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배우기' 첫 강의 열려

"보수 세력의 무분별한 공격에 대응할 능력 키워야"

등록 2010.02.05 16:47수정 2010.02.05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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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도서관 지하 1층 컨벤션 홀에서 열린 ‘김대중 배우기’ 첫 강의. 김성재 ‘김대중도서관’ 관장 사회로 진지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 조종안

김대중 도서관 지하 1층 컨벤션 홀에서 열린 ‘김대중 배우기’ 첫 강의. 김성재 ‘김대중도서관’ 관장 사회로 진지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 조종안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상과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관장 김성재)이 개설한 '김대중 배우기' 강좌가 2월4일 오후 7시 김대중 도서관 지하 1층 컨벤션 홀에서 열렸다.  

 

(사단법인) '행동하는 양심' 준비위원회와 <오마이뉴스>가 후원하는 '김대중 배우기' 첫 번째 수업은 60분 강의, 10분 휴식, 20분 보강, 30분 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추운 날씨에도 수강생이 1백여 명에 달했고, 여대생에서 노인까지 수강생 세대도 다양해 눈길을 끌었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환영사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환영사가 있었다. 정 장관은 앞으로 여섯 번의 강의를 듣고 나면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게 될 텐데, 앞으로 우리나라 국격이 올라가고 경제도 번영하면서 국민이 삶에 대해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를 계속 고민하고 잘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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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사를 하는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국민의 정부에서 통일부 차관과 장관을 하기 전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별 인연이 없었다는 사실을 소개하기도. ⓒ 조종안

환영사를 하는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국민의 정부에서 통일부 차관과 장관을 하기 전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별 인연이 없었다는 사실을 소개하기도. ⓒ 조종안

 

정 장관은 김대중이라는 사상가의 얘기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립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정책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여론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운 이론 체계로 발전해 나가는 기회가 되기를 빌었다.

 

71년 장충단 공원에 갔었는데, "연설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감탄사가 나왔다고 해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정 장관은 요즘엔 김 대통령이 더욱 그립다며 '김대중 배우기'는 민족의 발전 방향을 밝히는데 이바지할 것이라며 열심히 해달라는 부탁으로 환영사를 마쳤다.

 

이남주 교수 강의 요점 정리 

 

2009년 8월에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대한민국을 선진 민주주의, 인권 국가로 만들었으며, 문화강국, 정보화 강국, 사회정의와 복지사회 실현을 위해 노력했다. 특히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은 통일을 앞당기는 견인차 구실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12월에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 대한민국 국격을 높인 인물로 세계적으로 존경받고 있다. 이렇게 세계가 인정하는 인물의 사상과 정책을 여섯 가지 분야로 살펴보는 '김대중 배우기'는 성공회대 이남주 교수 강의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김대중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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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에 몰두하고 있는 이남주 교수. 수강생들의 열띤 분위기에 약간은 흥분된 것처럼 보이기도. ⓒ 조종안

강의에 몰두하고 있는 이남주 교수. 수강생들의 열띤 분위기에 약간은 흥분된 것처럼 보이기도. ⓒ 조종안

 

성공회대 중국학과 세교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인 이남주 교수는 대학교 때 운동권 학생관점에서 '양 김' 통합을 권유하려고 만났던 김대중과 대통령 재임 시절, 퇴임 후 각종 연설문과 기록을 토대로 담담하게 설명해나갔다.

 

1985년 총선 때 김대중을 현실적인 무게감을 갖고 인식하게 되었고, 1987년 6월 항쟁, 미국에서의 귀국할 당시 사회 분위기를 보며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한국사회에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당시엔 감옥에도 다녀온 운동권 학생이었다는 이 교수는 1986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소위 "3비론"과 단일화 실패에 적잖게 실망했다는 사실도 털어놓으며 정치인이라는 이미지와 혁명가라는 이미지가 섞여 자신과 구분하려고 비판적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1992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참패하는 모습을 보고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국민의 정부가 이런저런 게이트에 시달리던 1999년에 귀국했는데, 어려운 시절에 편하게 지내고 와서 그런지 거리감을 갖게 되었고, 그 거리감은 한 인물과 시대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면서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퇴임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활동에서 서거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며 거리감이 매우 줄어들었고, 국상을 치르는 과정에서 김대중의 정신과 실천의 의미를 더욱 적극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대중 배우기 강좌'가 평소 김대중을 잘 이해하던 사람들보다는 자신과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이 교수는 강의를 준비하려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요 연설문들을 읽어 보았는데,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었다며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생명의 위협까지 무릅쓰며 민주주의적 제도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노력했고, 당당한 성과도 거둔 정치인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반독재가 민주주의 핵심으로 떠올랐던 시절에 김대중이 내놓은 '민주주의론'을 두고 단순히 반독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의미를 포괄적으로 설명한 김대중의 연설문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진 시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발언록 몇 개를 소개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by the people'이다. 국민의 충분히 자유로운 참여 없이는 아무리 국민의 이익을 도모한다고 하더라도 민주주의는 아니다."(옥중서신 266쪽;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1998, 223쪽)

