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지산동고분군 대가야의 대표적인 고분군으로서 금동관이나 수많은 순장유골들이 출토되어 왕족들이나 귀족들이 주로 매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송영대
금관가야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지만, 피해를 덜 받은 다른 가야 소국들은 재기를 꾀하며 서서히 국력을 키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국가들보다 좀 더 두드러진 모습을 보이는 게 바로 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 등으로서, 이 중 대가야는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게 된다.
대가야는 반파국이라고도 하며, 지금의 경북 고령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하였다. 고령군 일대는 예로부터 안정적인 농업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지금 야로지역에서 철산지가 확인되는 등 철기문화를 위한 기반이 있었다는 점이 지역연맹체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대가야는 고령 지산동고분군을 중심으로 번성하였으며 이곳에서 거대한 고총고분들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고분들 외형도 클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금동관 같은 최고 지배층들이 쓴 위세품들이 다수 출토되어, 당시 대가야인들이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대가야는 고령 일대에만 머물지 않고 섬진강유역으로 진출해나간 것으로 보인다. 순천 운평리고분군이나 남원 월산리고분군, 장수 삼봉리고분군 등 전남이나 전북 일대에서도 대가야 고분군이 발견된다. 이 점은 대가야가 활발한 정복과 진출을 한 구체적인 증거로 볼 수 있으며, 하동까지 진출하여 남해안까지 그 영향권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대가야는 신라 및 백제나 왜와의 물자교역을 장악할 수 있는 위치에까지 성장하기에 이르지만 아직 주변 소국들을 정복할 만한 능력은 갖추진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선덕여왕의 사다함 MBC드라마 선덕여왕에 출연한 사다함(박재정 분)의 모습. 사다함은 이사부와 함께 대가야를 멸망시키는 공을 세운다.
MBC드라마 <선덕여왕>
대가야는 후기가야연맹체 맹주로서 군림하며 강력한 왕권을 보인다. 이는 지산동 44호분에서 순장유골이 22구나 나오는 것을 통하여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가야의 번성도 오래 가지는 못한다. 이미 고대국가의 면모를 갖춰 따라잡기엔 힘들 정도로 강한 국력을 지닌 백제나 신라가 꾸준히 압박했기 때문이다.
대가야는 당시 국제 상황에 맞추어 친백제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친신라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하였다. 이는 가야제국 내 경쟁 대상이었던 아라가야를 다소 의식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관산성전투를 계기로 백제가 신라에게 패배하자 가야의 외교 노선은 흔들리게 되고, 결국 신라의 이사부와 사다함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게 된다.
가야는 당시 활발한 국제교역과 철 생산, 농업 등을 통하여 번성하였고 발전하였다. 그래서 한때는 신라와 경쟁하고, 오히려 압박할 정도의 힘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제 상황이나 고대국가로의 진입이 쉽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절대 강자가 없이 서로간 이해에 따라 움직임을 달리했다는 점 등이 한계로 작용하여 결국 멸망하게 된다. 국가의 흥망성쇠야 당연한 것이지만, 가야는 그 자료의 부족과 무관심으로 인하여 다른 국가들에 비해 적극적인 연구가 덜 된 측면이 많다. 하지만 가야는 결코 약소국에 불과하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이 점을 이해하여 가야를 역사의 한 축으로서 활동하였다고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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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06학번 학생으로 현재는 휴학중입니다.
다음과 네이버의 커뮤니티에서 운영자나 논객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8년 네이버 1차 파워지식in에 선정된 바 있습니다.
2009년에 네이버 지식활동대 1기에 선정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가야문화권 답사를 갔다와서 연재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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