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자청하여 스스로
.. 처음에는 주인의 만류가 완강했지만, 그는 태백산에서의 체험담을 토로하며 양지기 생활을 흔연히 자청하여 스스로 시작하기에 이른 것이다 .. 《백운-양치는 성자》(해뜸,1988) 113쪽
"주인의 만류(挽留)가 완강(頑强)했지만"은 "주인이 몹시 말렸지만"으로 손봅니다. "태백산에서의 체험담(體驗談)을 토로(吐露)하며"는 "태백산에서 겪은 일을 털어놓으며"나 "태백산에서 있던 일을 들려주며"로 다듬고, '흔연(欣然)히'는 '기꺼이'로 다듬습니다. "양지기 생활(生活)"은 "양지기 삶을"이나 "양지기를"로 손질해 주고, "스스로 시작(始作)하기에 이른 것이다"는 "스스로 하기에 이르렀다"로 손질합니다.
┌ 자청(自請) : 어떤 일에 나서기를 스스로 청함
│ - 그는 그 일을 맡겠다고 자청을 하고 나섰다 /
│ 자기가 만나러 오겠다고 자청했으니 /
│ 스스로 삼촌의 뒤를 잇겠다고 자청하고 나왔었다
│
├ 자청하여 스스로 시작하기에
│→ 스스로 하겠다고 나서기에
│→ 스스로 바라면서 하기에
│→ 스스로 나서서 하기에
└ …
스스로 바라면서 하는 일을 가리키는 '자청'이라 한다면, 이 낱말만 써야지, 앞이나 뒤에 '스스로'나 '자기'를 넣으면 겹치기가 됩니다. 그러나, 국어사전에서 '자청'을 찾아보니, 보기글 두 군데에나 겹치기가 보입니다.
말뜻이 어떠하고 말쓰임이 어떠한가를 살피지 않고 달아 놓은 보기글입니다. 국어학자들도 얄궂은 말매무새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러한 보기글을 읽는 사람들 또한 얄궂은 말매무새가 물들겠구나 싶습니다. 이 같은 국어사전은 바로잡힐 수 있을까요? 이 같은 국어사전이 잘못인 줄 깨닫고 바로바로 바로잡으려는 몸짓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국어사전에서 잘못된 대목을 알려주려는 사람들 목소리를 국어학자는 얼마나 귀담아듣고 있을까요?
┌ 자기가 만나러 오겠다고 자청했으니
│→ 자기가 만나러 오겠다고 했으니
├ 스스로 삼촌의 뒤를 잇겠다고 자청하고 나왔었다
└→ 스스로 삼촌 뒤를 잇겠다고 나왔다
낱말 뜻풀이를 찬찬히 살피고, 낱말 씀씀이를 깊이깊이 되새겨 주면 고맙겠습니다. 말 한 마디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우리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글 한 줄이라고 대충대충 적바림하면서 우리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ㄴ. 항상과 늘
.. 아니카는 다림질을 잘한 무명옷을 항상 깨끗하게 차려입고 있었는데, 옷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늘 조심을 했다 .. 《아스트리드 린그렌/김인호 옮김-말괄량이 삐삐》(종로서적,1982) 7쪽
"조심(操心)을 했다"는 "마음을 썼다"나 "알뜰히 살폈다"로 다듬어 줍니다.
┌ 항상(恒常) : 언제나 변함없이
│ - 그녀는 항상 웃는다 / 그는 항상 바쁘다
│
├ 항상 깨끗하게 차려입고 (x)
└ 늘 조심을 했다 (o)
'항상'은 한자말입니다. '늘'은 토박이말입니다. 둘은 같은 말입니다. 둘은 뜻이 같은 말이요, 쓰임새 또한 같은 말입니다. 그러나 둘이 같은 줄 모르는 분이 제법 많습니다. 둘이 같은 줄 알면서 겹치기로 잘못 쓰는 분 또한 꽤 많습니다.
국어사전에서 '언제나'라는 낱말을 찾아봅니다. 낱말풀이는 "때에 따라 달라짐이 없이 항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항상'을 풀이하며 '언제나'라 이야기하고, '언제나'를 풀이하며 '항상'을 이야기하는 꼴입니다. 앞뒤가 아주 어긋나 버린 낱말풀이입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이런 엉터리 낱말풀이를 알아차리는 한국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알아차린 분 가운데 국어학자한테 따지는 분은 더욱 드물며, 이런 어긋나고 잘못되고 뒤틀린 국어사전이 바로설 수 있도록 힘이나 마음을 모아 주는 분은 더더욱 드뭅니다.
┌ 항상 웃는다 → 언제나 웃는다 / 늘 웃는다
└ 항상 바쁘다 → 언제나 바쁘다 / 늘 바쁘다
우리들은 언제나 너무 바쁘기 때문일까요. 우리들은 늘 너무 할 일이 많기 때문일까요. 우리들은 노상 온갖 곳에 마음을 써야 하니, 우리 말쯤이야 마음을 쓸 겨를조차 없기 때문일까요.
언제나 뒷전이고 늘 뒤로 밀리며 노상 뒷자리에 처박히는 우리 말이요 우리 글입니다. 옳게 쓰이거나 알맞게 쓰이는 말과 글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얄궂게 쓰이거나 안타깝게 쓰이는 말과 글만 가득한 우리 터전이요 우리 책이요 우리 방송이요 우리 신문입니다.
하루하루 나아지는 말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새로워지는 말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싱그러워지는 말이 아닙니다. 배운 사람은 늘고, 책은 끝없이 나오며, 온갖 글이며 기사며 방송이며 넘쳐나지만, 한결같이 다루고 있는 말 하나 제대로 추스르는 사람을 만나기란 참으로 힘듭니다. 올바로 생각하고 올바로 말하며 올바로 살아가는 사람을 찾기란 더없이 어렵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2.07 18:24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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