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도시의 크리스마스 무렵

찬바람 불 때 다시 보는 영화(4) - <상성傷城>

등록 2009.11.28 18:48수정 2009.11.2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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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주는 두 가지 감정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아쉬움과 새로이 다가올 또다른 한해를 기다리는 설렘에 있을 것이다. 이같은 극과 극의 두가지 개념을 동시에 가진 영화가 하나 있으니, 바로 <상성傷城>이다. 지나온 시절에 대한 회한과 분노, 짓이겨진 상처를 부둥켜안고서 괴로워하지만 또 다른 희망을 끝없이 기다리는 도시! 그 안의 사람들을 통해서 크리스마스 무렵의 홍콩을 담담히 그리고 있다.


<상성>(傷城, Confession Of Pain)
  2007년
  유위강 , 맥조휘 감독
  양조위, 금성무 주연/ 서기, 서정뢰 출연


한자로 '다칠 상(傷)'자는 '해치다','애태우다', '근심하다', '불쌍히 여기다'는 뜻이 함축된 글자이다. 이 영화 '상성(傷城)'에서 한 남자의 마음 속 상처는 그를 애태우고 근심하게 하며, 결국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복수로 이끈다. 하지만 인과응보라는 것이 사람이 관여할 일이 아님을 깨닫게 하고 미움이란 것이 모두 부질 없는 짓임을 보여준다.

나약한 인간, 남을 짓눌러서라도 자신이 뜻한 바를 차지해야만 하는 인간, 이 모두가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는 도시! 홍콩의 크리스마스 무렵을 잔잔한 시선으로, 때로는 박진감과 코믹을 배합하여 그리고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이는 세계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아편 전쟁','영국으로의 홍콩 양도','중국으로의 홍콩 반환'등의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다치고 신음하지만 내일을 꿈꾸는 홍콩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화려한 네온 싸인 저편에서는 범죄와 폭력이 난무하지만 모든 것을 품어주는 어머니 같은 홍콩의 현재 모습을 두 남자의 우정을 통해서 보여준다.

영화 속으로

애인의 뜻 모를 자살로 상처받은 영혼인 아방(금성무)은 그 충격으로 경찰관을 그만두고 사립탐정이 된다. 그가 경찰관으로 일하던 시절 반장이었던 유정희(양조위)는 동료 이상의 우정을 지닌 사이로서 신혼의 행복한 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양조위의 장인이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돈을 노린 단순 강도로 사건을 마무리 하지만 유정희의 아내 숙진(서정뢰)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고 여겨서 이 사건을 사립탐정인 아방에게 의뢰한다.

이를 알게 된 유정희는 아방의 일에 적극 협조하면서 한편으로는 아내가 사건으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런 맥락으로 아내의 국에 약간의 수면제를 타서 먹이고 있노라고 말하며 가정적인 남자가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건 초반 부터 유정희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던 아방에겐 시간이 갈수록 그가 범인이라는 심증만 굳어져 갈 뿐이다.


갈등하는 주인공 유정희(양조위 분) 양조위의 영화 인생 최초의 악역으로서 이름을 올린 이 영화에서 감독은 선한 그의 얼굴에서 악인의 두 얼굴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한다.
갈등하는 주인공 유정희(양조위 분)양조위의 영화 인생 최초의 악역으로서 이름을 올린 이 영화에서 감독은 선한 그의 얼굴에서 악인의 두 얼굴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한다.상성

한편 물증을 찾지 못한 채로 범죄를 파헤쳐 가던 중, 유정희의 아내인 숙진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으니.. 집을 서성이는 낯선 사내의 그림자가 며칠 째 맴돌다가 휘발유를 문틈으로 들이붓고 불을 붙이는 사건이 발생한다.하지만 별다른 사고없이 끝나는가 싶다가 어느날 가스가 폭발하여 숙진은 큰 화상을 입고 목숨만 겨우 건지게 된다.

한편 사건을 조사하던 아방은 유정희의 집에서 발견했던 탁구라켓에 씌여진 이름을 단서로 결국 그가 진범 임을 알게 된다.그것은 유정희가 어린 시절 상으로 받았다던 라켓이었는데, 유정희가 아닌 낯선 이름이 씌여진 것을 수상히 여긴 아방의 집요한 수사로 그의 어린시절에 얽힌 트라우마를 알게 된다.


25년 전, 경찰관이었던 유정희의 아버지는 한 무리의 범죄자 들을 소탕했었다. 이에 앙심을 품은 무리들이 그의 집을 습격하던 날, 일가족이 모두 몰살 되는 광경을 우연히 보게된 유정희는 겨우 도망 나와서 자신의 이름조차 버리고 낯선 이의 이름으로 살아가며 25년이란 시간을 복수의 기회만 기다리며 경찰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원수의 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원수를 죽이고, 이제는 자신의 아내가 된 원수의 딸 마저 죽이려 한 것이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아방에게 범죄자 유정희는 묻는다.

