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에서 미실역을 맡은 고현정.
MBC
사극열풍이 불기 시작한 이래 TV에 등장한 인물들 중에서 미실처럼 파격적인 존재는 없었을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 국민적 관심을 얻은 사극들, 예를 들면 <대장금> <불멸의 이순신> <주몽> <태왕사신기> <이산> 등은 기본적으로 한국인들이 잘 아는 인물(이순신·고주몽·광개토대왕·정조) 혹은 한국인들의 역사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물(장금)을 소재로 한 것들이었다. 이와 달리, 미실은 기존 역사책을 통해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역사상식으로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인물이었다.
또 기존 사극에서 묘사된 여인의 이미지와 비교할 때에도 미실은 분명히 새로운 '악녀'였다. 기존 사극을 주름잡은 '악녀' 장희빈 등은 어디까지나 남성 의존적인 여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드라마 속 '악녀' 미실은 남자들에게 의지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남자들을 거느리고 자기 뜻대로 살았다. 이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선덕여왕> 속 미실이 더욱 더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 것 치고는, 미실과 '함께한' 6개월이 너무 짧았는지도 모른다. 미실이 남기고 간 의문점들은 한둘이 아니다. 그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여인이다. 이 점은, 드라마 <선덕여왕>의 바탕이 된 필사본 <화랑세기>를 읽어본 사람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실이 남기고 간 의문점들을 모두 다 다룰 수는 없으므로, 여기서는 <선덕여왕> 시청자들과 <화랑세기> 독자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미스터리 중에서 4가지만 다뤄보기로 한다. 미실이 과연 실존인물인지, 미실과 남자들의 관계는 과연 드라마에서처럼 '여존남비'였는지, 미실의 권세는 과연 진평왕의 왕권을 압도했는지, 미실과 같은 왕비족의 존재가 신라 결혼문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 것인지 하는 점이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4대 의문점이다.
[미스터리①] 미실의 실존 여부와 필사본 <화랑세기>의 신빙성'미실은 정말 대단한 여인이야!'하고 단정을 내리기 전에, 아직까지는 미실의 실존 여부를 확정할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잘 알다시피 필사본 <화랑세기>의 진위 논쟁이 학계에서 아직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 없는 이 논쟁의 결과에 따라 미실은 실제 인물이 될 수도 있고 허구의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이 논쟁의 최종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간에, 미실의 실존 여부와 필사본 <화랑세기>의 신빙성을 규명할 때에 우리가 반드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하나는, 필사본 <화랑세기> 한 권만으로 이 책의 진위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필사본을 다 읽어본 뒤에 '이거 거짓이구나' 혹은 '이거 진짜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해서, 그 느낌을 그대로 신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는 물증 없이 심증만으로 재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또 하나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와의 비교를 통해 필사본 <화랑세기>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도 일정한 한계가 따른다는 점이다. 비교 대상이 될 만한 샘플이 단 2개밖에 남아 있지 않고 그나마 두 책의 분량도 그리 많지 않은데다가, 두 사료 모두 신라가 멸망하고 나서 수백 년 뒤에 기록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필사본 <화랑세기>의 진위 여부를 확정하려면, 일본측에 원본 확인에 관한 협조를 요청하든가 아니면 일본에 가서 원본을 직접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필사본과 원본을 대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위의 2가지 방법에만 의존하는 것은 지나치게 안이하면서도 위험스러운 접근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실의 실존 여부도 그 같은 공을 들인 연후에야 비로소 확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미실은 파격적인 여인인 동시에 참으로 '쉽지 않은' 여인이다. 일본까지 다 수색해본 연후에야 그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으니 말이다.
참고로, 시중에 나와 있는 <화랑세기> 번역본 가운데에는 원문의 일부만 번역한 축약본도 있어서, 축약본만 읽은 독자들은 <화랑세기> 전문에 근거한 기사나 논문 등을 읽고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스터리②] 미실의 집안은 과연 '여존남비'였을까?드라마 속에서 미실은 정식남편인 세종(독고영재 분)과 '사실상의 남편'인 설원(전노민 분)보다 항상 상석에 앉았다. 미실이 한가운데에 앉고 세종은 미실의 오른쪽에, 설원은 그 왼쪽에 앉았다. 이런 장면을 보고서 '신라가 모계사회였나?'라는 의문을 갖는 시청자들도 있었던 듯하다.
이 같은 드라마 속의 풍경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화랑세기> 제8세 풍월주 문노 편에 나오는 문노 부부의 관계로부터 유추될 수 있는 사항이다.
진지왕 등극(576년) 이후에 미실의 주선으로 만난 문노와 윤궁(미실의 사촌자매)의 결혼생활은 크게 두 단계로 구분될 수 있다. 각각의 단계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면 미실과 남자들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제1단계는 문노가 골품이 없어서 윤궁보다 신분이 낮았던 때였다. 이때 두 사람은 함께 살기는 했지만 현대적 개념의 결혼식을 치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현대적 개념의 사실혼(동거)을 한 것 같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이때에는 부부관계에서 윤궁의 위상이 더 높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