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명전.구중궁궐 깊은 곳에 있는 왕비의 침전으로 장렬왕후가 거처했던 곳이다
이정근
드라마 '추노'가 떴다. 시청률 고공행진을 벌이며 상종가를 치고 있다. 당시 정치 기상도는 이렇다. 권력 상층부에는 임금 인조가 있고 계비 장렬왕후와 후궁 소용조씨가 구중궁궐 깊은 곳을 지키고 있었다.
내명부의 수장은 분명 왕후이지만 임금의 총애를 받는 조소용이 내전을 쥐락펴락했다. 질투심이 강했던 소용조씨는 자신보다 열 살이나 아래인 왕비의 침전에 임금이 찾는 꼴을 보지 못했다. 결국 왕비가 몹쓸 돌림병에 걸렸으니 옥체가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내세워 경덕궁(경희궁)으로 유폐했다.
이 유폐작전에는 영의정 겸 약방제조 김자점과 의원 이형익이 동원되었다. 병자호란 개전 초기, 서북방면군 도원수에 있으면서 적의 침공을 방어하지 못한 죄를 물어 군율에 따라 처형되었어야 할 김자점은 조소용의 구명으로 1년 만에 강화유배가 풀림과 동시에 강화유수, 호위대장, 좌의정, 영의정에 고속승진하면서 소용조씨의 수족이 되었다.
이형익은 또 어떤 인물인가? 조소용의 당진 친정집에 드나들던 시골의원이 어느 날 갑자기 조소용의 부름을 받고 어의가 되어 궁궐을 무시로 드나들었다. 8년간의 인질생활을 마치고 청나라에서 돌아온 소현세자는 이형익에게 침을 맞고 귀국 2개월 만에 숨졌다. 그의 시신 아홉 군데에서 피가 흘렀다고 기록은 전한다.
소현세자 귀국과 함께 내명부 서열 2위로 컴백했던 세자빈은 세자 죽음 후, 조소용의 모함에 사약을 받았다. 세자의 세 아들은 제주도로 유배되어 하나, 둘 죽어갔다. 자신의 아들 숭선군을 김자점의 손자와 혼인시킨 조소용은 김자점을 좌의정에서 영의정으로 돌려 앉히면서 조정을 장악했다. 그야말로 소용조씨 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