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부담 줄인다면서 왜 국영수는 그대로 둘까

[교육과정 개정? 개악?②] 2009개정교육과정은 조삼모사 교육과정

등록 2009.12.14 21:25수정 2009.12.1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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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개정(미래형)교육과정은 고등학교 교육과정 자율화를 핵심으로 삼고, 초등학교와 중학교에도 집중이수제와 수업시수 증감 20%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창의적 체험활동에서는 교과에서 하지 못한 인성교육을 하고,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고교교육 파행을 막겠다고 합니다. 과연 그렇게 될까요?

조삼모사 집중이수제, 효율성 때문에 학습능력 단절시켜야 하나?

교과부에서 선진국형이라고 강조하는 집중이수제는 현재 학기당 10-13개 수업하는 교과를 학기당 7-8개로 줄인다고 합니다. 대상 교과는 주당 1-2시간인 도덕, 체육, 음악, 미술, 실과(기술․가정)입니다.

a  교과부에서 나온 2009개정육과정 홍보 자료중 일부입니다. 현재 10개의 국민공통기본교과를 교과내용은 그대로 둔 채 7-8개의 교과군으로 바꾼다고 합니다.

교과부에서 나온 2009개정육과정 홍보 자료중 일부입니다. 현재 10개의 국민공통기본교과를 교과내용은 그대로 둔 채 7-8개의 교과군으로 바꾼다고 합니다. ⓒ 신은희


언뜻 이 표만 보면 우리 학생들이 배우는 학습 내용이 많이 줄어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 학교 교사나 학생들은 아니라는 걸 압니다.

첫째, 학교에서 가장 학습부담이 큰 교과는 무엇일까요? 미래형교육과정 연구진도 수학과 영어가 가장 학습부담이 크다고 했습니다. 이런 교과는 전혀 손을 못대고 다른 교과도 정작 내용 자체는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둘째, 이 교과들이 집중이수로 배우기에 적당한 교과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식비지출과 조리의 효율성을 따져 한 학기는 고기만 먹이고 한 학기는 과일만 먹이고 그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교과들을 집중이수해야 한다는 이론 근거는 아직 제시되지 않았으니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학습효과는 어떨까요? 운동기능 같은 것은 한 번 배우면 평생 가는 것이지만, 음악, 미술 같은 경우 학년별로 계속 배우면서 학습능력(단순 기능이 아닌)이 계속 향상되어 갈 수 있습니다. 현재 교육과정 자체가 주당 1-2시간 학습하는 것에 맞춰 내용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갑자기 한 학기로 몰아서 배우면 학습능력이 단절되어 버립니다. 감성도 마찬가지겠지요.


이는 2009개정(미래형)교육과정 핵심 연구진도 인정한 사실입니다.

체육, 음악, 미술 교과는 엄밀한 의미에서 한꺼번에 통합하여 취급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계속성과 계열성, 통합성을 유지해야 한다. 체육, 미술, 음악은 활동이나 표현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반복 속에서 듣고, 보고, 행하는 활동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내용은 학생의 발달정도에 따라 성취 가능한 것을 선정해야 한다.


홍후조, <교육과정의 이해와 개발>, (문음사, 2003). 

그런데 왜 집중이수제를 강행하는 것일까요? 백번 양보해 만약 집중이수제로도 학습효과를 지속하려면 1-2학기에 몰아서 배워도 좋도록 교과교육과정을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작업은 전혀 없이 학교마다 알아서 하라고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역으로 이런 교과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습니다. 해당 교과 선생님들이 학교에 아예 근무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그러면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요?
준비도 없이 몰아붙인 국가가 아니라 시간표의 다양성을 추구한 학교가 져야 합니다. 피해는 당연히 학생들이 당하는 것이구요.

잘못된 연구, 시작부터 다시 해야

2009개정(미래형)교육과정 연구진이 사전연구도 없는 집중이수제를 강행하는 것은 우리 나라 학생들이 교과목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교과목 수 자체만이 아니라 그 교과목 내의 내용들이 기계적으로 나열되어 학습이 너무 어려운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a  지난 12월 3일 국회정책토론회에서 연구에 참여한 홍후조 교수가 주제발제를 하고 있습니다. 이 날 박장호 교수가 기초 연구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문제제기 했지만 교과부나 연구진이나 전혀 가타부타 대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2월 3일 국회정책토론회에서 연구에 참여한 홍후조 교수가 주제발제를 하고 있습니다. 이 날 박장호 교수가 기초 연구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문제제기 했지만 교과부나 연구진이나 전혀 가타부타 대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 신은희


