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시게 처남, 그리고 2009년

등록 2009.12.30 14:26수정 2009.12.3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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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 올라가 처남은 땅에 묻혔다. ⓒ 이기원

2009년 한 해처럼 다사다난을 실감한 적도 없다. 일요일 교실에서 자율학습 감독하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었고, 여름 더위가 채 가시기도 전에 김대중 대통령이 운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두 전직 대통령을 여읜 슬픔이 잦아들 무렵 한창 나이의 처남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세상을 등지고 떠나는 이들에 대한 슬픔이야 그 대상이 누구인들 다르지 않겠지만, 처남의 죽음은 전직 대통령을 여읜 후 느낀 것과는 또 다른 아픔으로 다가왔다. 마흔 아홉의 나이에 중학생, 초등학생의 두 아들을 두고 떠난 처남,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대학 다닐 때까지 농사일을 손에 놓지 않고 살았던 그였다.

어렵사리 사립학교 교사가 되어 20년 대부분의 기간을 고3 담임이 되어 고생하며 살았던 덕에 새 아파트 장만해 이사도 가고 이제 살만하단 얘기 할 정도 되었나 싶더니 길 건너다 차에 치어 세상을 떴다. 동갑내기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둔 채.

"내가 먼저 가야할 길을 니가 먼저 가면 어쩌냐"고 아들 영정 부여잡고 통곡하는 장모님도 지관이 잡아준 아들 묏자리 앞에서 하염없이 허공만 바라보시던 장인어른도 세상 뜬 아들을 되살리지 못했다. 처남 땅에 묻은 뒤 "70 평생 살면서 남한테 해코지 한 번 한 적 없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장인어른은 막걸리에 취해 사셨고, 처남 좋아하던 고들빼기를 밭에다 그냥 묵혀둔 채 장모님은 가을이 다 가도록 캘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세월이 약이라도 되었던 걸까? 겨울이 다가오면서 겉보기에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배추 절여 김장하고, 메주 쑤어 매달면서 국 끓이고 밥해서 나누어 먹으며 웃음도 되찾았다. 어쩌다 찾아온 외손자에게 만 원짜리 한 장씩 쥐어주며 등 두드려주시는 모습도 겉보기엔 예전 그대로였다.


이른 아침 장모님이 전화를 했다. 가래떡 빼놓고 떡국 끓여놓을 테니 양력설에 와서 먹고 가라고. 이번 전화는 다른 때와 좀 달랐다. 꼭 와야 한다는 당부를 거듭거듭 되풀이하셨다. 다른 때 같으면 춥고 길 미끄러운데 사서 먹지 떡은 왜 하셨냐고 쏘아붙이던 아내도 이번에는 고분고분 알았다고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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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처남이 묻힌 무덤 ⓒ 이기원


눈 내리는 아침, 방학 하지 않은 아들 녀석과 출근하는 아내를 태워다 주고, 곧바로 처남이 묻힌 무덤으로 갔다. 꼭 집어 이것이라 설명할 순 없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눈바람 속에 처남의 무덤이 말없이 맞았다.

무덤 앞에 서서 눈바람을 함께 맞으며 서서 기억 속의 처남을 떠올렸다. 촌놈으로 태어나 착하고 미련하게 살다가 간다는 말도 못하고 차에 치어 세상을 떠버린 처남. 내년에는 다시 고3 담임이 될 거 같으니, 올해 꼭 놀러오라던 처남, 그래 꼭 한 번 가야지 하고 미루다 영영 못 만나게 된 처남.

저무는 2009년과 더불어 처남에 대한 슬픈 기억도 떠나보내야겠다. 다가오는 새해엔 세월을 약으로 여기며 평상심 되찾고 지내는 장인어른 장모님을 찾아뵈어야겠다. 환한 웃음 앞세우면서.
#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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