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301) 시간적

― '시간적으로 어림없다', '시간적 배경' 다듬기

등록 2010.03.15 14:53수정 2010.03.1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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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시간적으로 어림없다

 

.. 해수욕도 하려 했었는데 시간적으로 어림없다 ..  <박세욱-자전거 전국일주>(선미디어,2005) 77쪽

 

'해수욕(海水浴)'이란 바닷물에서 헤엄을 치거나 노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는 "바닷물에도 들어가 보려 했는데"나 "바다에서 물놀이도 하려 했는데"나 "바다에서 헤엄치려 했는데"로 손질해 주면 알맞습니다.

 

 ┌ 시간적(時間的) : 시간에 관한

 │   - 시간적 배경 / 시간적 순서 / 시간적 여유 / 시간적인 제한 /

 │     이 일을 오늘 안에 하기에는 시간적으로 촉박하다

 │

 ├ 시간적으로 어림없다

 │→ 시간을 따지면 어림없다

 │→ 시간을 보니 어림없다

 │→ 시간이 없었다

 │→ 시간이 안 되었다

 │→ 시간이 모자랐다

 └ …

 

국어사전 풀이를 따르면 "시간적으로 어림없다"는 "시간에 관한 어림없다"란 소리입니다. 국어사전에 실린 다른 보기글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시간에 관한 배경"이요 "시간에 관한 순서"요 "시간에 관한 여유"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풀이를 해 놓고 보면 어딘가 엉뚱합니다. 무언가 걸맞지 않다는 느낌입니다. "시간적 배경"이나 "시간에 관한 배경" 모두 어울리지 않고 "시간 배경"이라고 할 때가 가장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시간적 순서"나 "시간에 관한 순서" 또한 어울리지 않으며, "시간 순서"라고 적어 놓을 때가 가장 어울리지 않느냐 싶습니다.

 

 ┌ 시간적 여유가 없다

 │→ 시간 여유가 없다

 │→ 여유가 없다

 │→ 느긋하지 않다

 │→ 겨를이 없다

 │→ 틈이 안 난다

 │→ 짬이 없다

 ├ 시간적인 제한이 있다

 │→ 시간 제한이 있다

 │→ 시간이 빡빡하다

 └ …

 

곰곰이 헤아려 보면 "시간 여유가 없다"라는 말마디도 어딘가 어설픕니다. 무언가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느낌입니다. 한자말 '여유(餘裕)'를 넣어서 어설프기보다는, 우리는 으레 "시간이 없다"라는 말마디로 '시간이 넉넉하게 있지 않아 바쁘다'는 뜻과 느낌을 나누어 왔기 때문입니다. 또는 "여유가 없다"라고만 말합니다. 사이에 꾸밈말을 넣을 때에도 "시간이 얼마 없다"나 "시간이 넉넉히 없다"라고들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 "여유가 거의 없다"나 "여유가 하나도 없다"라고들 이야기합니다.

 

모르는 노릇인데, "시간이 얼마 없다"로 써 오던 말투를 "시간 여유가 없다"로 고쳐서 쓰다가 "시간의 여유가 없다"라든지 "시간적 여유가 없다"라든지 슬그머니 고개를 들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한자말 '여유'를 써서 잘못이 아니요, 한자말 '여유'는 안 써야 올바르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말 '얼마'나 '넉넉히'를 뒤로 젖혀 놓으면서 '-의'하고 '-적'이 달라붙는 말투가 스멀스멀 나타나고 자리를 차지했구나 싶습니다.

 

다시금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우리는 좀더 예전에는 "그럴 겨를이 없다"나 "그럴 틈이 없다"나 "그럴 새가 없다"나 "그럴 짬이 없다"처럼 이야기를 했습니다. 따로 '시간'이라는 낱말을 넣지 않으면서 우리 뜻과 느낌을 알맞게 나타내 왔습니다. 이제는 누구도 '시간' 같은 낱말은 한자말로 여기지 않고, 이 낱말이 없다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도록 삶터가 달라졌습니다만, 지난날에는 이런 낱말이 없이 우리 넋과 마음과 생각을 넉넉히 나눌 수 있었습니다. '때-겨를-틈-새-짬-말미' 같은 낱말을 흐름과 자리에 따라 알맞게 넣으면서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