지난 12월 3일 국회 정책토론회에서는 연구진이 잘못된 연구 근거로 국민들을 속인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경성대의 박장호 교수는 홍후조 교수가 우리 나라 초등학교 교과목 수가 많다고 제기한 'IBO의 PYP'는 국가의 정규 교육과정이라기보다는 비영리 국제단체가 국제이동학생(migrant student)들을 위해 만든 교육과정으로, 이주학생이 다른 나라로 이주하거나 다른 나라의 상급학교로 진학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최소요건의 교육과정이라는 겁니다. 이걸 기준으로 우리 나라 교육과정과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고, 시기도 2000년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토론회에 나온 홍 교수는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나라에선 축소대상, 외국에선 비중있는 교과

우리 나라에서는 축소대상인 교과들이 외국에서는 그리 홀대받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a  박장호 교수가 영국의 우리 나라의 교육과정 평가원과 같은 INKA사이트에서 자료를 수합하여 정리한 표입니다. 중학교 단계에서 도덕, 음악, 미술, 가정 교과가 우리 나라에 비해 국영수 대비 이수 시간이 많고 비중도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박장호 교수가 영국의 우리 나라의 교육과정 평가원과 같은 INKA사이트에서 자료를 수합하여 정리한 표입니다. 중학교 단계에서 도덕, 음악, 미술, 가정 교과가 우리 나라에 비해 국영수 대비 이수 시간이 많고 비중도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신은희


위의 표에 나타난 결과를 보면, 이들 교과들이 교육 선진국에서는 군소교과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경우, 수학교과와 대비할 때, 미술 4/10, 음악 4/10, 가정·실과 12/10, 도덕 15/10으로 특히 도덕교과는 수학보다 1.5배의 시간배정을 받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국·영·수 각 교과 대비 미술 1/3, 음악 1/3, 가정·실과 1/2, 도덕 1/3.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핀란드의 경우는 어떠한가요? 다른 나라들보다 실과나 음악, 미술, 가정, 도덕시간이 더 많을 뿐더러 국·영·수 교과에 대한 비중도 매우 높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필수교과로서 음악, 미술, 가정과 실과의 시수를 놓고 볼 때, 한국과는 달리 전 학년, 전학기마다 이들 교과를 집중적으로 가르친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박장호, 12월 3일 정책토론회 자료집)

이런 상황을 보면 우리 나라는 비정상적으로 국영수시간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7차교육과정에서 시수를 줄여놓고 이제는 이마저도 집중이수로 몰아서 정상교육이 어렵게 하는 건 99칸 있는 부자가 없는 사람 집 뺏어 100칸 만들려는 것과 똑같은 이치 아닌가요? 오히려 지금은 비정상적인 주지교과 시간을 줄이고 전인교육을 위해 인성, 예체능 교과들의 시수를 늘려야 하는 건 아닐까요?

집중이수제로 마음대로 이사도 못가고 손해배상 청구소송 내야 하다니

교과부 안대로 집중이수제를 하면 모든 학교의 시간표가 달라져 이제 초등학생조차 전학을 가면 못배우는 교과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이전 학교에서는 5학년 1학기에 미술만 배웠는데 전학 간 학교에서도 2학기에 미술을 해서 음악을 못 배웁니다. 중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과부는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특별과정을 만들어서 보충한다는 데 이건 수업도 아니고 시간 때우기에 불과합니다. 연구진이 직접 당국에서 학생들의 피해보상 소송에 시달릴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제 집중이수제 때문에 마음대로 이사도 못가야 하는 걸까요?
결국 집중이수제는 학생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못받고 학부모들에게는 교과목을 줄인다고 현혹하는 선전효과만 누리면서 학교교육을 황폐화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제라도 연구부터 하고 제대로 검토해야 할 내용입니다.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만 하는 수업시수 20% 자율, 전인교육 와해시켜

여기에다 수업시수 20% 증감권 때문에 거의 모든 학교에서 주지교과를 늘리고 예체능을 줄이고 있습니다. 이미 체육교사가 나가라 컴퓨터 교사가 나가라 학교마다 해당 교과 교사들까지 줄이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예체능 교과 시간을 줄이면 수업 진도 나가기도 어렵고 아이들 교육에도 안좋다고 보기 때문에 할 수없이 수업시수를 늘리고 있습니다. 수업시수를 늘리면 지금보다 수업의 질이 떨어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고, 연구학교 결과도 그렇습니다.

전인교육은 법으로 보장된 권리인데, 우리 학생들이 이렇게 주지교과만 과하게 배워 인지동물처럼 자라나야 하는 걸까요? 게다가 미래형이라고 선전한 교육과정이 결국 교사와 학생을 쥐어짜기해서 만들어지는 고(古)육으로 전락해야 할까요? 결국 집중이수제와 수업시수 증감권이 합쳐져 전인교육을 와해시키고 학교의 입시교육 포장하는 역할만 하는 셈입니다.

