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에 '사돈'에 '짝패'였던 '만성이'

마을 이발소냐, 동창 이발소냐, 고민 되네

등록 2010.01.18 18:37수정 2010.01.1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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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급우이자 사돈으로 끈끈한 정을 나누었던 초등학교 동창 ‘만성이’가 경영하는 이발소. 지금은 사라진 ‘현대극장’ 앞이어서 “야뜰아, 오늘은 현대극장 ‘떼포’트러 가자!”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급우이자 사돈으로 끈끈한 정을 나누었던 초등학교 동창 ‘만성이’가 경영하는 이발소. 지금은 사라진 ‘현대극장’ 앞이어서 “야뜰아, 오늘은 현대극장 ‘떼포’트러 가자!”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 조종안


며칠 전 마을 이발소에서 이발했다. 날짜를 따지면 작년 12월 초에 했어야 맞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이 운영하는 이발소에서 하는 바람에 한 달 넘게 늦어졌다. 그것도 수차례 고민 끝에. 


초등학교 동창이자 급우였던 '만성이'를 만났을 때, 구 군산역 시내버스 정류장 부근에서 이발소를 경영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지척이 천리'라는 말이 따로 없었다. 필자가 시내에 나가면 자주 오가던 길목이었기 때문이었는데, 꼭 들르겠다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약속은 며칠 후 이발을 하러 가는 것으로 지켜졌다. 이발소 문을 열고 들어서니까 '만성이'는 집 나간 아내가 찾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이용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지 50년 가까이 되어가는 그는 이발소 주인아저씨답게 혈색이 좋고 피부도 고우면서 나이에 비해 무척 젊게 보였다.

조금 있으니까 어디에서 본 듯한 손님이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급우였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10년 지기처럼 대화에 욕설이 섞여 오갔다. 직장을 그만두고 30년째 택시 운전을 한다는 급우는 십수 년 전부터 나를 보았는데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반가웠지만, 말을 건네기가 어렵더라는 것. 

급우의 말을 듣는 순간 '앞으로는 이발을 이곳으로 다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푼이라도 '만성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지역 소식을 가장 정확하게 접할 수 있다고 해서 '동네 사랑방', '사통팔달'로도 불리는 이발소에 오면 보고 싶던 동창도 만나고 지인 소식을 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궁금했던 급우들 소식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만성이',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이용기술을 배웠다는 소식만 들었지, 언제 기술자가 되었으며, 언제 결혼을 했고, 개업을 해서 운영하고 있는가는 모르고 있던 터여서 더욱 반가웠다.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고. 

초등학교 동창은 몸과 마음을 모두 까발리고 창피한 줄 모르고 놀던 소꿉친구들이라서 언제 어디에서 만나도 반갑다. 나이가 들수록 옷을 홀딱 벗고 놀던 개구쟁이 시절이 그리워지는 심리 때문일 것이다. 


급우 중에는 어렸을 때 객지로 나가 큰돈을 번 친구도 있고, '만성이'처럼 기술을 배워 가게를 차리거나 취직을 해서 가족을 돌보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일찍이 건달세계로 빠진 놈도 있었다. 또 장터나 시골 할아버지들 윷놀이나 화투판을 두루 찾아다니며 뜯어먹고 산다는 '돼지'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고물을 취급하는 엿 공장 아들이어서 별명이 '끈끈이', '떡근이'였고, 그래서 이름을 '덕근이'로 알고 있던 '석근이' 소식도 접할 수 있었다. 성격이 활달하고 '콩엿'과 '깨엿'을 잘 가져다주던 '석근이'가 목수 일을 배워 지금은 인천에 살고 있다고 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면서 정담을 나누고 싶은 급우인데.

'사돈'에 '짝패'이기도 했던 '만성이'

1957년 중앙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13반까지 있었다. 수업도 오전·오후반으로 나눠서 했으며 80명이 넘는 그야말로 콩나물 교실이었다. 회비를 한두 달 밀리는 게 예사일 정도로 모두가 가난하고 배고픔에 허덕이며 초등학교를 마쳤다. 

