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은 구멍이 생명이여"

3대째 전통쌀엿 만들고 있는 담양 창평 송희용·조성애씨 부부

등록 2010.01.19 08:52수정 2010.01.1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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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 늘이기. 떼어낸 갱엿을 둘이서 밀거니 당기거니 하면서 진행된다. ⓒ 이돈삼


"엿이 왜 엿인 줄 아요? 여시질(여우짓)을 하도 잘 해서 엿이다요. 문을 연 줄 엿이 먼저 알아봐. 그래서 엿이여."


대를 이어 전통방식으로 창평쌀엿을 만들어 온 김정순(여·74) 어르신의 얘기다.

"엿이 사람보다 훨씬 더 민감하단 말이요. 잠깐만 문을 열어도 엿이 먼저 눈치 채고 찬바람에 늘었다 줄었다 해. 그럼서 가닥이 굵어지고 맛도 더해지거든."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엿을 만드는 동안 방문을 수시로 열었다 닫았다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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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이기 작업이 끝난 엿을 자르고 있는 김정순 어르신(왼쪽)과 장남 송희용씨(오른쪽).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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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이 송송 뚫린 전통쌀엿. 파삭파삭 맛 있다. ⓒ 이돈삼


"이 엿의 생명은 구멍이여라. 옛날에 엿치기 많이 했잖아요. 누구 것 구멍이 더 큰가 대보면서…. 구멍 큰 사람이 이겼잖아요. 엿은 구멍이 있어야 보기 좋고 파삭해서 맛도 좋아요."

송희용(53)·조성애(50)씨 부부의 얘기다. 이들 부부는 김 어르신의 쌀엿 만드는 기술을 배우겠다며 바통을 이어받아 3대째 대를 잇고 있다. 김 어르신의 큰 아들과 큰 며느리다.


창평쌀엿은 바삭바삭해서 입에 달라붙지 않고, 먹은 뒤에도 찌꺼기가 남지 않아 개운한 게 특징. 두 사람이 손으로 잡고 서로 밀고 당기고를 반복하면서 늘인 것이어서 그렇다는 게 그의 말이다.

실제 엿 늘이기 작업은 가마솥 아궁이에서 꺼낸 숯불을 화로에 옮겨놓고 그 위에 물에 적신 수건을 펴놓은 채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앞뒤로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엿에 김(수증기)이 스며들어 파삭파삭해진다. 엿 속의 구멍도 숭숭 뚫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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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 늘이기는 부녀자 둘이서 밀거니 당기거니 하면서 진행된다. 보기보다 여간 힘든 게 아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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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 늘이기 작업은 숯불 위에 젖은 수건을 펴놓고 한다. 엿 속의 구멍과 결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 이돈삼


겨울바람 매찬 요즘 삼지천마을에선 전통쌀엿 만들기가 한창이다. 삼지천마을은 '슬로시티'로 지정된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에 속한 마을이다. 하지만 쌀엿을 만드는 집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겨우 네 집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쌀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 눈을 피해 쌀엿을 만들어 먹던 때도 있었다. 아들이 밖에 나가 망을 보고 집안에서 쌀엿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은 쌀엿을 자유롭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시대이지만 엿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 해마다 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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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청과 갱엿을 만드는데 쓰이는 가마솥과 아궁이.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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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노랑색의 갱엿과 흰엿. 이 갱엿을 늘여 흰엿을 만든다. ⓒ 이돈삼


전통쌀엿을 만드는 과정은 지난하다. 엿은 흔히 겨울에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준비과정은 가을부터 시작된다. 먼저 가을에 겉보리를 씻어서 엿기름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햅쌀로 고두밥을 지어 미리 만들어놓은 엿기름과 섞어 식혜를 만든다.

이 식혜를 숙성시켜 즙을 짜내 가마솥에다 달이면 조청이 만들어진다. 이 조청을 저으면서 계속 달이면 짙은 노랑색의 갱엿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갱엿을 조금씩 뜯어내 화롯불 위에서 늘이면 공기가 들어가 부피가 커지고 색깔도 하얗게 변하는 것이다. 방문을 열고 닫기를 되풀이하는 게 이때다.

이렇게 만들어진 엿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다시 길게 늘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전통 가마솥과 숯을 활용, 사람의 손으로만 해야 하는 고행이다. 말이 쉽지 한번 시작하면 48시간 동안 잠도 잘 수 없다. 재료도 우리쌀과 엿기름만 들어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창평쌀엿은 예부터 궁중 진상품으로 명성을 날렸다. 지금도 따로 판촉활동을 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먼저 알고 주문을 해온다. 주문생산을 하는 셈이다. 값은 1㎏에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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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순 어르신의 큰 며느리인 조성애씨(왼쪽)와 같은 마을에 사는 아주머니가 엿 늘이기 작업을 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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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쌀엿 만들기는 힘에 부친다. 일할 사람도 없다. 하여 날마다 만들 수 없다. ⓒ 이돈삼


오래 전 겨울철 주전부리로 인기였고, 시집식구의 입막음용으로 이바지음식에 들어가기도 했던 엿. 아주 옛날엔 주인과 일꾼이 엿가래를 둘로 나눠 먹으며 끈끈한 정을 확인하기도 했었다. 잘 붙는 엿의 특성 탓에 수험생의 합격을 기원하는 의미로 많이 팔리기도 했었다.

모든 게 빠르게만 돌아가고 패스트푸드가 판을 치면서 우리 것을 잃어만 가는 요즘. 전통을 이으며 슬로시티 담양 창평의 대표적인 슬로푸드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창평쌀엿이 무엇보다 귀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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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늘인 엿은 비닐장판 위에서 마지막 늘이기 작업을 한 번 더 한다. 굵은 엿을 양쪽에서 잡아당기자 엿이 쭉-쭉 늘어나고 있다. ⓒ 이돈삼

#전통쌀엿 #창평 #송희용 #슬로시티 #조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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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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