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정치 도전, 올해는 배지 달 수 있을까?

[2010 지방선거 D-119] 진보정당 중심으로 대학생 후보 논의 '활발'

등록 2010.02.04 09:31수정 2010.02.04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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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정치 진출 시작하다

선거는 곧 대의제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공직선거마다 각 계급 계층을 대표하여 그들의 이해를 대변할 후보가 출마한다. 당선될 경우 국회, 혹은 지방의회 등에서 자신의 지지기반이 된 집단의 이해관계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나라당이야말로 그들이 대표하는 계급 계층에 가장 충실한 집단이다).

1945년 해방 이후 질긴 독재정권의 망령 속에 한국 정치는 소수 독재집단 혹은 부자 재벌들의 대표들이 독점해왔다. 87년 유월항쟁 이후에는 미약하나마 진보적 지식인, 평범한 소시민들의 대표가 민주적 선거를 통해 정치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소수집단에만 충성하던 정치판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2004년 진보정당의 첫 원내진출로 절정에 달했다. 노조 대표 출신 권영길 의원, 농민 출신 강기갑 의원이 각 계급을 대표하여 국회에 진출한 것이다. 이외에도 각 정당은 비례직을 통해 장애인 대표 의원 등을 배출하기 시작했다.

아직 비율로 보면 초라하지만, 사회적 취약계층인 당사자가 직접 정치에 진출하여 그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위대한 노력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선거를 통해 직접 정치판에 나서려고 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계층이 나타났다. 기성세대로부터 88만원 세대라는 저주스러운 별명으로 불리며, 혹은 사회의식이 전혀 없는 세대라는 모함(?)까지 받고 있는 계층. 대다수가 사회활동에서 사라진 채 살아남기 위한 스펙쌓기에 열중하는 세대. 대한민국 유권자 약 3800만명 중 약 7.8%를 차지하고 있는 결코 작지 않은 계층, 20대 "대학생"들이 바로 그들이다.

2004년 최초의 대학생 총선 도전 그리고 그 이후 

대학생 정치 진출의 첫번째 도전은 진보정당으로부터 출발했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민주노동당은 당내 경선을 통해 대학생 이주희씨(당시 26세, 서울대 재학중)를 비례대표 9번으로 배정했다. 이를 두고 당시 여러 언론에서는 "최연소 국회의원, 최초의 대학생 국회의원 탄생"의 여부에 큰 관심을 보였다. 안타깝게도 민주노동당이 13.1%의 정당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비례대표 8번(당시 노회찬 전 의원)까지만 국회에 진출했고, 최초의 대학생 국회의원 탄생은 간발의 차이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당시 이주희씨는 등록금 문제 해결, 청년 실업 문제 해결 뿐만 아니라 피선거연령 인하, 대학생 정치참여의 제도적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비록 한끝차이로 당선을 놓치긴 했으나 대학생 문제를 전면에 내걸고 대학생 스스로가 정치에 진출하고자 하는 첫번째 시도였으며, 후일을 기대하도록 하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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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총선 당시 최초 대학생 후보 이주희씨 ⓒ 김용한


그러나 그 이후로도 대학생 정치 진출은 여전히 요원한 일이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대학생 출마자 수는 '0'명을 기록했으며,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민주노동당 6명, 무소속 3명 등 20대 출마자들이 늘어났지만, 대부분은 대학을 이미 졸업한 20대들이었다.

하지만 대학생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전국 유일의 대학생 후보로 총선에 도전한 여민영씨(당시 만26세, 부산대 재학 중)가 부산 남구 갑 지역구에서 11.9% 라는 놀라운 득표율을 기록한 것이다. 부산 남구 갑 지역은 여러 대학이 밀집해있는데, 이 지역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전면에 걸고 총선에 나선 친구이자 대표인 여민영 후보에게 지지를 보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당시 여 후보는 유세 기간 내내 오로지 등록금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선거운동을 벌였다.

높은 피선거권 연령과 88만원 세대의 사회적 배경이 걸림돌

지금도 여전히 각 정당들이 20대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특히 17대 대선을 통해 인터넷과 젊은 층이 가진 위력을 실제로 확인한 이후, 이러한 노력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확실하게 20대 대학생들의 정치참여를 넓힐 수 있는 '대학생 정치 진출'은 여전히 쉽게 접하긴 힘들 전망이다.