 

 ┌ 시간적으로 촉박하다

 │→ 시간이 빠듯하다 / 빠듯하다

 │→ 시간이 없다 / 겨를이 없다

 │→ 시간이 모자라다 / (무엇할) 틈이 없다

 │→ 코앞에 닥치다 / 발등에 떨어지다

 ├ 시간적으로 여의치 않은 것으로 결론났다

 │→ 시간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되었다

 │→ 시간이 모자라다고 이야기되었다

 │→ 시간이 없다고 마무리되었다

 └ …

 

우리 스스로 짬을 내면서 우리가 주고받는 말과 글을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말미를 나누면서 우리가 쓰고 있는 말과 글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말글을 옳게 가누는지 바르게 추스르는지 알맞게 쓰다듬는지 곱게 매만지는지를 곱씹을 수 있어야 합니다.

 

틈을 내고 겨를을 내야 합니다. 차분하게 되짚을 새가 있어야 합니다. 남한테 떠맡기는 말다듬기나 글다듬기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 스스로 깊이있게 다루는 말이요 우리 손수 갈고닦는 글이 될 때에, 바야흐로 말이 살고 글이 삽니다. 말이 살며 넋이 살고, 글이 살며 얼이 삽니다. 넋과 얼이 나란히 살 때에 마음이 살고 생각이 살 수 있고, 시나브로 사랑과 믿음이 살 수 있습니다. 사랑과 믿음이 살지 않는다면 우리한테 참되거나 슬기로운 삶이란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ㄴ. 시간적 배경

 

.. <몽실언니>의 시간적 배경은 한국전쟁 전후이며, 결말 부분에서 30년을 건너뛰며 ..  <선안나-천의 얼굴을 가진 아동문학>(청동거울,2007) 175쪽

 

"한국전쟁 전후(前後)이며"는 "한국전쟁 앞뒤이며"나 "한국전쟁 즈음이며"나 "한국전쟁 무렵이며"로 손질합니다. "결말(結末) 부분(部分)에서"는 "끝에서"나 "마지막에서"로 다듬고, '30년(三十年)'은 '서른 해'로 다듬어 줍니다.

 

 ┌ <몽실언니>의 시간적 배경은

 │

 │→ <몽실언니>를 쓴 시간 배경은

 │→ <몽실언니>에 나타나는 시간 배경은

 │→ <몽실언니> 이야기가 펼쳐지는 때는

 │→ <몽실언니> 이야기가 이루어지지는 때는

 └ …

 

논문이나 기사나 비평이라고 하는 이름이 붙는 글을 쓰는 분들은 이 보기글과 같은 짜임새에 익숙합니다. "<몽실언니>는 한국전쟁 무렵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며"나 "<몽실언니>는 한국전쟁 때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며"나 "<몽실언니>는 한국전쟁 즈음 삶자락을 보여주는 작품이며"처럼 이야기하는 짜임새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어떠한 이야기를 사람들한테 어떻게 내보여야 좋은가 하는 대목을 살피지 못합니다. 우리가 서로서로 어떠한 말투와 글투로 생각을 주고받으면 좋을까 하는 자리를 돌아보지 못합니다.

·

어른문학을 이야기하든 어린이문학을 이야기하든 다르지 않습니다. 대학생을 가르치든 초·중·고등학생을 가르치든 달라지지 않습니다. 수수함을 잃는 말입니다. 꾸밈없음을 버리는 글입니다. 고움과 맑음을 찾지 않는 말입니다. 믿음과 즐거움을 담지 못하는 글입니다. 조용함과 차분함을 놓치는 말입니다. 넉넉함과 따스함을 보여주지 못하는 글입니다.

 

삶다운 삶을 헤아리지 않는 우리들인 까닭에, 생각다운 생각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삶다운 삶이든 생각다운 생각이든 붙잡지 않고 헤아리지 못하는 탓에, 말다운 말이나 글다운 글을 보듬지 못할 뿐 아니라 처음부터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예 엇나갑니다. 그저 어그러집니다. 그대로 어리석은 길로 빠져듭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3.15 14:53ⓒ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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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적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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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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