에 들려 연꽃이 아름답게 핀 애련정을 돌아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애련정은 1907년인 순종황제 원년에 일어난 정미의병 때 일본군이 이천읍내에 483가구를 불태웠는데, 당시 애련정도 소실이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애련정은 1998년 이천시가 애련정기 등을 기반으로 복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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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산대군 이이의 글 애련정의 아름다움은 많은 사람들이 읊었다 ⓒ 하주성

▲ 월산대군 이이의 글 애련정의 아름다움은 많은 사람들이 읊었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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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정의 글 시인묵객들이 애련정을 노래했고, 역대 임금들이 애련정에서 풍광을 보기를 좋아했다 ⓒ 하주성

▲ 서거정의 글 시인묵객들이 애련정을 노래했고, 역대 임금들이 애련정에서 풍광을 보기를 좋아했다 ⓒ 하주성

지금의 애련정은 안흥지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안흥지의 중간에 인공 섬을 만들고 양편에 구름다리를 놓았다. 예전의 애련정은 어떠했는지 모습을 찾을 길이 없으나. 지금의 애련정을 보면 연못에 핀 연꽃이며, 유유히 유영을 즐기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는 경치가 남다른 풍광을 자랑했을 것이다. 당시 이곳에 들린 월산대군 이정(성종의 형) 서거정, 조위 등이 애련정에 올라 글을 남겼다고 했고, 임원준과 김안국의 애련정기와 애련루기는 지금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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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로 연결된 애련정 안흥지 중앙에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애련정을 지었다. 앙편에 다리를 놓아 경치를 더했다 ⓒ 하주성

▲ 다리로 연결된 애련정 안흥지 중앙에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애련정을 지었다. 앙편에 다리를 놓아 경치를 더했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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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련정 사람들은 다리위에서 연못의 물고기들의 유영을 보기를 좋아한다. ⓒ 하주성

▲ 애련정 사람들은 다리위에서 연못의 물고기들의 유영을 보기를 좋아한다. ⓒ 하주성

애련정을 처음 찾아간 것은 2002년 10월 8일이었다. 당시에도 아름답다고 느낀 애련정이었지만, 올해 다시 찾아간 애련정은 주변이 잘 정리가 되어있었다. 연못에는 물고기들이 유영을 즐기고 있고, 사람들은 이런 애련정에 올라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고 있다.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한 곳을 여러 번 찾아가는 것은, 달라진 점이 있지나 않을까해서다. 애련정처럼 보기 좋게 달라져 기분이 좋은 곳도 있으나, 어떤 문화재는 훼손이 되어 안타깝기도 하다. 두세 번 반복해서 찾아가는 것도 우리문화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인공 섬 위에 올라앉아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애련정. 그 정자에 전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가지 못함이 아쉽다. 언젠가는 정자이야기를 책으로 쓰면서, 그 많은 이야기를 다 풀어내고 싶다.   

#애련정 #안흥지 #이천 #자채쌀 #신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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