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노는 물이 달라' 백운산 계곡의 무지개송어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좋은 식당하나는 있어야 될 것 아니냐"

등록 2010.01.31 10:00수정 2010.01.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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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도록 투명한 백운산 한재계곡의 물에서 송어 떼가 노닌다. ⓒ 조찬현

시리도록 투명한 백운산 한재계곡의 물에서 송어 떼가 노닌다. ⓒ 조찬현

시리도록 투명한 계곡의 물에서 송어 떼가 노닌다. 바쁠 것 없는 한가로운 세상이어서일까. 그 움직임이 느릿느릿하다. 덩달아 한껏 여유를 부려본다. '난 노는 물이 달라', 백운산 계곡의 무지개송어 떼가 그렇게 외치고 있는듯했다.

 

제일송어산장의 기정진(66)씨가 송어와 인연을 맺은 사연은 이렇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1988년)의 일이다. 당시 광양군수(정원광)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광양읍에서 고추와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던 기씨는 때마침 다른 업종으로 전환을 꿈꾸고 있던 차였다. 

 

"백운산은 명산이라 앞으로 등산객들이 많이 찾을 것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좋은 식당하나는 있어야 될 것 아니냐, 한번 해봐라."

 

3천 궁녀보다 멋진 3천 마리 무지개송어의 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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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송어산장의 기정진씨가 무지개송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조찬현

제일송어산장의 기정진씨가 무지개송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조찬현

하우스농사 17년, 건강 악화로 인해 맑고 깨끗한 환경에서의 송어양식이 괜찮을 듯싶었다. 당시 세 사람이 시작했으나 지금은 그가 유일하다. 한곳은 송어양식장 상류에 민가가 들어서 오염원으로 인해 문을 닫고, 또 다른 한곳은 섬진강 상류의 수어댐 개발로 인해 사라졌다.

 

제일송어산장은 광양 백운산 한재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지난 29일 오전 이곳을 찾았다. 날씨가 맑을 것이라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송어양식장에는 싸락눈이 날리고 있었다. 사실 광양읍을 지날 때만해도 햇볕이 쨍쨍했다. 송어양식장이 위치한 곳은 해발 600m 고지대다.

 

"서울과 강원도에 눈이 온다고 예보하면 여기에도 딱 눈이 와요."

 

광양읍내에서와는 달리 이곳의 기온은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얘길 듣고 보니 딴에는 그렇겠구나싶었다. 울울창창한 나목 숲에 흩뿌리는 싸락눈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한 폭의 수묵화 같기도 하고, 때로는 딴 세상에 온 듯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예전에는 1만수를 키웠는데 지금은 3천수정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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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지역 광양 백운산 한재계곡의 송어양식장이다. ⓒ 조찬현

청정지역 광양 백운산 한재계곡의 송어양식장이다. ⓒ 조찬현

3천 궁녀가 아니어도 좋다. 3천여마리의 송어 떼가 유영하는 자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느덧 신선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맑은 물 1급수에서만 산다는 송어는 여느 물고기와는 달리 그 노는 물이 확실히 달랐다. 

 

"송어는 강원도 평창의 내수만연구소를 통해 알래스카에서 60년 전에 국내에 들여왔습니다. 치어를 구입해와 이곳 양식장에 풀어놓으면 1년이면 성어가 됩니다."

 

송어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니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함경도 몇몇 지방의 토산물로 실려 있다.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강원도와 경상도 일부 지방의 토산물로 수록되어 있다.

 

두 번의 실패, 기억하기 싫은 그 암담했던 시절

 

살다보면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오늘이 있기까지 그에게도 암울하고 참담했던 시절이 있었다. 두 번의 실패를 겪은 것이다. 한번은 1988년 8월 17일이었다. 그는 아직 기억에도 생생하다고 했다.

 

"믿고 맡겨놨는데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많이 오니까 무섭다고 마을로 내려와 부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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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백운산 한재계곡은 송어양식장으로는 최적지다. ⓒ 조찬현

광양 백운산 한재계곡은 송어양식장으로는 최적지다. ⓒ 조찬현

관리인에게 모든 걸 믿고 맡겨놨었는데 겁 많은 관리인이 천둥번개에 놀란 나머지 양식장을 놔두고 마을의 집으로 가버렸다. 장맛비에 낙엽이 흘러내려와 송어양식장에 물 공급을 해주는 주수구를 막아버린 것이다. 그로 인해 새로운 물 공급이 되지 않아 송어가 전멸했다. 당시 양식장에 물이 가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송어가 떠오르는 걸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잠시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두 번째의 실패는 1994년 7월 초순 무렵이다. 극심한 가뭄으로 계곡물이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계곡의 웅덩이에 양수기를 설치 양식장에 물을 퍼 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정전이 됐다. 전원이 끊기자 1시간도 채 안되어 송어 70%가 떠올랐다. 그때의 심정 또한 암담했다고 한다.

 

"한때는 체념도 했어요, 실패는 또 다른 경험이잖아요. 큰 비가 오면 잠 못잡니다."

 

백운산 계곡의 무지개송어는 지금 월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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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송어다. 송어의 옆면을 보니 무지개 빛깔이 선명하다. ⓒ 조찬현

무지개송어다. 송어의 옆면을 보니 무지개 빛깔이 선명하다. ⓒ 조찬현

자연에 사는 송어는 민물에서 부화하여 바다로 나가 살다가 산란기에 다시 강으로 되돌아온다. 송어가 바다로 내려가지 않고 강에 남아서 성숙한 것을 산천어라고 한다. 따라서 송어와 산천어가 같은 종임을 알 수 있다.

 

지난해에는 1급수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진 무지개 송어가 고흥 앞바다에서 양식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전남 수산기술사업소 고흥지소가 냉수성 어종인 무지개 송어를 바다 가두리 양식장에서 양식하는 데 성공했다며 지난해 5월 27일 성과 발표회와 시식회를 연 것이다.

 

백운산 계곡의 맑은 물이 쉼 없이 쏟아져 내린다. 송어가 무리지어 다니며 유유히 노닌다. 무지개송어다. 송어의 옆면을 보니 무지개 빛깔이 선명하다. 육식성인 송어는 동물성 플랑크톤과 새우 등을 잡아먹고 산다. 연어에 비해 몸통이 굵은 송어는 몸길이가 60Cm 안팎까지 자란다.

 

기온이 낮은 고지대 천연 계곡물에 사는 송어는 월동을 한다. 제일송어산장의 무지개송어는 지금 월동중이다. 3℃ 이하가 되면 송어가 먹이를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

 

광양 백운산 한재계곡은 송어양식장으로는 최적지다. 월동기인 4개월간은 먹이급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의 송어는 4개월 동안 플랑크톤 등의 먹이를 먹으면서 대자연에서 살아간다. 백운산 계곡의 무지개송어는 노는 물이 확실히 달랐다.

2010.01.31 10:00 ⓒ 2010 OhmyNews
#광양 백운산 #무지개송어 #송어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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