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가 국가 경제의 도구로 사용돼선 안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책보고서에서 '영리병원 허용은 시기상조" 지적

등록 2010.01.29 19:14수정 2010.01.29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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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실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영리병원 설립 허용은 시기상조"라며 정부의 정책방향과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연구원은 지난해 발간한 '외국의 보건의료분야 전문자격사 제도 연구와 정책방안'이란 제목의 정책보고서에서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의료분야의 영리법인의 신설과 나아가 의료의 주체를 전문가집단에서 일반대중으로 전환시키자는 주장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연구원은 영리병원 설립 허용은 물론이고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의료관광산업 활성화 등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선진화' 혹은 '의료산업화론'에도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미국 영리병원에서 의료의 효율성이 문제되고 있다"

 

곽정숙 의원(민주노동당)이 입수한 정책보고서에서 연구원은 "세계보건기구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의료만족도가 높은 나라들의 특징은 대다수의 보건의료체제가 비영리병원이나 공공시설에 의존하고 있다"며 "의료의 공공성과 상품성에서 상품성을 인정하는 미국의 경우에도 대부분 비영리법인"이라고 밝혔다.

 

연구원은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 유일하게 의료를 상품으로 간주하고 보험료를 낼 수 없는 사람은 방치되는 나라"라며 "공공의료의 문제가 효율성의 문제로 비추어진다면 이것은 효율성을 목적으로 하는 미국의 영리법인에서 오히려 효율성이 문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은 캐나다보다 두 배나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지만 캐나다보다 평균수명은 2.5년이나 낮고, 유아·영아사망률, 예방가능한 사망률은 높다. 이는 높은 의료비를 지출하면서도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제공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미국 국민의 3분의 2와 미국 의사의 5분의 3이 캐나다의 의료제도를 선호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의료를 '사회복지'가 아닌 '시장의 상품'으로 간주하면 비용은 높아지는데도 의료서비스의 질은 떨어지는 '역설'을 미국의 사례가 잘 보고 주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한국의 의료분야는 이미 민간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민간병원의 비중은 전국 병상수의 84.8%, 전국 병원수의 93.4%에 이른다(2002년). 공공병원은 정부가 폐쇄와 임대를 추진하면서 그 비중이 더욱 줄었다. 국민의료비 중 공공지출의 비중도 53.0%에 불과하다(2005년). 

 

연구원은 "경제위기로 인하여 경제정책의 기조로 도입되던 신자유주의적 경향이 의료분야에까지 확산되면서 의료계도 시장경제지향적인 상업화와 영리화의 경향이 더욱 심화되었다"며 "공공의료는 더욱 축소되고 민간의료는 성장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민간의료 기관간의 경쟁이나 건강에 대한 국민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정부의 장기적이고 기본적인 의료정책의 부재가 그 원인"이라며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의료분야의 영리법인의 신설과 나아가 의료의 주체를 전문가집단에서 일반대중으로 전환시키자는 주장은 시기상조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연구원은 "현재 민간비영리의료기관도 기관의 존속을 위한 영리적인 의료활동이 불가피한 현실에서 수익의 창출을 전제로 하는 자연인에 의하여 경영되는 민간 영리의료기관에 의료접근성과 형평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더욱이 그것이 국민의 건강이 담보된다는 사실을 고려하건대 충분한 검토와 실험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의료산업화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회의적"

 

또한 연구원은 "우리가 보는 미국의 의료산업의 선진화는 환자를 진료해서 벌어들이는 진료수입이라기보다는 의료기술 혹은 제약산업 등에서 얻는 경제적인 성공에 기인한다"며 "미국의 상황을 고려해보건대 우리나라가 이러한 의료의 산업화 또는 선진화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싱가포르, 태국, 인도 등의 몇몇 병원들은 외국 환자를 유치함으로써 경제적 이득을 얻었지만 이들이 달성한 성공이 반드시 우리나라 병원의 일자리 창출과 외화획득 등의 경제적인 효과의 창출을 담보하기에는 여러 가지 제한사항이 존재한다"며 "의료의 역사성과 윤리성에 대한 인식이 없이는 의료가 국가경제의 도구로 사용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향후 보건의료부문 정책을 추진할 때 의료의 고유한 특성상 의료를 영리를 위하여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과 개인의 권익을 보호하려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원의 결론이다.  

2010.01.29 19:14 ⓒ 2010 OhmyNews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영리병원 #의료선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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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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