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밭에서 기념촬영
전희식
이맘때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하는 일이 있다. 농사일이 다 끝나고 알곡은 알곡대로 곳간으로 가고, 쭉정이는 아궁이나 거름자리고 들어가고 나면 하게 되는 손님 맞을 채비다. 귀농하겠다는 사람들의 방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귀농희망자들의 방문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농사체험 위주의 방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처럼 귀농준비가 다 된 사람들의 귀농지 탐방을 위한 방문이다. 일반 농가와 달리 나는 비닐집 농사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농한기와 농번기가 뚜렷이 구분된다. 시설농사를 하는 농부들은 농사철이 따로 없다. 사시사철 일속에 파 묻혀 산다.
이번에 온 사람들은 모두 스물 한 명이었다. 애들이 두 명 있었는데 이들을 포함해서다.
전국 각지에서 온 이들은 정년퇴직을 한 사람도 있었지만 새파란 20대 부부도 있었다. 아예 직장에 사표를 써 놓고 온 사람도 있었다. 각양각색의 사연과 계기를 통해 귀농을 감행하는 이들의 일치점은 딱 하나다. 물질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도시의 삶을 과감하게 포기하겠다는 의지다.
넉넉한 마음을 넉넉한 재산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여성들은 하나같이 화장기 없는 맨얼굴이요. 옷 입성도 수수하고 얼굴들은 해맑다. 한 결 같이 공손하고 삶에 대한 진지함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묻어난다. 종사했던 분야의 전문지식이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환경문제에 대한 의식은 높고 평소의 생활도 생태순환적인 삶이다. 여러 차례 이들을 맞으며 확인하게 되는 사실들이다.
이분들의 질문도 다양하다.
추수가 끝나서 텅 비어있는 논으로 가서 우렁이를 이용한 자연농법 이야기를 하는데 한 사람이 질문을 했다. 남의 논인데 비료나 농약을 전혀 안 쓰고 그렇게 땅심을 키운다고 녹비작물 재배해서 거름 만들어 넣으면 언젠가 논 주인이 논을 돌려 달라고 할 때 억울하지 않겠냐는 질문이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그냥 부쳐 먹을 수 있는 날까지 정성을 다해 농사를 지을 생각만 했지 논의 지력이 회복되어 건강한 쌀이 생산 될 때 논을 내 놓으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건지 생각 해 보지 않았다. 아니, 생각 해 보지 않았다기보다 달라면 당연히 줘야 하는 걸로 생각했지 억울한지 어떤지를 생각 해 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억울하고 자시고 할 게 없어 보였다. 내 손을 거친 논이 척박해지기보다 훨씬 걸게 되어 주인에게 돌아간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 싶어 그렇게 대답을 했다. 외국까지 가서 자원봉사도 하는데 내 집에 앉아서 남 좋은 일 좀 하면 어떠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