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275) 결사적

― '결사적인 군관민들의 항쟁' 다듬기

등록 2009.12.09 14:26수정 2009.12.09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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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사적인 군관민들의 항쟁

 

.. 결사적인 군관민들의 항쟁으로 임진년 전투는 진주성이 대승을 거둔다 ..  《김현아-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호미,2009) 111쪽

 

 "군관민들의 항쟁(抗)으로"는 "군관민들이 항쟁하여"나 "군관민들이 맞서 싸워서"로 다듬습니다. '전투(戰鬪)'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싸움'으로 손보아도 됩니다. "대승(大勝)을 거둔다"는 "큰 승리를 거둔다"나 "크게 이긴다"로 손질합니다.

 

 ┌ 결사적(決死的) : 죽기를 각오하고 있는 힘을 다할 것을 결심한

 │   - 결사적 투쟁 / 우리는 결사적으로 싸웠다 / 떨어지지 않으려고 결사적으로 붙잡았다

 ├ 결사(決死) : 죽기를 각오하고 있는 힘을 다할 것을 결심함

 │   - 결사 투쟁을 다짐하다

 │

 ├ 결사적인 군관민들의 항쟁으로

 │→ 죽기살기로 군관민들이 항쟁하여

 │→ 죽기살기로 군관민들이 맞싸우며

 │→ 죽음을 무릅쓰고 군관민들이 맞서면서

 │→ 죽을 다짐으로 군관민들이 맞서면서

 └ …

 

 죽기를 다짐한다는 자리에서 쓰는 한자말 '결사'요 '결사적'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필사'와 '필사적'이라는 한자말을 쓰곤 합니다. '결사적'과 '필사적'은 거의 같은 자리에 거의 같은 뜻과 느낌으로 쓰는데, 꼭 한 군데에서 서로 엇갈립니다. 국어사전 말풀이에서 '필사적'은 "죽을힘을 다함"으로 풀이를 해 놓습니다.

 

 '죽을힘'이 한 낱말인지 아닌지 모르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만, '죽을힘'은 틀림없는 한 낱말이요, '결사-결사적-필사-필사적' 같은 한자말이 오늘날처럼 두루 퍼지기 앞서 쓰던 낱말입니다. 뜻풀이는 "죽기를 다짐하고 쓰는 힘"입니다. 그러니까, '죽을힘' 말뜻을 돌아보면, 한자말 '결사'하고 똑같습니다.

 

 ┌ 결사적 투쟁 → 죽음을 다짐한 싸움 / 죽음을 무릅쓴 싸움

 ├ 결사적으로 싸웠다 → 죽기살기로 싸웠다 /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다

 └ 결사적으로 붙잡았다 → 죽기살기로 붙잡았다 / 이를 악물고 붙잡았다

 

 "결사적 투쟁"은 "죽을힘을 다하는 싸움"으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결사적으로 싸웠다"는 "죽을힘을 다하여 싸웠다"로 고쳐써도 됩니다. "결사적으로 붙잡았다"는 "죽을힘을 다하여 붙잡았다"로 고쳐써도 잘 어울립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씀이를 꺼리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밥'을 꺼리고 '식사'를 쓰고, '잘 있어/잘 가'를 꺼리며 '안녕'을 쓰며, '낯빛'을 꺼리는 가운데 '인상'을 쓰는 분들은 으레 '죽을힘'보다는 '결사-필사'를 좋아합니다. 아니, '똥오줌'을 꺼리고 '분뇨'를 쓰듯, '죽을힘' 같은 낱말은 못마땅하게 다루거나 다소곳하지 못하다고 여깁니다.

 

 ┌ 이를 악물고 맞싸워 크게 이겼다

 ├ 죽음을 두려워 않고 맞싸워 크게 이겼다

 ├ 죽을힘을 다해 맞싸워 크게 이겼다

 └ …

 

 우리는 죽을힘을 다하듯 이를 악뭅니다. 이를 악물듯 젖먹던 힘을 냅니다. 젖먹던 힘을 내듯 용을 씁니다. 용을 쓰듯 발버둥을 칩니다. 발버둥을 치듯 몸부림을 치며, 몸부림을 치듯 있는 힘이나 갖은 힘을 다 내려고 합니다.

