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이성적인 선택을 막을 수 있는 단 하나의 해결책

[서평] 오리 브래프먼ㆍ롬 브래프먼의 <스웨이>를 읽고...

등록 2009.11.07 09:55수정 2009.11.0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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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이 오리 브래프먼ㆍ롬 브래프먼 지음. 리더스북 ⓒ 윤석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이야기는 야코프 반 잔텐 기장에게 딱 들어맞는 속담인 것 같다. 경험 많은 조종사였던 야코프.

회사 동료들로부터 직무 수행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던 그가 테네리프 섬에서 내린 단 하나의 선택은 584명의 승객을 숨지게 만들었다. 도대체 그는 어째서 무리한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선택의 오류를 세밀하게 파헤쳐나가는 분석과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추론적인 접근법은 책의 저자 오리 브래프먼ㆍ롬 브래프먼의 <스웨이>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핵심을 잘 드러나도록 도와준다. 저자들은 인간이 어째서 "비이성적인 존재"인지  그 이유를 증명해나간다.

인간은 비이성적인 존재다

인간이 비이성적인 존재라는 사실은 전통경제학과는 상당히 다른 해석이다. 보통 우리는 고전적인 해석을 받아들여서 "인간은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가장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불어 닥치고 있는 '행동경제학' 즉, 인간의 행동을 경제학과 심리학의 혼합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이론을 통해 전통경제학의 근간이 조금씩 허물어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스웨이>에는 인간을 비이성적인 판단으로 이르게 하는 장치로 '손실회피', '집착', '가치귀착', '진단편향', '공정성의 인식차이', '쾌감중추', '집단성'이라는 요소들을 손에 꼽는다.

짤막하게 요약하자면 사람은 손해 보기를 싫어하고, 원점을 회복하고자 하는 욕심이 과하며,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것에 인색하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경향도 강하다. 또한 지역과 문화에 따라 중간점이 달라서 충돌이 빚어질 수 있으며, 돈에 대한 탐욕이 강한 편이고, 집단의 의견에 쉽사리 동조한다.     


이런 심리적인 요소들이 우리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더 자세히, 그리고 확실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직접 책을 펼쳐보시길 바란다. 당신의 선택에 있어서 조금은 더 합리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비이성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말이다. 

비이성적인 사람들에게 스웨이를 일으켜라


근래에 <넛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서 팔꿈치로 슬쩍 찌르는 행위  넛지(nudge)라는 단어. 그것을 <넛지>의 저자가 경제학적 용어로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를 '넛지'는 어떤 의사결정에 있어서 이성적으로 판단하기가 불가능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힘을 가함으로써 정책결정자들이 원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넛지라는 것은 상당부분 악용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난 서평에서 우려한 기억이 있다.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정책입안자들이나 설계자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게끔 한다는 것이 넛지의 요지인데, 그 의미대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된다면야 좋겠지만 '넛지'를 가하는 이들 또한 인간이고 비이성적인 존재이므로 혹여나 '쾌감중추'와 같은 도구로 인해 모럴헤저드에 빠지면 어떤 것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여기서 나는 <스웨이>를 만나게 되었다. "동요하다. 흔들리다. 지배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 스웨이라는 장치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견제'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야구에서 1루 주자를 견제하지 않고 있다면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2루로 도루를 감행하는 것처럼 생활적인 부분에서 우리가 비도덕적인 주자를 견제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계속해서 다음 루를 훔치려 들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도 비도덕적이고 비이성적인 행위에 대하여 '견제'를 할 필요성이 있다.

그 견제 동작은 무조건 공을 1루로 송구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WBC대회에서의 '이치로 굴욕사건'을 혹시 아는가? 봉중근 투수는 견제를 취하려는 동작만 취했어도 이치로의 기동력을 봉쇄할 수 있었다.

이것은 넛지가 가해져서 이끌리는 선택. 아니면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비이성적인 동인에 기인한 선택에 대해서 주위 사람들이 무조건 수용하지 말고 일단은 질문을 통해서 점검하고 넘어갈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 질문이라는 것이 완벽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주위의 공기를 '소통의 공기'로 변화시킬 수 있는 엉뚱한 질문이라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한쪽 방향으로 흘러가는 의사결정 과정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테네리프 섬의 사고가 일어나기 전. 유능한 기장 야코프의 비이성적인 선택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던 부기장의 대처방식이 그래서 중요했다. 부기장은 기장이 내린 여러 압박감에 따른 선택을 막지 못했다.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고 경고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 같다.

어떻게 스웨이를 일으켜야 하는가?

저자는 CRM이라는 장치를 우리에게 설명해준다. Crew Resource Management의 약자로 한국말로는 승무원 상호협조 훈련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비행기 내의 승무원. 적어도 조종실 내의 사람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CRM을 통한 이의제기 방식에 대해서 저자는 1단계는 사실진술. 2단계는 이의제기. 3단계는 행동과 같이 단계적인 '제동'을 걸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수직적인 지휘구조가 만연해 있던 항공업계의 부작용이 테네리프 섬의 참사를 불러왔고, 이들은 이 사건을 거울삼아 CRM이라는 스웨이 도구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사내 회식의 흥겨운 자리에서 한껏 거나해진 상사가 당신에게 불만사항을 허심탄회하게 토로하라고 말할 때, 우리는 절대 말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조직 내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사. 마지못해 따라 가야하는 의견들에 대하여 개인이 '견제'를 거는 행위가 얼마나 무모한가?

<스웨이>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비이성적인 선택에 직면했을 때 주위사람이 견제를 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지만 조직프로그램에서 그런 장치(CRM)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솔직히 말해서 한국사회에서 <스웨이>의 주장이 받아들여질지는 상당히 의문스럽다. 어려서부터 주입식교육에 익숙한 우리들. 나이와 선배개념에 익숙한 우리들. 군대에서 절대복종을 배우고 활용하는데 익숙한 우리들. 한국사회의 특수한 기업소유구조로 인해 회장이 신이라는 생각에 익숙한 우리들. 군사정부시절의 전통으로 인해 과잉충성이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는 우리들.

스웨이에서의 이상과 우리 사회의 모순이 가져오는 현실간의 괴리감을 마주하게 되니 가슴 한 편이 착잡해옴을 느낀다. 나라도 먼저 스웨이의 외침을 기억하면서 독단과 독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독단과 독선의 분위기를 흩뜨려 놓을 수 있는 '견제의 한마디'를 던지는 것에 충실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스웨이 -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선택의 비밀

롬 브래프먼 외 지음, 강유리 옮김,
리더스북, 2009


#스웨이 #오리 브래프먼 #롬 브래프먼 #리더스북 #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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