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총재 강만수? 참 대단합니다

[주장] 외환위기 때 재무관료가 중앙은행 총재 된다?

등록 2010.03.09 19:30수정 2010.03.0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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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은 참 대단한 경력을 갖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그는 재정경제원(지금의 기획재정부) 차관이었다. 정권도 바뀌고 '외환위기 책임론' 등과 맞물려 그는 10년 야인 생활을 보냈다. 이 정도 공백이면 관가에서는 거의 수명이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과 함께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돌아왔다. 환율이 급등하고 외환보유액이 사정없이 빠져 나가도 그는 1년 동안 굳세게 재무장관 자리를 지켰다.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하다' 소리가 나올 법 한데 이제 그는 이전 모든 것은 비교도 안 될 가히 혁명적인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재무관료 출신으로 이 나라 중앙은행 총재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의 버릇을 고쳐 놓겠다"고 벼른다는 얘기도 들린다.

 

제대로 된 국가에서 재무 관료가 중앙은행 출신이 되는 사례가 또 있는지는 들어본 바가 없다.

 

물론 고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가 한때 공무원으로 일한 적은 있다. 그러나 그는 젊은 시절 잠시 관직에 몸 담았을 뿐, 외국 유학의 길에 오른 후에는 수십 년 동안 충남대 교수로 근무했다. 1998년 전철환 총재 취임 당시 그를 관료 출신으로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혹자는 '재무관료 출신이라고 해서 중앙은행을 맡지 말라는 건 차별'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 중에 재무 관료가 포함돼 있다면 그는 날벼락을 맞아야 마땅한 위선을 저지르는 것이다.

 

재무 관료는 절대로 중앙은행의 수장이 돼서는 안 된다. 고양이는 고양이 나름의 쥐를 잡는 역할이 있다. 고양이는 절대로 생선을 지키는 일을 맡아서는 안되는 게 자연의 섭리다. '고양이라고 해서 생선 지키는 일을 못하게 하는 건 차별'이라고 누가 감히 뻔뻔하게 외칠 수 있는가.

 

재무 공무원들이 자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으로 오는 것조차 한국 금융의 낯 뜨거운 현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한국은행 총재를 차지하겠다니. 혹시 재정부와 한국은행의 독립까지 '좌파 정책'이라고 여기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강만수 위원장 본인은 어떤 생각일지 모르나 저간의 일에 비춰보면 그가 한국은행에 오고자하는 목적은 분명해 보인다.

 

금리를 올릴 것은 안 올리고 가만 놔둬야 할 것은 내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것이 또 정권의 이해와 일치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금리 인하에 편향된 통화정책이 현재 집권당인 한나라당의 이해와 부합하는지는 극히 의심스럽다.

 

아무리 능력이 떨어지는 대통령이라도 경제 성장률을 무조건 올리는 아주 확실한 방법이 있다.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것이다.  국가를 막론하고 정부는 항상 인플레의 유혹에 노출돼 있다. 경제에 거품이 야기되고 차후에 끔찍한 부실을 몰고 오는 한이 있더라도 인플레가 발생하면 두 자리 성장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그 부작용은 모두 후임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된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을 부르는 것을 '악마와의 키스'라고 한다.

 

돈을 풀면 물론 기업 가계에 숨통이 트인다. 하지만 그렇게 풀린 돈은 필요할 때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 풀린 돈을 어느 시점에서 환수하느냐, 한국은행 총재에게 가장 중요한 판단이다. 이 판단을 내리는데 가장 부적절한 인사들이 바로 재무 관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반대의 판단을 가장 잘 하도록 훈련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만물에 각자의 격이 있고 소임이 있다. 이것을 거스르는 데에는 반드시 부작용이라는 대가가 따른다. 안 그래도 정부 간섭 때문에 파열음이 끊이지 않는 이 나라 통화정책이다. 단순히 이명박 정권만의 문제도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는 한국은행의 뜻과 달리 재정경제부 입장을 반영한 금융통화위원들의 반란으로 금리를 낮춘 적도 있다. 지금의 이성태 총재가 부총재 시절 금리 결정에 반대의견을 남기는 웃기지도 않는 촌극이 벌어졌을 때다.

 

금융기자 시절,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가 얼마나 '견원지간'인지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획재정부를 경계하는 것이 잘하는 짓이라고는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기획재정부 사람들이 한국은행을 무시하는 풍조도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지금도 옛날처럼 "어떻게 걔들(한국은행)한테 맡겨요"라고 큰소리 칠 수 있는 재정부가 아니다. 정부만 믿고 따랐던 이 나라는 전 세기말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위기도 겪었다. 그때 차관까지 지낸 강만수 위원장이라면 매사 임할 때 겸손하게 사죄하는 모습이 앞서야 한다. 감히 중앙은행의 버릇을 운운할 입장이 아니다. 본인이 그런 말을 실제로 했든 안했든 현재 그와 같은 이미지로 비치고 있는 이상 몸가짐을 뼈저리게 되돌아 봐야 한다.

 

앞선 정권에서도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재정경제부가 부적절하게 통화정책에 대해서 이리 저리 간섭한 사례는 많이 있다. 하지만 총재 자리까지 넘보는 지경은 아니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유능하다는 소리를 듣는 재정부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가장 무능하고 부적절한 사람으로 전락하는 길이 바로 한국은행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그래도 굳이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전혀 다른 한은 총재를 임명하고 싶다면 군 출신 인사를 추천한다. 차라리 그게 재무장관 출신 중앙은행 총재보다는 국제적으로 낯이 덜 깎이고 부작용이 덜할 것이다.

2010.03.09 19:30 ⓒ 2010 OhmyNews
#한국은행 #강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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