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샷, 꼭 해야 하는고?

등록 2010.03.16 11:47수정 2010.03.1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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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에서 오랫만에 만나 한 잔술을 기울이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하다가 보면, 그 술은 정이 넘치는 술이다. ⓒ 하주성

▲ 술 장거리에서 오랫만에 만나 한 잔술을 기울이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하다가 보면, 그 술은 정이 넘치는 술이다. ⓒ 하주성

요즈음 술을 마시면서 보면 첫잔을 들고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원샷'이라는 이야기다. 한 마디로 술잔을 단번에 비우라는 이야기인데, 꼭 그래야만 할까? 술을 빨리 마신다고 해서 대수는 아니다. 그렇게 급하게 먹는 술은 체할 수도 있다. 취하는 것이 아니고 체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왜 우리 술 문화가 갑자기 이렇게 '원샷'으로 바뀐 것일까?

 

왜 꼭 단숨에 마셔야 해

 

어제 저녁 동생 녀석이 귀빠진 날이라고 한다. 몇 사람이 모여 술을 한잔씩 하고 있는데, 어김없이 원샷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술잔을 손에 든 사람들은 무슨 내기라고 한 듯 단숨에 술을 마셔버린다. 그러고 보니 늘 보던 풍경이 있다. 폭탄주라는 것을 마시고 잘 먹었음을 과시하는 행동인지, 빈 술잔을 머리 위에 대고 터는 행동 말이다.

 

그렇게 한숨에 술잔을 비우고 머리 위로 술잔을 털면,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갑자기 왜 이런 술 마시는 문화가 우리에게 유행처럼 번졌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술이란 그저 자신의 양만큼 먹으면 되는 것을, 그렇게까지 강요를 하고, 강요를 당해야 하는지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흔히 농처럼 하는 말이 있다.

 

'술은 술술 잘 들어가 술이다'

'낮술에 취하면 자신의 어미 아비도 몰라본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술을 마실 때는 꼭 원샷을 하라고 졸라댄다. 어지간한 주당들도 이렇게 급하게 몇 순배가 돌면 취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꼭 이렇게 단숨에 술을 비워야만 할까? 언제인가 장날 포장마차에서 술을 한 잔 마시고 있는데, 곁에서 술을 드시는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하고 무슨 원수라고 진 것 같다. 왜 꼭 술을 그렇게 단숨에 마시기를 강요를 하는지 모르겠다. 먹을 만큼 알아서 먹으면 된 텐데,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하는 나쁜 버릇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맞는 말이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은 술자리만큼 고역인 곳이 없다는 이야기도 한다. 강제로 그렇게 술을 마시다가 보면 실수도 하게 되고, 나중에는 인사불성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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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막걸리 문화가 익숙한 우리 술 문화. 배터지게 먹지 않아도 좋고, 그저 몇 잔 먹어도 배가 든든하다. ⓒ 하주성

▲ 막걸리 막걸리 문화가 익숙한 우리 술 문화. 배터지게 먹지 않아도 좋고, 그저 몇 잔 먹어도 배가 든든하다. ⓒ 하주성

 

밤새 마셔도 취하지 않는 술

 

우리 민족의 술 마시는 모습은 어떠했을까? 이야기를 하면서 천천히 마시는 술은 밤새 마시고 또 마셔도 취하지를 않는다. 흔히 마시면서 술이 깬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는 것은 대인관계도 있겠지만, 슬플 때도 기쁠 때도 술을 마신다. 술이 좋은 것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것만도 아니다.

 

여강태수가 편지를 보내와

청심루에 술독을 놓아두겠다고 약속했네

연파가 박체하고 녹창이 임하니

제천 남수에 청퇴가 바라다 보이네

승춘 승상은 자적하고 또 즐거우련만

포병 기회하여 흥이 꺾인지 오래일세

다만 양화에 작은 배를 띄울 수만 있다면

작선 팽눈하여 한잔 술을 마시리

 

대제학을 지낸 조선중기의 문신 김안국(1478 ~ 1543)의 '청심루'라는 글이다. 내용을 보면 여주목사가 청심루에 술독을 놓아두겠다고 약속을 했다. 물안개가 아스라이 낀 수면에서 섬돌을 어루만지니, 하늘 가장자리에는 안개가 가득 끼어있고, 산봉우리는 푸른 언덕이라는 것이다. 봄을 따라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데, 병을 지닌 나그네는 흥이 사라진지 오래되었다는 것. 그러나 여주군 능서면 양화나루에 배를 띄우고 생선을 회치고 어린 싹을 삶으면, 술 한 잔을 마실 수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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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술에 좋은 안주가 아니라도 정이 넘치는 술자리는 언제나 반갑다. 인사불성이 되지 않는다면. ⓒ 하주성

▲ 술 비싼 술에 좋은 안주가 아니라도 정이 넘치는 술자리는 언제나 반갑다. 인사불성이 되지 않는다면. ⓒ 하주성

 

이런 흥과 여유를 갖고 술을 마신 것이 우리네들이다. 결코 술이 독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여도 탐하지 않고, 급하게 술을 마셔야 할 이유도 없다. 원샷을 권하지 않아도 좋고, 그저 술독에 가득한 술을 마실 만큼만 마시면 된다. 이럴 정도의 여유를 갖고 술을 마실 줄 알던 사람들이다.

 

농사를 짓거나 노동을 하는 사람들도 막걸리 한 잔을 쭉 들이키고는 한다. 막걸리 한 대접을 따라 쭉 들이켜도 반은 수염 밑으로 흘려가면서 마신다. 그리고 수염에 붙은 술 방울을 한 번 쓰윽하니 문대면 된다. 많이 마시지도 않는다. 그저 한 두어 잔 배가 든든할 정도면 된다. 그렇게 여유를 갖고 마신 것이 우리네 술이다. 밤새 마셔도 취하지 않아서 좋다. 술을 마시고 머리 위에 잔을 털지 않아도 좋다. 이런 여유로움을 잃어버린 술 자세.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지.

 

어제 마신 술이 아직도 깨지 않는다. 그 '원샷' 때문이다. 아침에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니 그 원샷 때문에 녹다운이 되었단다. 그렇게 사람을 잡는 것이 원샷이다. 술에 대한 찬사는 많다. 그러나 이런 말 한 마디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술이 들어가면 지혜는 나가버린다(G.허버트)"

2010.03.16 11:47 ⓒ 2010 OhmyNews
#술 #문화 #인사불성 #원샷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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