겉과 속이 창의적 체험활동, 교과목 늘리는 진입로

창의적 체험활동은 재량활동과 특별활동을 합쳐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인성교육의 장을 열겠다고 선전하는 내용입니다.
a  교과부의 2009개정교육과정 홍보자료집에서 창의적 체험활동 선전 내용입니다. 이것만 보면 교과목 교육은 전혀 없을 것 같지만, 초등에는 3개 과목이나 제시하고 있습니다.

교과부의 2009개정교육과정 홍보자료집에서 창의적 체험활동 선전 내용입니다. 이것만 보면 교과목 교육은 전혀 없을 것 같지만, 초등에는 3개 과목이나 제시하고 있습니다. ⓒ 신은희


'창의적 체험활동'의 편성․ 운영을 학교에 맡기겠습니다.
국가에서는 세부 활동만 제시(진로, 봉사, 동아리, 기타 활동)
운영 기간 및 운영 방법은 학교에서 자율 결정(2009개정교육과정 홍보자료집 4쪽)

재량활동은 7차교육과정의 꽃이라 하고, 2007개정교육과정도 재량활동과 특별활동 강화가 특징이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통폐합이 되었을까요?

초등학교 창의적 재량활동의 경우 국가 또는 지역 교육청에서 이수해야 할 내용을 정하여 하달하고, 이런 요구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함(2009개정교육과정 2차 시안 11쪽)

그래놓고 이번에는 전보다 더 많이 지정을 해 줍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서는 오히려 교과목을 늘려주는 통로가 됩니다.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정보통신활용교육, 보건교육, 한자교육을 할 수 있다.
범교과학습 주제 37개에 녹색교육, 한자교육 추가(2009개정교육과정 2차 시안 중)

이러고도 학교에 자율권을 준다구요? 정보통신활용교육은 과학이나 실과, 도덕에서 다루고,  모든 교과에서 지도가 가능하기 때문에 2007개정교육과정에서는 지정을 따로 하지 않았습니다. 보건교육은 작년에 학교보건법 때문에 들어왔는데, 한자는 근거와 과정을 전혀 알 수 없어 생뚱맞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습니다. 2차 시안 자료집에 설문조사 하나 들어와 있는 정도입니다. 한자교육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떤 능력 함양을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전혀 언급도 없습니다.

추측하기로는 학교장들이 좋아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최근 학교마다 한자급수시험을 권장하고 그래서 학교가 사교육을 부추기냐는 잡음도 꽤 있었습니다. 그 영향일까요?
결국 초등학교 교과군은 5-7개로 조절했으면서 교과목이 다시 8-10개로 늘어나는 셈입니다.

이건 2007개정교육과정보다도 후퇴한 겁니다. 2007개정교육과정에서는 재량활동에 정보통신교육 필수 지정을 뺐을 뿐 아니라 영어나 한문 등의 독립 교과목을 하지 말라고 해서 학교마다 범교과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9개정교육과정에서 3개 항목이나 지정을 하고 학교마다 알아서 하라니 학교마다 영어까지 집어넣고 뒤죽박죽입니다. 이러고도 학습부담이 줄어든다고 선전할까요? 거의 눈가리고 아웅에 조삼모사가 따로 없습니다.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부터 세워야

결국 국가교육과정의 기준이 모호하고 학생들이 어떻게 자라야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없이 교과부다 독단으로 추진하다보니 학교마다 큰 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혼란조차 다양성과 자율성으로 포장하고 학생들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줄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럴 때 가장 강자는 바로 입시교육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막무가내 현실을 이겨낼 교사, 학부모,학생은 없습니다.

2009개정(미래형)교육과정이 학생의 학습부담을 줄인다는 명분 하나로 시행하는 정책들이 실상은 학습 효과도 없고 주지교과 집중으로 입시몰입교육이 횡행하고 전인교육만 와해시킨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정말 학생들이 질높은 교육을 받게 하려면 변화된 시대에 우리 학생들이 어떻게 자라야 하고 무엇을 배워야 할 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부터 있어야 합니다. 또 무엇을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것부터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한 나라의 교육과정이 기초 연구도 제대로 없고 잘못된 연구를 토대로 설계하여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졸속교육과정이 학교현장에 들어오면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갑니다. 성급한 추진보다 제대로 된 검토부터 거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한 나라의 교육과정이 기초 연구도 제대로 없고 잘못된 연구를 토대로 설계하여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졸속교육과정이 학교현장에 들어오면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갑니다. 성급한 추진보다 제대로 된 검토부터 거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요?
#2009개정교육과정 #집중이수제 #수업시수증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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