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둑에서 시원하게 오줌을 싸는데...

술 취해서 화장실 갈 때 조심하는 이유

등록 2009.12.13 16:50수정 2009.12.1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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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날 오후였다.


하릴없이 뒹굴고 있는데 3층에 사는 우주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운이 엄마야, 우리 집에 맛있는 거 있으니 올라와"

아랫집 윗집에 사는 우린 친언니 친동생 같은 사이로 서로의 집 문을 열어놓고 내 집 드나들 듯 하는 사이였다.

심심한 차에 잘 됐다싶어 올라갔더니 언니는 탕수육과 소주를 이미 상에 다 차려놓은 채로 얼른 앉아서 먹으라고 했다.

술을 즐겨하는 언니와 나는 가끔 낮술을 하긴 했지만 더운 여름 날 오후에 소주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맛있는 안주를 핑계 삼아 언니와 나는 낮술을 시작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먹고 마시고, 수다를 떨며 먹고 마시고, 그러다가 이웃집 현희엄마에게서 전화가 오자 빨리 오라고해서 같이 또 한 잔 마시고. 더운 날 선풍기 하나 틀어놓고 마시자니 술은 빨리 취해왔고. 그렇게 우린 소주 세병을 마셨고 일찍 시작한 우주엄마와 나는 기분이 살짝 좋아질 정도로 취했다.

그런데 늦게 온 현희엄마는 술이 부족하다며 맥주를 한 병을 더 사다가 먹자고 했다.
우린 그러자며 슈퍼에 가서 1.8리터짜리 맥주 한 병을 사왔고 덥다는 핑계로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캬! 죽인다!"

현희엄마가 외치자 우린 자지러지게 웃었고 또 그렇게 시원한 맥주를 마셔댔다.

그 후로도 술에 취한 우린 1.8리터짜리 맥주를 두 병이나 더 사다 마셨고 남편들의 퇴근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저녁밥을 지을 생각도 않고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다가 부랴부랴 정신을 챙기자며 헤어졌다.

집에 내려와서 부랴부랴 저녁준비를 하는데 남편이 들어왔다. 술이 취했지만 난 혼날까 봐서 안 취한 척 무척 노력을 했고 다행히 남편은 눈치를 못 챈 것 같았다.

그런데 남편이 검은 비닐봉투를 내민다.  이게 뭐람. 헉! 소주 두병이다.

평소에 남편과 가끔 술을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하필 오늘 또 소주 두병을 사오다니.안 마시자니 술 좋아하는 마누라가 안 마시는 걸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테고 마시자니 이미 난 취해서 죽을 맛이었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두부찌개에 술상을 차렸고 남편과 마주앉아 술을 마셨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남편은 내게 술을 따랐고 난 그 술을 받아마셨다.
정신을 차리고 술상을 치운 뒤 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학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저수지를 지나 신작로에 들어서려는데 너무나 오줌이 마려왔다. 학교에 다녀오는 길이 너무 멀어서 우린 밭둑이나 논둑길 움푹 팬 곳에 앉아서 치마를 들추고 오줌을 싸곤 했는데, 늘 그랬던 것처럼 친구들과 나는 줄을 서서 밭둑에 앉아 깔깔거리고 서로를 쳐다보며 치마로 앞을 가리고 오줌을 시원하게 싸고 있는 중이었다.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 안심하고 오줌을 싸고 있는데 어디선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난 너무나 놀라서 정신을 차려보니 남편이 옆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이 여편네가 미쳤나. 정신 좀 차려라!"

난 놀라서 남편을 올려다봤고 정신을 차린 나는 순간 너무나 당황하고 민망해서 시원스레 싸던 오줌을 멈추었고 변기에 앉았다.

그랬다. 술에 취해서 잠이 든 나는 오줌이 마려웠고 꿈과 현실을 왔다갔다했나보다.밭둑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시원하게 오줌을 싸던 시골밭둑은 화장실 바닥이었던 것이었다.

다행히 술에 취해서 한 행동이라 남편이 그냥 이해해주고 넘어갔지만 그 후론 남편 앞에서는 술에 취하면 화장실 가는 것만큼은 조심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막걸리 가게를 하다 보니 가끔 만취할 때가 있다. 남편 말을 들으니 내가 취해서 가끔 화장실 간다면서 보일러실로 오줌을 싸러 간다고 문을 연다고 한다. 나는 절대 모르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그들이 특별한 술버릇을 공개합니다>응모글


덧붙이는 글 <그들이 특별한 술버릇을 공개합니다>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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