우리 반에는 '흙구데기', '똥구데기'로 불렸던 군산시 흥남동, 삼학동, 미원동 등 가난뱅이 밀집지역에 사는 아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무엇이 그리 좋은지 만나는 날마다 웃고 떠들 정도로 표정이 밝았는데 삼학동이 집이었던 '만성이'도 그들 중의 하나였다.

50년-60년대에는 초등학교 학생들 사이에 '짝패'라는 게 유행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짝패'가 되면 지우개나 연필 등 학용품을 네 것 내 것 없이 함께 사용했으며 콩 한 톨도 나눠 먹듯 군것질도 나눠 먹었고, 혹시 누가 '짝패'를 건드리면 지원해서 결속을 다졌다. 

아침에 '짝패'를 짰다가 저녁에 푸는 아이도 있었는데, 누가 짝패를 짜자고 신청하면 손해 볼 게 없으니까 싫어하지 않았다. 또 내가 누구누구와 '짝패'라며 과시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쪽이 약한 처지에서 맺어지기 때문에 '작패'는 평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이해하고 양보해야 길게 이어질 수 있었다.

'만성이'는 중학교 삼 학년 때 익사한 큰 누님 아들과는 고종사촌 사이여서 나와는 사돈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끈끈한 관계로 맺어진 셋은 5년이 넘도록 같은 반을 하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짝패'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시비를 거는 아이가 없었다.

학교가 파하면 조카와 삼학동 '만성이'네 집으로 놀러 가곤 했는데, 토방도 있고 마당이 넓은 초가집이었다. 갈 때마다 반겨주던 '만성이' 누님이 희미하게 그려져 안부를 물었더니 전주에서 잘 산다고 했다. 할머니가 된 지금도 만나면 옛날처럼 살갑게 대해줄 것 같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교대로 하는 것

보고 싶던 동창에게 이발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급우도 만나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 즐거운 추억여행을 했으면서도 고민이 생겼다. 마을 이발소는 요금이 8천 원인데, 9천 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돈네 떡도 싸야 사먹는다'는 말도 있잖은가. 그러나 단골로 다닐 테니까 요금을 깎아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는 옵션이 붙으니까, 웬만한 불편은 감수할 수 있다. 그런데 왕복 시내버스 요금까지 합하면 3천 원도 넘어 계속 다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부산에 있을 때는 미장원에서 5천 원씩 주고 하다가, 고향으로 이사해서 큰 맘 먹고 8천 원 하는 이발소에 다녔으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오죽하면 형제들이 모였던 2009년 송년회 자리에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어디에서 하는 게 좋을지 상의했겠는가. 그러나 다들 웃기만 할 뿐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결국, 양쪽을 오가며 한 번씩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일 것 같아 마을 이발소에 들렀던 것이다. 

작년 12월에는 마을 이발소 주인이 '이 양반이 올 때가 됐는디 왜 안 오시지?' 하고 기다렸을 것이다. 반면 지금쯤은 '만성이'가 '이 자식이 올 날짜가 넘었는디 왜 안 오지? 내가 뭘 서운하게 혔나?' 하며 기다릴 것으로 추측된다. 

'만성이'는 착하고 마음도 좋았지만, 외숙모 동생이어서 그런지 나에게 무척 잘했고 사돈관계인 것을 자랑했다. 지난달 이발하러 갔을 때도 "그때 시비 거는 애들이 없었던 것은 셋 중에 체격도 젤 좋고 공부를 잘혀서 '끝발' 날렸던 너 때문이었지!"라며 웃었다. 그러니 대접으로라도 가는 게 예일 것이다.

그렇다고 마을 이발소도 칼로 무 자르듯 갑자기 발길을 끊을 수 없었다. 이사하고 6개월쯤 지났을까, 하루는 이발하러 갔더니 "지가 '형님'이라고 혀도 돼쥬?"라고 묻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먼저 발을 끊는다는 게 도리가 아닐 것 같아서이다. 결국, 한 번씩 교대로 다닐 수밖에.

"내 돈 가지고 내 맘대로 이발도 못하고, 세상 참 살기 어렵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발 #초등학교동창 #만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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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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