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쓴 겹말 손질 (81) 친하거나 가까운

[우리 말에 마음쓰기 831] '말하기'와 '논하기'

등록 2010.01.05 11:06수정 2010.01.0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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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친하거나 가까운

 

.. 이 교실이라고 해서 조금 더 친하거나 집이 가까운 데 따라 끼리끼리 무리짓는 일이 아주 없지는 않았어 ..  《박기범-낙타굼》(낮은산,2008) 15쪽

 

 보기글은 잘못 썼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아이들끼리 '친하다'고 하면서, 바로 뒤에 집이 '가까운'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헤아리면, 글쓴이가 낱말을 알맞게 못 골랐구나 하고 느낍니다.

 

 ┌ 친(親)하다 : 가까이 사귀어 정이 두텁다

 │   - 이제부터 나와 친하게 지내자 / 그 둘은 무척 친하다

 │

 ├ 조금 더 친하거나 집이 가까운 데 따라

 │→ 조금 더 가깝거나 집이 가까운 데 따라

 │→ 조금 더 사이좋거나 집이 가까운 데 따라

 │→ 조금 더 살갑거나 집이 가까운 데 따라

 └ …

 

 동무와 동무 사이가 '가까울' 때에 서로 '親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가까운 사이는 말 그대로 '가까운' 사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가깝기에 서로 '살갑'게 굽니다. 살갑게 구는 사이는 '사이가 좋'습니다. 이리하여 '사이좋다'라는 말을 써요. '곰살궂다'나 '마음에 들다'를 넣어도 괜찮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아이들끼리) 가깝다'와 '(집이) 가깝다'를 잇달아 쓰면 됩니다. 다만, 이렇게 쓰며 '가깝다'가 잇달아 나오는 듯해서 내키지 않는다면 앞이나 뒤에 넣는 말을 달리해 줍니다. 동무끼리 '반가워하다'고 하거나 '살갑다'고 하거나 '사이좋다'고 한 다음, 집이 '가깝다'고 하면 됩니다. 또는 동무끼리 '가깝다'고 한 다음, 집이 '붙어 있다'고 하거나 '이웃'이라고 해 줍니다.

 

 ┌ 나와 친하게 지내자

 │→ 나와 가까이 지내자 / 나와 잘 지내자 / 나와 좋게 지내다

 ├ 그 둘은 무척 친하다

 └→ 그 둘은 무척 가깝다 / 그 둘은 무척 살갑다 / 그 둘은 무척 곰살궂다

 

 차근차근 생각해 보면 좀더 알맞게 넣을 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 한결 살갑게 나눌 말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슬기롭게 주고받을 말마디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 깜냥을 키우고 보듬으며 빛내 주면 좋겠습니다.

 

ㄴ. 말하고 논하며

 

.. 즉 거기서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의견을 말하고 논하며 문제를 같이 해결해 나가는 그런 멋진 닭장 얘기를 했더니, 어떻게 된 줄 아니? ..  《리지아 누네스/길우경 옮김-노랑 가방》(민음사,1991) 46쪽

 

 '즉(卽)'은 '곧'이나 '그러니까'로 손봅니다. "자기의 의견(意見)"은 "내 생각"이나 "제 생각"이나 "제 뜻"으로 다듬고, '해결(解結)해'는 '풀어'로 다듬습니다.

 

 ┌ 논(論)하다

 │  (1) 의견이나 이론을 조리 있게 말하다

 │   - 인생을 논하다 / 국내외 정세를 논하면서 / 학문에 대하여 논하기를

 │  (2) 옳고 그름 따위를 따져 말하다

 │   - 시비를 논하다 / 남의 잘못에 대해 논하기 전에

 │

 ├ 자기의 의견을 말하고 논하며

 │→ 자기 생각을 말하며

 │→ 제 생각을 말하고 나누며

 │→ 서로서로 생각을 말하고 들으며

 └ …

 

 겹말이 되더라도 "말하고 이야기하며"처럼 쓸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쓰고픈 분들은 이와 같이 써야 합니다. 다만, 굳이 이렇게 겹말로 써야 하는가를 한 번쯤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다'나 '이야기하다'만 넣으면 넉넉하지 않을는지, 괜히 두세 마디로 길게 늘여뜨리는 말투가 아닌지를 살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인생을 논하다 → 삶을 말하다

 ├ 국내외 정세를 논하면서 → 나라안팎 흐름을 말하면서

 └ 학문에 대하여 논하기를 → 학문이란 무엇인가 말하기를

 

 삶이든 나라흐름이든 학문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스스로 하고픈 말이 있으니 합니다. 쓰고픈 이야기가 있으니 씁니다. 나누고픈 생각이 있어 나눕니다. 함께하고픈 뜻이 있기에 함께합니다.

 

 언제나 있는 그대로이며, 노상 꾸밈없이입니다. 나를 남 위에 놓지 않되, 남 밑에도 나를 놓지 않으면서 어깨동무를 하면 됩니다. 알맞춤하게 살을 입히고 옷을 입히면 되는 말입니다. 군더더기 살을 붙이거나 옷을 입힐 까닭이란 없습니다.

 

 ┌ 시비를 논하다 → 옳고그름을 가리다 / 옳고그름을 따지다

 └ 남의 잘못에 대해 논하기 전에 → 남이 한 잘못을 따지기 앞서

 

 다른 사람들 말씨를 따지기 앞서 우리 말씨를 따질 노릇입니다. 다른 사람들 글투가 어떠한가를 다루기 앞서 우리 글투를 가다듬을 노릇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생각을 추스르고, 우리가 선 자리를 돌아보며, 우리가 나아갈 길을 갈고닦으면 됩니다. 날마다 주고받는 한 마디 두 마디가 모여 우리 생각을 이루게 됨을 헤아리고, 한 마디 두 마디부터 알뜰살뜰 가꾸는 매무새가 될 때 바야흐로 말길이 트이며 생각길이 트임을 느끼면 됩니다.

 

 나 스스로 내 말을 가꾸면서 내 넋과 얼을 함께 가꿀 수 있습니다. 나부터 내 말투를 가다듬으면서 내 삶자리와 삶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알뜰살뜰 가다듬을 수 있습니다. 내가 먼저 내 말마디를 곱씹고 되씹으면서 더 따뜻하고 사랑스러우며 알찬 마음이 되도록 갈고닦을 수 있습니다. 말다듬기란 넋다듬기요 삶다듬기입니다. 글고치기란 얼고치기요 삶고치기입니다. 한결 아름다운 길로 접어들도록 다듬고, 더욱 싱그럽고 넉넉할 수 있게끔 고쳐 나갑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10.01.05 11:06ⓒ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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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중복표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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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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