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표에 갇힌 한자말 (47) 노수(老樹)

[우리 말에 마음쓰기 801] '자성(自省)'과 '스스로 뉘우치는'

등록 2009.11.17 19:04수정 2009.11.17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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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자성(自省)

 

.. 다시 말해 성악설 쪽이 결과적으로는 언제나 깊은 자성(自省)과 행복을 선사받는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  《소노 아야코/오경순 옮김-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리수,2005) 45쪽

 

 "결과적(結果的)으로는"은 "나중에 보면"으로 다듬거나 덜어냅니다. '행복(幸福)'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즐거움'으로 손보아도 됩니다. '아이러니(irony)'는 '뒤집기'로 손질할 수 있고, 앞말과 묶어 "즐거움을 선사받아 놀랍다고나 할까"나 "즐거움을 선사받아 재미있다고나 할까"나 "즐거움을 선사받아 뜻밖이라고나 할까"처럼 손질해 주어도 잘 어울립니다.

 

 ┌ 자성(自省) : 자기 자신의 태도나 행동을 스스로 반성함

 │   - 정치권의 자성을 촉구하다 /

 │     부유층에서 과소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     과거에 대한 자성이 없이는

 │

 ├ 깊은 자성(自省)과 행복을 선사받는

 │→ 깊이있게 스스로 뉘우치며 즐거울 수 있는

 │→ 깊이 뉘우치며 즐거움을 찾는

 │→ 스스로를 깊이있게 돌아보며 즐거웁게 되는

 │→ 스스로 깊이 돌아보며 즐거움을 찾는

 └ …

 

 "스스로 반성(反省)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한자말 '자성'입니다. '반성'이란 "자신의 언행에 대하여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 봄"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성'은 "스스로를 돌아본다"는 뜻이요, 말 그대로 "스스로 돌아본다"고 하거나 "스스로를 뉘우친다"고 할 때가 가장 알맞고 올바릅니다.

 

 다만, 한자말 '자성'을 쓰고 싶은 분은 이 낱말을 쓸 노릇입니다. 쓰고자 한다면 알맞게 쓸 노릇이고, 제대로 쓸 노릇입니다. 그런데, 이 한자말을 쓰면서 '자성한다'가 아니라 '자성(自省)한다' 꼴이 된다면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써서는 알아듣기 어렵거나 잘못 알아들을 수 있음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자성'을 말하는 분은 이 낱말을 모르지 않겠지만, '자성'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은 이 낱말을 모를 수 있다는 소리이니까요.

 

 우리는 서로서로 잘 알아듣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말을 하고 글을 써야 올바릅니다. 나 혼자만 잘 되기를 바라는 삶이 아니라 다 함께 잘 되기를 바라는 삶으로 나아가야 하고, 나 혼자만 알면 되는 글이 아니라 다 함께 알 수 있는 글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만 배부르면 끝인 삶이 아니라 나와 네가 배부를 수 있는 삶으로 나아가야 하며, 나만 알면 되는 말이 아니라 나와 네가 함께 알 수 있는 말로 나아가야 합니다.

 

 ┌ 정치권의 자성을 촉구하다 → 정치권 스스로 돌아보라고 말하다

 ├ 과소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지나친 씀씀이를 뉘우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지나친 씀씀이를 뉘우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과거에 대한 자성이 없이는

 │→ 지난날을 스스로 뉘우치지 않고는

 │→ 지난일을 스스로 돌아보지 않고는

 └ …

 

 늘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내 매무새를 차근차근 가다듬습니다. 언제나 스스로를 되새기면서 내 넋과 얼을 추스릅니다. 꾸준히 스스로를 되짚으면서 내 말과 글이 제자리를 곱다시 지키도록 보듬습니다.

 

 

ㄴ. 노수(老樹)

 

.. 나는 마을에 들어설 때마다 한 그루의 노수(老樹)가 있는 것을 보았다 ..  《시바 료타로/박이엽 옮김-탐라 기행》(학고재,1998) 230쪽

 

 "한 그루의 나무"는 "한 그루 나무"나 "나무 한 그루"로 고쳐씁니다. "있는 것을"은 "있는 모습을"로 손질합니다.

 

 ┌ 노수(老樹) : 오래된 나무

 │   - 이 동네에는 몇백 년은 되었음 직한 노수들이 눈에 띈다

 │

 ├ 한 그루의 노수(老樹)가

 │→ 한 그루 늙은 나무가

 │→ 늙은 나무가 한 그루

 │→ 늙은 나무 한 그루가

 └ …

 

 오래된 나무를 가리켜 '노수'라 한다면, 오래되지 않은 나무는 무엇이라고 가리키는지 궁금합니다. 오래된 나무는 말 그대로 "오래된 나무"일 뿐이 아닌가 싶고, 예부터 으레 '늙은나무'라 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자라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나무를 가리킬 때에는 '어린나무'라 하고, 무척 오래된 나무를 가리킬 때에는 '늙은나무'라 해 왔다고 떠오릅니다.

 

 그러나 우리네 국어사전에는 '늙은나무'라는 낱말이 실리지 않습니다. 뜻밖에도 '어린나무'라는 낱말은 실려 있는데, '어린나무'를 국어사전에 싣는다면, 이와 맞서는 낱말 '늙은나무'를 함께 실어야 올바르지 않을까요? 아니, 마땅히 '늙은나무'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 실어야 하지 않을까요?

 

 ┌ 어린나무 / 어린마음

 └ 늙은나무 / 늙은마음

 

 우리 둘레를 가만히 돌아보면, '늙은이'라는 낱말을 썩 못마땅히 여깁니다.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낱말인 '늙은이'인데, 마치 나이든 사람을 비아냥거리거나 깔보는 낱말인 듯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똥을 '똥'이라 못하고 오줌을 '오줌'이라 못하며, 자지보지를 '자지보지'라 안 하는 우리 마음결 탓이라 할 텐데, '늙은이'를 한자로 옮긴 '노인(老人)'이라고 해야 나이든 사람을 섬기는 듯 여기는 흐름하고 매한가지입니다. "노인 공경"이나 "노인 우대"처럼 한자말로 이야기해야 높이거나 섬긴다고 여기는데, "어른 모시기"나 "어르신 섬기기"처럼 적으면서도 얼마든지 나이든 사람을 높이거나 섬기는 마음을 담을 수 있습니다.

 

 ┌ 몇백 년은 되었음 직한 노수들

 │

 │→ 몇백 해는 되었음 직한 늙은나무들

 │→ 몇백 해는 되었음 직한 나무들

 └ …

 

 보기글을 다시 생각합니다. 이 보기글을 통째로 손질해서 "나는 마을에 들어설 때마다 오래된 나무를 한 그루 보았다"나 "나는 마을에 들어설 때마다 늙은 나무 한 그루쯤 보았다"나 "나는 마을에 들어설 때마다 늙은나무를 한 그루씩 보았다"처럼 다시 적어 봅니다. 어쩌면, 이 글을 쓴 일본사람은 "나는 마을에 들어설 때마다 꼭 늙은나무 한 그루씩 보곤 했다"처럼 말을 하고프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1.17 19:04ⓒ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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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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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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