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사라진 MB표 '국제과학기업도시'

[取중眞담] '반칙'으로 만드는 세종시... 두고만 봐야 하나

등록 2010.01.17 15:05수정 2010.01.1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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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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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행정도시건설청'을 방문, 행정도시를 "'이명박표 세종시'로 만들겠다"며 세종시 주변지역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별도 조성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 장재완

2007년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행정도시건설청'을 방문, 행정도시를 "'이명박표 세종시'로 만들겠다"며 세종시 주변지역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별도 조성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 장재완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의 골자는 하나다. 원안 중에서 9부2처2청을 이전하기로 한 행정기관이전 계획만 쏙 빼냈다. 행정기관이 들어서야 할 자리를 '과학비즈니스벨트'와 '대기업' 들이 차지하고 앉았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것이다.

 

그러고도 포장은 그럴 듯하다.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교육과학중심기업도시'로 탈바꿈했단다. 원안의 '행정중심 교육과학기업도시'에서 '행정중심'을 없앤 확 쭈그러든 또 다른 '신기업도시'안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정부 관료는 단 한사람도 없다. 혹세무민(惑世誣民)이고 조삼모사(朝三暮四)다. 

 

혹자는 말한다. 공무원들 밥집만 늘어나는 '정부행정기관'보다 '과학비즈니스벨트'가 훨씬 좋은 것 아니냐고. 여기서 뭐가 더 효과가 크고 바람직한 지를 따지는 일은 접어두자. 

 

'과학비즈니스벨트'가 동네 축구장 보다 못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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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이명박 후보는 국제과학벨트 입지와 관련 대전 대덕연구단지와 세종시 사이에 행정도시 자족성을 위한 보충성격의 도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 장재완

2007년 이명박 후보는 국제과학벨트 입지와 관련 대전 대덕연구단지와 세종시 사이에 행정도시 자족성을 위한 보충성격의 도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 장재완

더 중요한, 잊고 있는 게 있기 때문이다. '과학비즈니스벨트'는 세종시에 들어서면 안 된다는 게 현 정부의 객관적 판단결과였다는 점이다. 아니, 과학비즈니스 입주지역으로 세종시가 타당한 지에 대한 객관적 판단과정을 생략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추진지원단이 전국 18개시 도를 선별해 실시한 '과학비즈니스벨트 거점도시 적합도 1차 계량평가'에서 세종시는 사실상 등외에 해당하는 6위권에 머물렀다. 1위가 아산 천안, 2위가 대전 대덕, 3위가 대구, 4위 울산, 5위가 부산이다. 지난 해 11월 교육과학기술부가 국회에 보고까지 한 내용이란다.

 

그런데도 정부는 당초 하기로 한 '공모 방식'을 통한 입지선정을 포기했다. 용역결과도 무시했다. 이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세종시를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로 발표했다. 입지 선정을 놓고 뜨거운 유치 경쟁을 벌였던 전국 지방자치단체들로서는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동네 축구장 입지도 이렇게 황당한 방식으로 결정하진 않는다.

 

오죽했으면 지난 해 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등 12개 과학단체가 나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세종시 수정 논란과 관련돼 정치적으로 결정되거나 이용되는 것을 우려한다"는 성명까지 냈을까. 

 

이명박 대통령도 후보시절 충청권을 방문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을 공약했었다. 하지만 그 정확한 장소는 지금의 세종시예정지가 아닌 그 주변이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용역결과에서 2위를 차지한 대전 대덕연구단지와 세종시 사이에 행정도시 자족성을 위한 보충성격의 별도도시를 만들겠다는 게 이 대통령 약속의 '원안'이다. 결국 대통령은 또 다시 약속을 어겼고,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통령의 뜻을 따르기 위해 반칙을 사용했다.

 

무려 3조 5000억 원이 투여되는 초대형 국책사업의 입지가 이렇게 타당성 조사 한 번 없이 졸속으로 아무렇게나 결정돼도 상관없는 것일까. 중앙행정부처의 세종시 이전을 막아야 된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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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11일 발표한 세종시수정안 주요요지 ⓒ 심규상

정부가 지난 11일 발표한 세종시수정안 주요요지 ⓒ 심규상

 

법 통과도 안 됐는데 웬 양해각서?