"너라면 어떻게 했겠어?"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하지만 형수가 무슨 죄가 있어요?"
"그럼 우리 가족은 무슨 죄가 있었길래?"

그 과정에 아방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애인이 자살하기 며칠 전 낙태를 했는데 그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었고, 죽기 전날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노라고..그래서 그가 누구일지 더욱 찾아다녔노라고 말한다. 또한 그를 찾았을 땐 이미 식물인간이 되어 병원에 누워있었고 아방은 그를 죽이는 환영을 몇번씩 꿈꾸지만 하지 못하고, 오히려 간병인이 되어 원수를 보살펴주고 있노라고 말하는 것이다.

직장 선배의 범죄를 쫓는 아방(금성무 분) 두 주인공의 캐릭터 중 금성무가 맡은 아방은 분노와 미움도 사랑으로 감싸안는 유형이다.결국 이런 성격은 복수에 집착하던 사람의 다친 마음도 다스히 감사주게 된다
직장 선배의 범죄를 쫓는 아방(금성무 분)두 주인공의 캐릭터 중 금성무가 맡은 아방은 분노와 미움도 사랑으로 감싸안는 유형이다.결국 이런 성격은 복수에 집착하던 사람의 다친 마음도 다스히 감사주게 된다상성

이 말을 들으며 유정희는 자신의 가족을 죽인 원수를 복수 한다는 일념으로, 정작 자신의 아내를 고통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복수에 눈이 멀어서 이제는 자신의 가족이 된 아내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더구나 숙진이 원수의 친딸이 아닌 입양한 딸인 이상, 아내와 행복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한다. 결국 그를 괴롭히던 고통을 자백함으로써 그  고통에서 해방되고 마음의 정리가 된 듯 하지만 (영어 제목이Confession Of Pain;고통의 자백)그때 이미 숙진은 죽어버렸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유정희는 죄책감과 생에 대한 상실감으로 권총 자살을 한다. 

홍콩 느와르의 새로운 모색

과거 홍콩 무협 영화는 과장된 남성성을 과시했다. 과도한 의리의 강조,잔인한 살생,조직문화에 불응한 자에 대한 응징이나 원수를 처단하는 것에 대한 무조건적 합리화는 홍콩 느와르의 대표적 코드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고정화된 형식을 넘어서서 '인과응보'라는 전통적 관념 보다는 용서와 화합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크리스마스에는 누구나 착한 일을 하고 선물을 기대하듯이 그간의 지은 죄 조차도 크리스마스에는 모두 용서가 되기를 비는 어린 아이들 처럼 그들은 홍콩의 품에서 숨쉬고 꿈꾸는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홍콩의 볼거리를 담아서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곳이기도 하며 반환됐음에도 아직까지  반환 이전의 체제를 유지하고서 한 다리는 중국에, 나머지 한 다리는 영국에 걸친 형국의 홍콩을 '상처 받은 도시'로 비유하며 홍콩의 소호거리를 중심으로 홍콩의 다양한 풍광들을 제공한다. 특히 소호 거리 전체를 전세 내어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희망과 셀렘으로 가득찬 도시 모습을 통해서 영화의 전반적 분위기가 침체 되지 않도록 조율한 흔적을 볼 수 있다.

맛깔스런 조연들의 행진

이 영화에는 양조위,금성무 외에 맛깔스런 감초들이 많이 등장한다. 영화 <유리의 성>에서청순미로 인상 깊었던 배우 서기가  금성무의 귀여운 애인으로 등장한다. 그외 양조위의 아내 역할로 나온 서정뢰의 경우, 여러 편의 영화와 TV 시리즈를 통해 인기를 얻었고 중화권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한 배우이다. 연출과 각본, 연기에도 두각을 나타내는 다재다능한 재능의 그녀는 첫 연출 데뷔작 <아버지와 나>를 통해서 동경 영화제와 토론토 영화제 등에서 호평 받았다. 한국의 신세대 스타이며 영화감독으로도 이름을 올린 구혜선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력의 소유자이다.

영화 <중경삼림>에서 단정한 경찰 제복의 양조위는 어느덧 나이 쉰을 바라 보는 중년이 되었다. 같은 영화에서 옴니버스 1편에 출연했던 금성무 역시 조금 바래진 얼굴에 쌍꺼풀 수술한 눈으로 세월의 흐름을 관객과 함께 하고 있다. 배우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함께 늙고 세월의 풍파를 겪어간다는 것은 멀리 있는 친구의 안부를 들었을 때 만큼이나 반갑기만 하다.

사람과 함께 나이들고 그 나이 만큼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도시를 생명체 처럼 바라본 영화 <상성>은 홍콩이라는 매력적인 도시를 다시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상처받은 도시의 상처받은 군상들! 하지만 그들은 역시나 꿈을 꾸고 그 꿈에 기대어서 살아간다.그리고 그들의 상처조차도 크리스마스 무렵의 도시에서는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이 된다.
#상성 #홍콩 #양조위 #금성무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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