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학원 보내며 삽질 시키지 마세요"

이범이 말하는 학원비 절약형 자녀 교육법

등록 2010.03.19 13:35수정 2010.03.1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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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청소년수련관에 학부모들이 모여들었다. 3월 16일(화)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진행되는 이범(교육평론가, 대입강사, 마을학교 이사)씨의 교육강연이 있던 수련관강당에는 갓난아기를 업은 엄마도 눈에 띄었다. 300석 좌석을 꽉 메운 학부모들 중에 고등학생 자녀를 둔 사람은 열명 내외, 중학생 학부모는 20여명 정도, 그외는 모두 초등학부모였다.

새학기가 시작된 지 보름이 넘었다. 초등학교에 처음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들의 설레는 마음과 기대는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사교육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어찌 초등학생들뿐일까? 중고등학생들은 물론 걸음을 떼기 전부터의 아기들과 대학생들조차도 이젠 취업을 하기 위해 사교육을 받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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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입구에 모인 학부모들. 이런 강연이 자주 열리기를 기대한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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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과 안녕~하는 그날, 행복하고 즐거운 교육이 시작되길 희망한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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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에 모인 학부모들. 초등엄마들이 대부분이었다. ⓒ 한미숙


살림살이는 팍팍해지는데, 늘어나는 사교육비를 줄일 수는 없을까? 강사로 나온 이범씨는 '학원비 절약형 자녀 교육법'의 대안이라기보다는 가정에서 어떻게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12가지 주제로 풀어놓았다. 함께 나누고 싶은 내용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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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이범씨 ⓒ 한미숙


'사교육비, 왜 줄여야 하는지 이해하라'
등록금 천만원대를 육박하는 시대에 대학 입학 이후의 교육비가 대학 입학 이전의 교육비를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이 문제는 점점 가속화될 것이라고 한다. 왜? 우리나라 사회모델이 미국 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등록금이 최고 비싼 미국은 한 학기에 850만원 정도(유럽은 일년 평균 등록금이 약 650만원)이며 그 다음으로 비싼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꺄아~~~"

갑자기 강당 한 쪽에서 아기가 소리를 질렀다. 등록금 얘기를 하는데 우연찮게 들리는 '비명'에 이범씨는 '등록금이 너무 비싸니 아기도 놀란다'며 실제 아이가 넷인 그가 '나한테는 아주 익숙한 소리여서 아기엄마가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 모두 웃으면서 다음 얘기를 들었다. 

대학생들이 쓰는 사교육비는 취업과 전문교육을 목적으로 한 어학비의 비중이 크다. 그 또래를 두고 있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노후 생활의 기반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입시는 '지식'보다 '역량'이 중요하다'
독해력, 추론능력, 논증능력의 힘을 키우는 '역량(力量)'이 갖춰져야 한다. 역량테스트가 꼭 필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고3 언어영역은 한마디로 '감'이다. '문제를 많이 풀어서 성적을 올린다는 것', 이런 생각은 수능언어영역을 얕잡아보는 것이고, 문제풀이로 해결할 수 없으며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이다.

'빨리 정답 찾기' 훈련에 골몰하지 말라' -문제를 많이 풀수록 오히려 수학을 못하게 되는 역설, 왜 발생하는가?
사교육 시장 중에서 가장 비합리적인 과목은 수학이라고 한다. 학부모 기억 속에 수학에 대한 좌절과 공포심이 잠재되어 있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요즘엔 수학의 별별 희한한 '상품'들이 많다. 문제만 많이 푼다고 절대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중학교 때 수학노트 정리가 필요하다. 원리로부터 추론과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해봐야 하는 것이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빈둥대는 걸 못 본다. 그래서 '이거 빨리 풀고 놀아'라고 말한다. 그런 엄마의 아이들은 빨리 문제를 풀어야 놀 수 있다는 생각으로 원리로부터 추론하는 과정을 생략한다. 생략하고 공부한 아이는 고등수학을 풀 수 있는 능력이 없다. 100문제를 빨리 푸는 것보다 10문제를 내 힘으로 정확하게 푸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에서도 이렇게 해야 한다. 자기 논리로 처음부터 끝까지 내 힘으로 풀어내야 고등수학을 풀 수 있는 역량이 키워진다는 것이다.

'읽을거리를 가까이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라'- 중학교 시기까지 꾸준히 읽는 글의 수준이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넓은 의미의 독서교육이 필요하다. 문학서적은 학업과 관련된 읽을거리이며, 자기가 아닌 남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 단순보도로 전해지는 신문보다는 시사주간잡지도 좋다.

'학습만화를 우습게 알지 말라' - 학업흥미도가 최하위권인 한국 학생들에게 학습만화는 오아시스다.
학습만화가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는 한국이라고 한다. 이는 학업흥미도가 최하위권이라는 말과 동전의 양면과 같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이 높다는 건 반쪽 생각이다. 개인적 표현이고 객관적이 못 된다. 29개 나라가 참여한 '팀스' 2007년 과학흥미도조사에서 우리나라는 29등을 했다고 한다. 학업흥미도가 최하위인 우리나라는 교육선진국이 아니다. 학생들 공부하는 시간이 OECD 평균시간 34.5시간에 비해 한국은 50시간이라고 한다.

'공부노동'에 시달리며 학력은 종합 2, 3등 정도로 꾸준히 등수 안에 들긴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를 교육선진국으로 인정해주지는 않는다. 이런 기준선은 먼저 학급당 학생수를 25명 정도로 줄이는 데 있다. 한국은 OECD 22명보다 2배가 많다. 40여명은 개인이 아니라 덩어리로 보이게 한다.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아이들, 반항은 차라리 긍정적인 반응이다. 

