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원 때문에...이해와 오해의 아슬한 차이

3000원의 잣대

등록 2009.12.29 20:18수정 2009.12.29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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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는 믿거니 하던 곳이나 사람에 의해서 바닥으로 추락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로 인해 일어나는 유기적인 일이기에 남 탓할 일은 아니지만, 아홉가지를 잘해도 한 가지를 못하면 어김없이 잣대를 대는 인생살이 쓸쓸한 한 자락은 어찌할 수가 없다.

 

시작을 함께 열고 오랫동안 하다 보니 이사를 거쳐 고문으로 추대된 단체가 있다. 아직 쉰도 안 되었는데 고문이란 이름이 물러난 퇴물같기도 하고 내 그릇에 비해 가당찮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좋은 홍보기사를 쓰거나, 창립을 기념하는 나무새김작품을 하거나, 하다못해 모임에 모두들 뚝배기처럼 돈독한 정으로 오래 가라고 뚝배기를 100여개 사람 수대로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다리가 골절되어 두어 달 얼굴을 못 본 사이에 누군가가 "그 분은 한 달 3000원 하는 회비도 2년 째 안내고 살아요"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 평소의 나와 다른 모습에 놀라는 사람이 있었고, 당사자가 없는데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점잖게 나무라는 사람도 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나는 그 소식을 뒤에 전해듣고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그 말을 전해듣고 바로 3년 치를 내었다. 자기도 모르게 그 말을 한 당사자는 내심 캥겼던지 내가 일하는 직장에까지 찾아와서 고문도 회원의 하나라고 변명을 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고 갔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고문이면 회비를 안 내어도 되는 줄 알았나 미리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나의 부덕을 부끄러워한 것이고, 또 하나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누구는 한 달 3000원도 안내는 자린고비라는 평가를 받게 돼 씁쓸했다. 이해와 오해는 종이 한 장 차이만도 못하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었다.

 

또 한번은 평소에 나를 무척 존경하노라고 공공연히 말을 하고 다니는 나이도 지긋한 분이 계시는데 작품전시를 하면서 정중앙에 배치되지 않았다고 내게 고성을 지르고 따진 것이다. '나이가 많이 어려도 선생은 선생이니 그 가르침에 공경심을 가져야 된다'고 평소에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그 분의 신조가 현실과는 무관한 그냥 말을 위한 말이란 것이 드러난 것이었다.

 

내게 고성을 지르면서 자신의 작품이 제일 좋은 자리에 배치되지 않은 서운함을 표한 것보다 마음에 상처가 된 것은 '이 선생이 귀가 나빠서 소통이 잘 되지 않아 고함을 질렀다'고 내 장애를 가지고 자기 합리화를 한 것이었다.

 

사실 나 같은 중증청신경장애인에게는 소리의 고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아무리 큰 소리라도 그냥 먹먹할 뿐이다. 오히려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아도 눈빛과 표정과 입모양에 마음을 담아 천천히 한다면 백중백청으로 모두 알아듣는다.

 

그래서 내가 표준형으로 말하는 미남미녀인 아나운서의 말을 잘 알아듣기보다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니는 유아들의 말을 더 잘 알아듣는 것은 아이들은 정말로 천진한 마음으로 천천히 말하기 때문이다.

 

이제 한 해가 가면서 내년에는 가급적이면 아홉가지 잘 했다면 나머지 한 가지도 잘하려고 노력해야 하겠다.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그런 사소함에서 잣대질 되는 것은 가급적 조심하고 겸손하면서 미리 예방을 할 수 있을꺼라고 믿고 싶다.

2009.12.29 20:18 ⓒ 2009 OhmyNews
#이해와 오해 그 가까운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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