 

"국민이 주인대접을 받고 국민이 주인 역할을 하는 참여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합니다."(국난극복의 길, 취임사 16쪽)

 

"저는 독재에 반대해서 일관되게 피투성이로 싸웠습니다. 한 번도 원칙을 버린 일이 없습니다. 통일정책에 있어서도 용공으로 몰려가면서까지, 오늘날 남북한의 UN동시가입이라든가 3단계 통일방안이라든가 한반도의 4대국 평화보장이라든가 공화국연합라든가, 20년 동안 이런 주장을 일관해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 번도 독재자에 타협한 일이 없습니다."(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29쪽)

 

"국민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게 된다. 우리 민주주의의 아주 큰 희망을 본다. 지금까지 정치는 입법·행정·사법 3부가 이끌고 시민단체가 정치에 영향을 줬다. 이에 이런 촛불문화제에 범국민적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이 정치에 많은 영향을 행사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목소리를 행정부나 입법부가 잘 받아들여 취사선택해서 국민이 만족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잘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2008년 역사비평 가을호)

 

"지난 1년 동안 민주주의가 큰 도전을 받고 20-30년 전으로 후퇴하고 있다."(2009년 1월1일). "자기를 버리면서 큰 틀로 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빈손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전체 10개 중 5개라도 얻어서 2-3개씩이라도 나눠 갖는 것이 나은지... 그것은 분명하다"(2009년 6월20일)

 

이상은 이남주 교수의 강좌 전문에 실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어록 몇 개를 발췌한 것이다. 대통령을 위시한 여당은 물론, 지방선거를 몇 개월 남겨놓고 나아갈 방향조차 찾지 못하고 허둥대는 야당 지도부와 의원들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국민의 정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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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응답 시간 수강생들 표정. 파주에서 왔다는 수강생(박수상)이 양극화 심화와 분배의 정의가 잘 못되었다는 이 교수에게 항의성 질의를 하고 있다. ⓒ 조종안

질의응답 시간 수강생들 표정. 파주에서 왔다는 수강생(박수상)이 양극화 심화와 분배의 정의가 잘 못되었다는 이 교수에게 항의성 질의를 하고 있다. ⓒ 조종안

 

이 교수는 국민의 정부가 받은 비판도 소개했다. 첫째, 각종 권력형 비리에 휩싸이면서 권위주의 정치문화를 극복하지 못했고, 둘째, 개혁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계층들의 비판이 있었으며 셋째, 민주주의가 분배의 정의로 이어지지 못하고 양극화가 심화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렇다고 위와 같은 비판이 국민의 정부 성과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며 당시 정치 환경을 설명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보수 세력이 주장한 "잃어버린 10년"론을 예로 들었는데 민주세력의 도덕성 정당성 공격에 효과적인 대응을 못 한 것도 오늘날 민주주의 위기를 가져온 원인의 하나라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민주주의의 과도기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국민의 정부 업적을 평가하는 데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통계자료를 인용한 분배의 정의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인데 이것만을 근거로 민주정부를 부정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강조했다. 완전무결한 사람이나 정책은 없기 때문이라고.

 

특히 민주주의 진전과 남북화해 외에도 기초생활 보장 제도를 도입하는 등 장기적으로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기틀을 닦아놓은 것을 중요한 공으로 인정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므로 제도를 충실하게 받들어 간다면 복지사회로 나갈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분배지수는 악화되었지만, 경제성장과 다른 지표들은 꾸준히 개선되었다는 점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 정부 때 경제성장률은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할 때 높은 수준을, 실업률은 낮은 수준을 기록해서 균형 있는 평가가 요구된다고. 만약 이러한 지표마저 나빠졌다면 보수 세력의 민주화에 대한 공격은 더욱 거세졌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이 G20에 참가하고 올해는 한국이 G20 정상회담 주최국이 되었는데 지난 10년이 '잃어버린 10년'이라면 적어도 이러한 측면에서는 우리가 보수 세력의 무분별한 공격을 반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국민의 정부가 남겨놓은 문제도 적지 않지만, 모두를 국민의 정부만 탓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설득력 있는 방안을 누구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인데 김대중 정신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떠안은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와 한겨레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2.05 16:47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와 한겨레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대중배우기 #김대중도서관 #이남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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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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