'옆집 아이가 뭐하는지 신경쓰지 말라' -유행타는 기획상품이 아주 많다.
초등학생들이 한자급수를 따는 열풍은 유행과 같다. 2000년대 생긴 기획상품이다. 그런데 열심히 한자공부를 해서 급수를 따면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까? 이는 대입이 아닌 취업 때문에 생긴것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현재 기업의 임원진들의 세대를 이해하면 된다. 오히려 내 아이가 고3때 무엇을 요구받을지 그것을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

'PC사용을 통제하라' -노트북으로 바꾸고, 몇시에서 몇시까지 사용할 것인지 정하라.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컴세계를 다 안다. 하드웨어의 통제가 필요하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뇌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남학생에게 게임중독 같은 것은 알콜과 마약과 같은 정도의 중독성이 있으므로 주의와 규제가 더 필요하다.

'중학시절 연합반(종합반) 학원을 보내지 말라' -공부기술이 퇴화하고, 학원중독증까지 더해지면 약이 없다.
학원에서 계획을 다 잡아주기 때문에 아이들은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다. 그렇게 길들여진 아이는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하며 평가하는 자기주도학습이 약해진다.

'중학시절부터 공부기술을 연마하라' -복습기술(복습할 부분에 체크)과 관리기술(주간계획)이 핵심이다.
외형으로 드러나는 '진도'는 내면적인 '성취도'가 결코 아니다. 학교에서는 구체적인 성취도관리를 하고 있지 않다. 대부분의 학원에서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복습'할 필요가 없다고 착각한다. 복습은 중학때부터 가능하다. 공부하면서 '복습해야겠다'는 부분에 체크해두면서 한번에 풀리지 않는 문제는 2차 복습, 3차 복습 이런 식으로 한다. 처음 복습은 그 다음날, 2차 복습은 3,4일 후에, 3차 복습은 일주일 후에 한다. 이런 복습의 장점은 짧은 간격을 반복해야 장기기억으로 남는다는 것, 까먹지 않는 것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공부기술에 관련된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단, 힌트를 줄 수는 있다. 중요한 건 아이들 스스로 공부노하우를 쌓는 일이다.

'인터넷강의를 적극 활용하라'-좋아하는 과목부터, 매일 조금씩 이용하라.
인터넷 강의는 일단 학원비에 견줘 돈이 굳는 편이다. 학원과 달리 자기주도로 하는 학습이기 때문에 공부기술을 별로 해치지도 않는다.

'입학사정관제, 우리 아이는 어느 쪽인가?'
현재 고등학생들에게 입학사정관제는 100%까지 큰 영향은 없다. 다만 우리 아이가 뭘 좋아하고 흥미로워하는지 양육 관점에서 봐야한다. 방법은 입학사정관제를 아예 무시하는 것, 진로나 적성 전공을 우선으로 교과나 특별활동, 입학사정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개성적인 독서이력과 활동이력등의 구술전략을 준비하든지, 아니면 반대로 구술전략을 우선하는 방법이 있다. 여기서 봉사활동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활동이 하나의 전공과만 연결되지는 않는 것으로 봉사활동은 다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벗어나기 쉽지 않은 사교육, 우리는 아이들에게 '열심히' 하라고 말한다. 이 '열심히'에 들어있는 '헛짓'을 알아내는 일에도 눈이 밝아야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능을 보고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12년. 그 시간에 빠른 속도로 문제를 풀고 짜여진 계획표에 학원을 '열심히' 다니며 '삽질'하는 아이들 뒤에는 포클레인으로 수십번의 삽질을 하지 않고도 한번에 퍼내는 아이들이 있다. 바로 자기계획과 주도로 내 힘으로 문제를 끝까지 풀어냈던 아이들이다. 삽질하는 아이들 옆엔 당장에 눈에 띄는 효과를 보고싶어 안달하는 엄마들이 있다. 아이가 뭔가를 바라보고 생각을 곱씹을 시간도 없이 공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한 엄마들이다.

인창동에서 또래 엄마들과 함께 강연을 들었던 정순영(구리초 5학년 학부모)씨는 "많이 찔렸다. 그동안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옆집아이가 부럽기도 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헛짓에 괜한 마음을 쓴 것 같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라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더 깊어졌고 반성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정해진 두시간에서 30여분이 넘어갈 정도로 집중된 강연은 시간상 질문없이 끝났다. 교육에 관한 질문은 이범씨의 메일주소(yibohm@hanmail.net)로 할 수 있다. 이범씨는 현재 한겨레신문 고정칼럼니스트로 <이범, 공부에 反하다>, <굿바이 사교육(공저)>, <이범의 교육특강>, <과학논술> 등의 저서가 있다.

오늘 강연은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구리남양주지회에서 주관하고 구리시 민주당 여성위원회 보조금 보조사업으로 진행되었다. 구리시 민주당 사무국장 신동화씨는 "아이들을 위한 미래세대 투자로 많은 내용을 담가가셨으면 좋겠다"는 말로 행사취지를 짤막하게 소개했다.

문의: (031)568-2311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구리남양주지회  

덧붙이는 글 | 다음 강연은 3월 25일(목) 10시~12시 구리 청소년 수련관 강당에서는 "아이들이 행복한 혁신학교-조현초등학교의 경험"이라는 주제로 양평 조현초등학교 교장 이중현 선생님의 강연이 있다.


덧붙이는 글 다음 강연은 3월 25일(목) 10시~12시 구리 청소년 수련관 강당에서는 "아이들이 행복한 혁신학교-조현초등학교의 경험"이라는 주제로 양평 조현초등학교 교장 이중현 선생님의 강연이 있다.
#이범 #사교육 #학원비절약 #교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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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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