 

게다가 과학비즈니스벨트법은 국회통과도 되지 않은 상태다. 국회가 과학비즈니스벨트가 세종시에 입주해야 한다고 결정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난 14일 삼성, 한화, 웅진, 롯데그룹, 카이스트, 고려대, 한국토지공사와 함께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앞세워 토지공급과 개발계획을 담은 양해각서를 맺었다. 양해각서 내용에는 기업과 대학에 원형지 형태로 땅을 공급하고 세금 감면 등 경제자유구역 수준의 파격적인 인센티브 지원책이 들어있다.

      

세종시 수정안 국회상정은 오는 4월에 예정돼 있다.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내에서 조차 수정안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아 통과여부가 불투명하다. 법적, 제도적 근거가 아무 것도 없는 정부안을 들이대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변칙 행정'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국회를, 법률을 무시하는 수준이 군사정부 뺨친다.

 

지난 14일 MBC <100분 토론>에서 배재대 정연정 교수와 세종대 변창흠 교수는 "두 번의 헌법재판소를 거치고 대선과 총선공약 등 10여 차례 약속했고, 또 법률까지 만들어 합의한 것을 바꾸려면 최소한 동일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대의제 국가인 만큼 국회 내에서 협의와 논의가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은 "버스기사가 지도대로, 약속대로 가다가 낭떠러지가 있으면 사과하고 승객들과 (갈 길을) 다시 협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세종시 문제도 같은 이유로 ) '다시 토의합시다'고 제안한 것이지 결정된 것은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다시 토의하자'는 방식이 괴상망측하다. 수정안 홍보를 위해 내각 총동원령을 내린 일은 두 번 말하고 싶지 않다.  

 

'국가백년대계'  신중히 결정하자 

 

국무총리실은 지난 14일 서울과 인천, 강원도를 시작으로 15일 대전 충남과 충북, 제주도에 이어 오는 19일까지 부산, 울산, 경남, 경기, 대구 경북, 광주 전남, 전북 지역을 대상으로 국정설명회를 할 계획이다. 국정설명회 방식은 정부의 4대 강 정비 사업 홍보와 매우 유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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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국제과학기업도시' 공약 내용 중 일부. 여기에는 충청권에 인구 50만 규모로 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돼 있다. ⓒ 심규상

2007년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국제과학기업도시' 공약 내용 중 일부. 여기에는 충청권에 인구 50만 규모로 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돼 있다. ⓒ 심규상

일예로 15일 대전시청 대강당에서 대전시와 충남도 5급 이상 간부공무원 수백 명을 대상으로 열린 국정설명회에서는 박철곤(한양대 특임교수) 세종시 민간합동위원이 나서 "세종시 원안은 국가적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이제라도 바로 잡자는 것이 세종시 민간합동위원회 결정"이라며 "세종시 수정안은 원안보다 알차고 실천 가능한 것 위주로 제시한 것이니 주민 설득에 적극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정부가 말하는 토의는 이처럼 강압적이고 일방적이고 막무가내다.

 

정부의 주장처럼 세종시가 국가백년대계가 돼야하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미래 세대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중대한 사업이라면 원칙대로 토의하고 결정하자.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더 들고 갈등이 있더라도 법과 절차를 지켜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우선 과학비즈니스벨트 거점도시 적합도 평가결과부터 투명하게 공개하자. 그리고 국회에서 과학비즈니스벨트법이 통과하면 법에 근거해 공모를 통해 입지를 선정하는 게 맞다. 마찬가지로 행정도시특별법이 엄연히 살아 있는 마당에 개정을 전제로 미리부터 양해각서부터 체결하는 '반칙행정'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2010.01.17 15:05 ⓒ 2010 OhmyNews
#세종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행정도시 #세종시수정안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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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이 기사는 연재 세종시 수정 파문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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