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대, 교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교육의 목적에 대한 성찰

등록 2010.01.02 10:00수정 2010.01.02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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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육의 목적은 자라나는 아이들의 인격에 건강한 가치관을 심어주고 그럼으로써 인간 사회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 학생 자신이 간직한 꿈을 실현함으로써 스스로 행복한 인간이 되고 사회공동선을 추구한다면 궁극적으로 교육활동은 피를 흘리지 않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정교한 예술이자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가장 멋진 정신활동입니다. 종교개혁가 루터가 교직을 성직 못지않게 절대적으로 높게 평가하고 교사가 되고 싶어 했던 이유가 그러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사는 자라나는 아이들의 성품이 건강하게 다듬어질 수 있도록 열정과 지혜로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는 사람을 만드는 곳이기에 그렇습니다.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갖춘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는 곳이 학교이자 교육입니다. 혼돈의 시대, 학교는 듬직한 인격을 간직하고 영혼이 성숙한 건강한 시민을 양성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이 시대 교사들은 학교현장에서 끝없이 강조되는 살인적인 경쟁의 논리를 배제시키는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한국사회 학벌주의풍토와 입시교육으로 덧칠된 학교현장을 좀더 교육적이고 인간적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할 때 아이들의 가슴 속에 더불어 살아가는 협동의식과 낯선 타인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씨 그리고 소외된 이웃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운 감성이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과거 역사청산이 없었던 사회이기에 사회 전반적으로 식민지 잔재와 봉건적인 흔적이 많습니다. 그리고 군사문화의 독소들이 삶의 주변에 그리고 학교현장 구석구석에 혼재해 있습니다. 더구나 청산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한국전쟁의 상처와 분단이라는 증오의 논리가 한국인의 삶을 규정해 왔습니다. 그런 탓에 한국사회 전반적으로 정의의 가치가 실종되고 이기주의와 기회주의가 생존의 논리로 당연시되어 정신적으로 퇴행되고 고착된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경쟁의 논리에 기초한 이기주의와 기회주의적 성공신화를 철저히 배제시키고 그 빈 자리에 따뜻한 인간적 품성을 배양시켜야 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과 배려하는 마음가짐 그리고 사회문제에 대해 연대의식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내용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교사의 품을 떠난 우리 아이들이 비로소 성숙한 인격을 갖춘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고 사회 전체적으로 건강한 모습을 견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교육은 아이들에게 근본적인 깨달음을 줄 수 있는 감동의 연속이어야 하고 사회현상을 정의로운 관점에서 이해하고 마음으로부터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인류사회에 대해 한없는 애정과 관심을 간직하도록 하여 튼튼한 연대의식을 요구하고 의식화하는 활동이어야 합니다.


2.

이러한 교육의 목적에 기초하여 학교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집행할 때 학교는 학교답고 교육은 교육다워질 수 있으며 이 시대 교사는 보람을 느끼고 품위를 지켜갈 수 있을 것입니다. 21c 전교조 교육운동의 목적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이는 89년 군부 독재시절 공권력의 잔혹한 탄압 속에서 민족 ・ 민주 ・ 인간화 교육 이념을 내걸고 출범한 전교조의 궁극적 지향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회 현실은 여전히 정의로운 가치가 실종되고 진실이 왜곡, 탄압받는 시대가 지속되며 국가사회 전체가 물신(物神)주의에 압도된 채 '부자 되기 경쟁'으로 몰입된 현실입니다. 2007 대선에서 이 명박 대통령의 등장은 바로 그러한 삶의 강렬한 표현이자 서민들의 대중적 욕망의 상징일 것입니다.

