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가게에서 생긴 일

등록 2009.12.13 18:07수정 2009.12.1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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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내가 운영하는 막걸리가게에 세 번인가 온 기억이 있다.

 

아는 카페 여사장님이 같이 와서 그 사장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인사도 시켜주기에 인사를 하고 술을 같이 마신 적도 있다.

 

그 남자가 얼마 전에 술이 취해서 우리 가게에 왔다.

 

친구랑 함께 온 남자는 전에 같이 왔던 카페 여사장님이 운영하는 가게가 잘 보이는 창가로 앉더니 막걸리를 주문했다.

 

나는 막걸리를 가져다주고 안주를  만들어 준 뒤 나를 찾아 온 다른 손님과 옆 탁자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그 남자가 나를 불렀다.

 

"사장님 잠깐 앉아보세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앉았더니 대뜸 "사장님이 저기 카페 사장한테 나 이 가게 왔다고 전화해 줬어요?"하고 다짜고짜 묻는다.

 

아니라고 말했지만 남자는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내가 전해준 걸로 오해를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헤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남자는 아직 마음의 정리를 못한 상태라 여자의 뒷모습이라도 보고 싶어서 그 여주인이 운영하는 카페가 잘 보이는 곳에서 그녀를 지켜보고자했고 그녀는 그 남자가 우리 가게에 들어오는 걸 보고 가게 문을 닫고 가버린 후였다.

 

그리고 나는 다시 옆에 있는 식탁으로 와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뭔가가 나를 향해 날아왔고 나는 피할 겨를도 없이 그것에 머리를 맞고 말았다.

 

놀랐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막걸리를 담아줬던 주전자가 땅에 떨어져 있었고 내 머리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다.

 

나랑 함께 앉아있던 일행이 그 남자를 제지했고 나는 무서워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옆에 있던 손님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고 잠시 후 경찰관들이 달려왔다. 나와 그 남자는 경찰차를 타고 지구대로 향했고 그 남자는 경찰차 안에서도 술이 취해서 계속 난동을 피웠다.

 

 

지구대에 가서도 경찰관을 때리고 폭언을 하자 끝내는 그 남자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남자는 나를 노려보면서 입에 담지 못 할 욕을 해댔다. 조용히 하라는 경찰관의 말 따윈 그 남자 귀에 들릴 리가 없을 것 같았다.나는 하얀 원피스에 묻은 피를 보면서 약이 올라 죽을 지경이었다.

 

잠시 후,지구대에서 다시 차를 타라고 하더니 경찰서로 가야한다고 했다. 경찰서에 갔더니 진술서를 쓰라하고 다친 부위 사진을 찍더니 4cm가 찢어졌다면서 처벌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너무나 괘씸하여 처벌을 원한다고 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다음 날이라도 그 남자가 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 고소를 취하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 남자는 오지 않았고 결국에는 검찰에까지 가서 합의를 해야 했다.

 

병원비랑 술값 못 받은 것까지 40만원에 합의를 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렇게 끝이 났다.

 

너무나 씁쓸하였다.남자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검찰에서도 카페 여사장 이야기만 해댔다.비뚤어진 그들의 사랑 놀음에 나만 피해를 본 것 같아 한참이 지난 지금도 억울하다. 지금도 그 남자를 닮은 사람이 가게에 들어올라치면 머리가 쭈뼛하다.

 

우리 가게 벽에 해 놓은 수많은 낙서 중에 정말 가슴에 와 닿는 글귀가 있다.

 

'슬픈 날은 술 퍼. 술 푼 날은 슬퍼'

 

슬픈 날은 그냥 한 잔 마시고 울고, 술을 마셔 슬퍼지면 그냥 눈물 한 방울 흘리면 우리네 인생사 별 것 아닐 텐데. 그 남자는 그 전에도 그랬지만 그 후에도 사랑한다는 그 여사장 카페에 가서 행패를 부리고 경찰차에 몇 번을 실려 갔다.

 

그럴 때마다 아무 죄 없는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가슴을 쓸어내린다.

덧붙이는 글 | <그들이 특별한 술버릇을 공개합니다>응모글 

2009.12.13 18:07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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