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일부인사, '핫바지 대접' 자초하고 있다

[주장] 행정수도 찬성 목소리 높일 땐 언제고, 말바꾸기

등록 2010.01.24 17:25수정 2010.01.2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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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충청도 사람을 업신여겨 사용하는 말 중에 '핫바지'라는 단어가 있다. 김종필 전 총재가 현역 시절 이 단어를 사용해 '재미 좀 봤다'는 게 정설이지만 이후 충청권에서 지역 차별을 논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요즘 이 핫바지라는 단어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바로 충청권 주요 인사들의 세종시 문제에 대한 입장 변화를 두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도 경상도나 전라도처럼 뭉쳐 본때를 보여주자'는 뜻으로 '충청도 핫바지'가 언급되는 게 아니라 대전, 충청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이 스스로 충청도를 핫바지로 대접받게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송인섭 대전상공회의소장은 지난 2007년 행정도시 기공식에 참석해 "세종시의 역사적인 기공식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궁극적으로 행정도시에서 신행정수도가 될 수 있도록 대전, 충남북이 결집된 역량을 모아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난해 3월에 열린 '행정도시 원안 추진 및 지방살리기 범국민 궐기대회' 개회사를 통해서도 "수도권 규제완화와 행정도시 건설 차질은 국가 균형발전을 하지 말자는 것"이라며 "충청 시도민이 힘을 모아 세종시의 정상 추진에 힘쓰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대전상공회의소는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하기로 논의하고 조만간 이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송인섭 회장은 <대전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논의는 했지만 아직 발표할 시점이 결정되진 않았다"며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지난 1월 17일 정운찬 총리가 대전의 한 호텔에서 대전지역 여성단체 대표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대전여성단체협의회' 김용금 회장은 "여기 계신 분들은 13개 단체 10만 명을 대표한다, 역사의 획으로 남을 수 있는 수정안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용금 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운찬 총리를 향해 "몇 십년간 된장에 익숙하다가 스테이크를 주니 낯설고 어려운 과정을 겪고 있다"고 말해 지역 기자들은 그를 '된장녀'라고 부르고 있다.

하루 앞서 정운찬 총리를 만난 대덕연구단지 출연연 기관장들과 지역 경제계 수장들 중 세종시 원안 추진을 주장하는 인사는 단 한명도 없었으며 오히려 세종시 수정안에 동조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그동안 세종시뿐만 아니라 행정수도건설 초창기부터 '충청권 발전을 위해 반드시 건설돼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 자리에는 송인섭 대전상공회의소장도 참석했었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와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나왔던 수많은 정치인들의 '행정도시'관련 발언은 되새기고 싶지도 않다.

지금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하거나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대부분의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들의 당시 발언을 복기하면 아이들 교육이 걱정될 지경이다. 정치인의 변신도 꼴불견이지만 지역의 대표격인 오피니언 리더들의 변절은 그야말로 허탈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일부 언론의 변신도 눈물겨울 정도

대전에서 '어른'으로 대접받고 있는 계룡건설 이인구 명예회장의 '침묵'도 관심거리다.

그는 지난 2005년 11월 24일 헌법재판소가 행정도시 위헌 소송에 대한 각하 결정을 내리자 바로 다음날 " 법률적 시비가 모두 마무리된 만큼 행복도시 건설이 지속적으로 추진돼 완료될 때까지 지역민 모두의 지혜와 힘을 모으자"고 밝혔다.

이인구 명예회장은 지난해에도 "법에 정해진 대로 행정부처가 옮겨오는 것은 일수불퇴"라며 "9부2처2청이 와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한 이후에는 단 한 차례도 세종시에 대한 언급이 없다.

아니 정부 발표 이후가 아니라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 의사를 밝힌 뒤로는 이인구 명예회장의 '세종시 원안 건설'에 대한 발언이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의 변신은 정치계와 경제계 인사뿐만이 아니다. 최근 지역의 방송과 신문들의 보도를 살펴보면 정부의 세종시 수정에 대한 비판의 칼날이 날이 갈수록 무뎌지고 있다. 반대 급부로 수정안 찬성을 홍보하는 광고는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지난주 대전의 한 방송사에서는 세종시 토론회를 개최하며 수정안 찬성론자 2, 수정안 반대론자 1의 비율로 패널을 선정, 방송의 70%가 넘는 분량이 청와대 수석을 포함한 수정안 추진론자의 발언으로 채워졌다.

또 다른 방송사는 지난 08년 정부의 노조에 대한 압력을 이겨내라며 수많은 대전 시민들이 방송국 앞에 몰려가 촛불을 들었으나 채 2년도 되지 않아 세종시 원안 건설과 함께 세종시 수정 주장에 대해서 '공평하게' 방송하기에 여념이 없다.

또한, 한 일간지에서는 정부의 광고를 통한 회유와 세무조사를 무기삼은 압력에 굴복해 세종시 원안 추진을 주장하는 기사와 사설이 대폭 줄어 기자가 간부에게 항의까지 했다는 이야기가 일선 기자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이렇듯 기자는 지난해 말 부터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위한 홍보전이 대폭 강화된 이후 지역의 유력 인사 중 회유 또는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소신을 지켰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이러고도 다른 지역을 향해 '충청도를 핫바지로 보지 말라'고 항변할 수 있는 것인지.. 충청지역 스스로 핫바지로 대접 받을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역의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핫바지의 정점에는 정운찬 국무총리가 있다.

그의 표현대로 '정부부처를 옮기면 나라가 거덜날 수도 있다'는 행정도시 건설에 대해 그동한 단 한마디의 걱정의 말도 없다가 총리 자리를 제안받은 후부터 '나라걱정'을 시작한 그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는 지난 07년 3월 대전 국립현충원을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난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은 모친의 말을 빗대어 '정승'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 바 있다.

당시 열린우리당 대선후보로 비공식적인 제의를 받고 있던 정운찬 전 총리는 "(모친이 저에게) 자네집에 정승이 3대째나 끊겼다고 말하기에 알아보니 4대, 5대도 정승이 없었다"며 총리직에 관심을 보였다.

결국 정권이 바뀌어 이명박 대통령 밑에서 총리직을 하게 됐지만 총리에 대한 열정 때문에 그동안 나라가 거덜날 정부부처 이전에 대해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아무런 염려의 말도 하지 않았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금도 지울수 없다.

정부와 정운찬 총리는 더 이상 충청도를 핫바지로 만들지 말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대전뉴스 (www.daejeon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대전뉴스 (www.daejeon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종시 #정운찬 #핫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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