'부자 되기'가 우리네 삶의 목적이자 삶의 당연한 모습이 되어버린 시대, 보통의 서민들은 '부자 되기'를 오늘도 내일도 인생의 목표로 갈망하고 보통의 엄마들은 '부자 되기' 과정인 학벌주의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형 학벌시스템의 중심으로 좀더 다가가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아이들을 관리하며 사교육비를 쏟아 붓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소용돌이 한국사회 현실 속에서 스스로 분별력을 갖춰야 할 마지막 보루인 이 시대 교사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역시 학벌주의 이데올로기에 점진적으로 포획되고 경쟁의 논리에 포섭된 채, 철학적 성찰의 빈곤과 교육의 목적에 대한 혼돈 속에서 아이들을 오늘도 끝없는 점수경쟁으로 내몰고 주눅 들게 만드는 일상을 연출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이 가슴 답답한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사로서 저 자신의 언행이나 행태를 가끔 돌아볼 때면 한없이 실망스럽고 무기력합니다. 그렇다고 주위를 돌아보아도 일상적으로 먹먹하고 가슴 갑갑한 현실 앞에 존재의 무력감만 더해집니다.
  
교사 스스로 비인간적인 학벌주의 사회풍토에 별다른 저항도 부끄러움도 없이 한쪽 발을 담그고 있음은 교사로서 자기 내면에 대한 성찰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학습이 결여된 모습이자 학벌주의 이데올로기라는 불순한 시대의 논리를 자기 삶의 논리로 전화한 채, 오늘도 내일도 입시교육의 부속품으로 그냥 저냥 살아가는 쇠잔한 교사의 영혼이 낳은 참혹한 결과라 하겠습니다.
  
마땅히 뛰어넘어야 할 잘못된 교육 현실과 지배 이데올로기를 머리로는 비판하면서도 실천적 노력과 성찰 없이 잘못된 교육 현실에 편입되어 살아가는 이 배반된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내 자식 교육문제를 현실에 놓고 바라볼 때 한없이 작아지는 이 배반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스스로 소시민적 이중성 앞에 부르주아 교육문법 대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과연 참교육을 지향하는 전교조 교사인가 하는 자괴감이 수도 없이 엄습하였습니다.
  
3.

공교육을 책임진 교사 스스로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사교육 지배시스템을 무의식적으로 거들거나 심지어 일부 교사들은 학교 교사 - 학원 강사 경쟁력을 운운하며 사교육공화국을 옹호하는 처지에 주저 없이 서기도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부자 되기를 열망하는 한국사회 천민적 자본주의 환경 속에서 비록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아예 학교 현장을 떠나 대형 사설 입시학원 등 사교육산업 시장으로 성큼 뛰쳐나가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 데 열을 올리는 소피스트형 교사들도 적잖이 보았습니다.
  
문제는 입시 교육전문가를 자처하며 뛰쳐나간 그들이 한국사회 전도된 가치현실 속에서 엄청난 부를 거머쥔 모습으로 세간에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존경받는 데 있습니다. 나아가 그들의 영향력이 한국사회 입시현실 속에서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모르고 계속 학교현장에 확대되고 학부모들의 이목을 여전히 집중시키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한국사회 공교육 현실은 안쓰럽다 못해 참담한 지경이고 분노로 이글거림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거꾸로 된 교육현실 속에서 계속 교사를 해야 하는가 하는 자괴감만 들었습니다.
  
가치가 전도된 한국사회 현실에서 학벌주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지 않으려고 교사 스스로 거리두기를 위해 뼈를 깎는 성찰적 노력을 보이지 않는 한, '입시교육 = 교육'이라는 크나 큰 잘못을 매일 범할 수밖에 없으며 실제 학교현장은 거의 그런 분위기가 지배적이고 함몰된 현실입니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대학진학을 위한 예비수험기관임을 공공연히 떠드는 현실을 우리는 일상적으로 목격합니다. 매년 입시철이 끝나가는 시점에 학교 건물마다 드리워진 명문대 합격자 명단을 알리는 플래카드에서 큼직한 글씨로 박힌 서울대 합격자와 작은 글씨로 촘촘히 적힌 기타 대학 합격자 명단에서 한국교육 철학의 천박한 모습이 여지없이 그 바닥을 드러내곤 합니다.
  