일단 선진국에 비해 높은 피선거권 제한 연령이 첫번째 걸림돌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선거법은 피선거권이 주어지는 연령을 만25세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요즘 대학생들이 만23~25세 사이에 졸업하는 걸 감안하면 대학생의 정치 진출은 쉽지 않다.

황규철 민노당 학생위원회 집행위원장(27, 고려대)은 "만25세 이상인 대학생들 중 정치에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또한 민주당 대학생 특별위원장 장경태씨(28) 역시 대학생들의 정치 진출을 가로막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연령제한을 들었다.

한편 이러한 피선거권 연령 제한이 너무 높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독일의 경우 만19세 국회의원 안나 뤼어만을 배출했고 영국, 프랑스 등도 만18세를 선거 참여의 합당한 기준 연령으로 정하고 있다. 이에 임종인 전 국회의원은 17대 국회에서 공직 선거의 피선거권 연령을 만18세로 낮추는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높은 피선거권 연령 외에도 무한 경쟁 질서속에 살아가는 대학생들의 현실 또한 정치 진출을 가로막는 높은 장벽이다. 대학생 박민희씨(26, 이화여대)는 "요즘 새내기들은 입학과 동시에 스펙쌓기에 열중한다,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취업 준비 때문에 도전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에 관심을 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소위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대학생들은 고액 등록금과 청년실업, 살인적인 무한 경쟁 속에서 사회적 약자로 내몰림과 동시에 '정치'영역에서 스스로를 배제한 채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계속해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2010 지방선거 D-119, 대학생들의 도전은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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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에서 서울시의원 후보로 거론되는 '고대녀' 김지윤씨 ⓒ 이경민


그러나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여전히 일부 대학생들은 험난한 정치판에 뛰어들 고민을 하고, 또 직접 진출하려 하고 있다. 얼마 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학생위원회는 당 홈페이지를 통해 '고대녀' 김지윤씨(27, 고려대 재학중)를 서울시 의원 비례후보로 추천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입장문에서 그들은 '고액 등록금과 취업문제 등 20대의 삶이 벼랑 끝에 몰렸다'며 '20대 청년학생들의 정치세력화를 통해 희망을 찾겠다'며 대학생 후보 출마 의지를 표명했다. 대학생 스스로 자신들의 대표를 시의회에 진출시켜 대학생의 입장을 대변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이외에도 여러 지역에서 대학생 후보를 출마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민주당은 서울, 경기 지역에서 대학생 비례후보를 출마시킬 예정이다. 장경태 민주당 대학생특별위원장은 "대학생 후보를 실제 당선 가능한 비례후보로 출마시킬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며 "대학생이 서울시 의회에 진출하여 대학생의 권리를 위해 열심히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고 의지를 표명했다.

이외에도 진보신당의 경우 아직 대학생 출마후보자는 없지만 20대 후보를 준비하고 있다. 진보신당 대변인실은 "대학생 후보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방선거의 특성상 현실적으로 대학생 출마가 어렵다" 면서도 "아직 후보등록기간 및 선거가 많이 남아있어서 앞으로 대학생 후보 출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고 밝혔다.

대학생 박민희씨(26, 이화여대)는 이에 대해 "기성 세대가 대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고 관심 갖지 않는다면, 대학생들이 직접 정치판에 뛰어들어 대학생들의 고충을 덜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라며 대학생들의 정치 도전에 긍정적인 뜻을 나타냈다.

이미 고액 등록금, 청년 실업을 비롯하여 각종 대학 문제, 20대 문제가 전 사회적 차원으로 제기되고 있는 지금, 기성 정치권은 문제 해결에 여전히 미온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께서는 반값 등록금 공약한 적 없다고 하고, 인문계열 대학생들은 기술을 배워 취업하라고 하신다. 이러한 답답한 현실이야말로 대학생들이 계속해서 정치의 문을 두드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들의 도전이 어떤 결실을 맺게 될까? 대학생이 국회에, 시의회에 들어간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중앙 정치무대에서 대학생 의원이 탄생한다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우리가 이들의 도전을 유심히 지켜봐야 할 때다.
#지방선거 #대학생 #지자체선거 #20대 #88만원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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