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지역인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주택가에 대한 철거가 시작된 가운데, 조합과 비상대책위원회·세입자간의 분쟁이 가열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답십리 뉴타운 주택가의 모습이다.
선대식
도시는 변해야 할 운명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대개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 부를 안기는 반면 서민들은 절대적·상대적으로 더 나쁜 상황에 놓이게도 한다. 거대 개발프로젝트들이 화려한 조감도를 자랑할 때, 서민들의 생활세계는 여전히 불편과 궁핍에 방치되기도 한다. 부자와 서민이 공존하고,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공존할 수 있는 개발은 가능할 것인가? 지자체가 가지고 있는 막강한 개발권한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 다섯 가지를 생각해 보자.
첫째, 천천히 하라 무엇보다 천천히 해야 한다. 도시재생이 시대상황과 안 맞게 된 공간을 정상화시키는 일이라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심사숙고하며 진행해야 한다. 모두 청계천 모델을 흉내 내느라 임기 중 마치는 데 집착해 있다. 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이리저리 재보고 할 일이다. 공간이란 한번 굳어지면 다시 고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최근 우리 도시가 직면한 새로운 과제들을 공간에 반영해야 한다. 저출산·고령화 추세는 인구의 도심회귀, 소형주택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생태공간을 복원하는 일도 중요하며, 변화된 산업환경에 맞추어 경쟁력 있는 공간도 만들어내야 한다. 특히 공간을 복합적으로 이용하고, 교통량 발생 자체를 줄일 수 있는 콤팩트 시티 개념도 각광받고 있다. 서울의 경우, 사라져버린 4대 문 안의 600년 역사를 복원하는 일도 이제는 현안이다.
둘째, 공공이 나서야 한다 우리 도시가 해결해야 될 중요한 과제는 공공성의 회복이다. 공간개발이 모두 시장에 맡겨져 있는 한, 수익성이 높은 곳만 개발하고 또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서민들을 밀어내고, 나아가 서둘러 개발하는 방식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우선 공공의 인·허가권을 엄정히 사용해야 한다. 제대로 주민들의 동의도 받지 않고, 더구나 주민들의 추가부담과 손실을 강요하는 개발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단체장들은 개발업자의 이익이 아니라 주민의 이익에 입각해서 판단해야 한다. 이와 함께 투명한 절차와 충분한 정보공개 나아가 주민들을 현장에서 지원하는 행정이 필요하다. 서울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공공관리자 제도에 머물지 말고 '도시재생지원단'을 설치하여 상시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낫다.
또한 공공의 재정지원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장에서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공공재정이 필수적이다. 선진국의 도시재생 모델들은 모두 재정지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서울을 예로 들면 향후 20년간 매년 1조 원을 도시재생 재원으로 지원하게 되면 종전과 같은 상업주의 방식 일변도가 아닌 균형 잡힌 개발이 가능하다. 서울시의 재정규모로 본다면 장기계획을 세워서 차근차근 추진할 경우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는 금액이다.
셋째, 뉴타운사업을 서민주거 확대의 계기로 현재의 뉴타운사업 방식은 더 이상 안 된다. 서민주거를 개선하고 임대주택을 늘리는 진정한 뉴타운이 필요하다. 전면 철거방식 일변도에서 소규모 블록형 재개발을 통해 중층 타운하우스 개념을 도입하고, 저출산·고령화 추세에 맞춰 소형 주택을 확대하는 재개발 기법을 도입해야 한다.
임대주택을 늘리는 것은 단순히 세입자 보호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득계층이 살아가는 도시생태계를 보호하는 방법이다. 주변지역의 전세금 상승 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순환개발을 늘리고, 사업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물론 공공의 재정지원이 전제가 된다.
넷째, 생활세계를 살리는 개발 2010년대의 도시개발은 생활공간을 복원하고 정상화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골목길, 문 밖에만 나서면 있는 놀이터, 10분만 나가면 걸을 수 있는 동네올레, 조금 걷더라도 편안히 차를 댈 수 있는 주차공간. 동네를 모두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생활공간을 정상화할 수 있는 비전을 내놓아야 한다. 이를 위해 반경 500미터 생활공간별로 필수서비스를 정하고, 각 지자체는 이를 10년 내에 충족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다섯째, 개발이익을 나눠 쓰는 개발 도시공간을 고층으로 활용하여 발생하는 개발이익은 전적으로 토지주나 개발업자의 것일까? 헌법정신에 따르면 이는 국민들이 함께 향유할 권리이다. 선진국들은 어떤 경우에도 이를 소유자가 독점하도록 하지 않는다. 이들 개발이익을 도시전체와 나눔으로써 부족한 공공용지와 편의시설을 확보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개발자체를 억제하지 않는 대신 개발이익을 나누는 식으로 타협할 필요가 있다.
재건축사업에서도 임대주택을 공급하거나 서민주거 확보를 위한 부담금을 늘려야 한다. 반드시 아파트 방식이 아니어도 기존 주택을 매입하여 임대주택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미 전국적으로 약 3만호 가까운 매입임대주택이 있는데 입주민들의 만족도도 대단히 높다. 또한 현재 서울시가 제한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월세 임대료 지원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전체 주택의 10%를 공공임대주택으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되, 거기에 이를 때까지는 임대료 지원을 합해 10% 가구에 혜택을 주는 것을 중간 목표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