SKY대를 들어갈 수 있는 정원은 1만 명으로 한정되어 있는데 나머지 50만 명이 넘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좀더 양보하여 서울 중상위권 대학에도 들어가지 못한 40 - 50만 명에 달한 그 수많은 아이들은 그저 들러리일 뿐인데 왜 결과가 뻔한 게임에다 아이들에게 치열한 경쟁의 논리를 유일한 교육인 양 강요하나요? 그게 교육인가요? 그게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하는 교사의 역할인가요?

열심히 하면 살아남을 수 있고 서울 중상위권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신기루를 어떤 이유로 심어주고 있는 것인가요?

물론 열심히 공부해서 경쟁에서 이긴 0.5%, 5% 극히 일부 아이들은 신기루가 아니라 현실을 거머쥐겠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무엇이 되나요?

결과가 뻔한 게임에 온 국민이 사교육으로 고통을 받고 수능 점수 몇 점에 그리고 입시결과에 마음 졸이는 이 웃지 못 할 희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전 국민이 신기루에 빠져있고 모든 학부모가 욕망하는 명문대 입학을 위해 오늘날 교사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부자 되기' 물신주의로 일그러진 한국사회에서 공교육을 책임 진 이 시대 교사들의 소명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거대한 물신주의 현실에 체념한 채 그에 편승하여 나의 제자를 한 명이라도 더 많이 학벌주의 대열에 편입시키는 일일까요?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요?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지만 이 시대 교사의 진정한 면죄부를 위해 나름으로 고민하고 해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4.

보통의 부모로서 학벌주의 경쟁체제에서 내 아이만은 낙오되지 않고 가까스로 상층에 편입된 것에 만족해하며 나 또한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그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일상적으로 물신주의에 사로잡힌 가치를 강요하지 않겠다는 선언, 바로 칼날 위에 선 삶의 자세로 자기 마음으로부터의 성찰이 담긴 선언을 단행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학벌주의 체제를 해체시키기 위해 전국 사립대학을 국공립대학으로 전환하여 국공립 네트워크화를 전국적으로 현실화하고 대졸 - 고졸 간 임금 격차를 정책적으로 폐지하여 고등학교 졸업만으로도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도록 최저 - 최고임금제 시행, 의료 - 교육 무상시스템을 정책적으로 현실화하며 사회복지체제를 강도 높게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공교육 개혁은 학교현장에서 교육의 본령에 충실할 수 있고 아이들도 행복하게 교육받고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대 우리 교사의 꿈은 거기에 있을 수 있고 궁극적으로 학벌주의 시스템을 해체시켜 교실에서 교사 스스로 교육의 본질에 충실하게 가치 있는 것을 보람 있게 가르칠 수 있도록 교육노동운동의 좌표를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이 시대 교사는 협소한 시야를 넓혀 운동의 지평을 확대하고 연대하는 모범을 연출해야 하겠습니다. 협소한 교육운동가를 넘어서서 시민운동가 ・ 인권운동가 ・ 환경생태운동가 ・ 지역주민활동가 ・ 평화운동가이어야 하고 적어도 한국사회 변혁을 꿈꾸며 노력하는 진정한 교육노동운동가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1c 전교조 이념도 민족 - 민주 - 인간화 교육에서 생태 - 평화 - 연대를 꿈꾸는 교육이념으로 수정해야 하고 낭만적인 교육운동을 뛰어넘어 치열한 교육노동운동 - 정치 - 사회 - 시민운동으로 운동의 파이를 키우고 활동영역을 넓혀나가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교육개혁은 폐쇄적인 교육운동만으로 완결될 수 없는 사회구조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전반적인 정치 ・ 사회개혁운동을 통해서 교육개혁이 가능하도록 교사 스스로 운동의 시야를 넓혀 연대의 폭을 넓혀나갈 때 현실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입시교육 #경쟁의 논리 #교육의 목적과 성찰 #교육개혁 #무상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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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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