 

 ┌ 젖먹던 힘을 내다

 ├ 용을 쓰다

 ├ 발버둥을 치다

 ├ 몸부림을 치다

 ├ 있는 힘을 다하다

 ├ 갖은 힘을 다 내다

 └ …

 

 꼭 한자말을 꺼려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반드시 살갑고 싱그럽고 아름답고 손쉽다 할 만한 토박이말을 가려내고 찾아내어 써야 한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죽을힘'을 꺼리며 '결사'와 '필사'를 쓰는 사이, 또한 '결사적'과 '필사적'처럼 '-적'붙이 말마디를 자꾸 쓰는 사이, 온갖 우리 글줄과 말마디는 스러집니다. 때와 곳에 따라 달리 쓰던 글줄과 말마디가 잊힙니다.

 

 때때로, "사력(死力)을 다하다" 같은 말마디를 듣습니다. 이와 함께, 예부터 익히 듣던 "목숨을 아끼지 않다" 같은 말마디는 듣기 어려워집니다. 한 가지 한자말을 쓰고 또 쓰는 동안, 한자말로 빚은 말투를 이래저래 새로 쓰고 거듭 쓰는 동안, 우리 말살림은 늘어나지 않습니다. 새 말투가 늘어난 셈이 아니라, 예전부터 즐겨쓰던 말투가 밀려나거나 쫓겨납니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결사적으로 싸우다"도 이제는 우리 말투요, "필사적으로 버티다"도 우리 글월이요, "사력을 다하다"도 우리 말마디라 여길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은 이런 말과 글을 익히 받아들여서 쓰고 있으니까요. 퍽 많은 사람들은 이 같은 말과 글로 당신 생각을 나타내고 있으니까요. 이제는 거의 모든 책과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에서 이러한 말마디와 글줄로 우리 세상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 사력을 다하다 (x)

 └ 목숨을 아끼지 않다 (o)

 

 귓가로 흘려들고 머리속에 스며드는 말마디가 무엇인지를 똑똑히 가리거나 살피지 못한다고 하겠습니다. 말을 듣고 글을 읽을 때, 내가 듣는 말과 내가 읽는 글이 잘 짜인 말과 글인가를 곰곰이 되씹지 못한다고 하겠습니다. 말을 들을 때마다 '여보쇼, 댁이 읊는 이 말은 이곳이 이렇게 잘못되었소'하고 꼬집거나 나무라기란 어렵습니다. 이렇게 꼬집으로 나무라다 보면, 맞은편에서는 아무 말도 못할 수 있으니까요. 글을 읽으면서도 '이런, 이 사람은 이렇게 글이 형편없네'하면서 이 대목을 고치고 저 대목을 손질하다 보면, 정작 글쓴이가 무엇을 밝히려고 했는지를 놓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말쟁이한테든 글쟁이한테든, 당신이 밝히거나 나타내려는 뜻과 생각을 좀더 올바르고 한결 알맞춤하게 가다듬도록 바라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때그때 곧바로 말을 끊고 글을 자르면서 고쳐쓰라고 나무라지 않는 만큼, 나중에라도 당신 말을 되돌아보면서 다잡고, 뒷날이라도 당신 글을 곱씹으면서 추스르기를 바라야 한다고 느낍니다.

 

 죽을힘을 다해서 바로잡거나 다듬어 줄 말과 글이라면 고맙겠지만, 용을 써서 다독이거나 갈고닦아 줄 말과 글이라면 반갑겠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내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차근차근 내 말마디와 글줄을 돌아보거나 되새겨 주어야지 싶습니다. 얼마나 쓸 만한 말을 쓰는지를 생각하고, 얼마나 알맞게 글을 쓰는지를 헤아려 주어야지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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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9 14:26ⓒ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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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적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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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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