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목련 산후 조리원

등록 2010.03.21 17:41수정 2010.03.21 17:4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목 련

련 ⓒ 송유미

▲ 목 련 ⓒ 송유미

1.

동네 산후 조리원

이른 아침 창가에

활짝 핀 목련나무 한그루

마치 알껍질 깨고

날아온 새들처럼

앙상한 나뭇가지 마다 앉아

지줄지줄 노래 부른다.

 

하얀 솜털 날리는

갓 살피를 뚫고

나온 목련꽃송이들

산고의 땀방울이

봄햇살의 투명한

이마마다 흥건하여라.

 

저 격렬한 어제의 산통을 

끝낸 뒤에야

찾아오는

엄마와 아기의 평화처럼

 

동네 산후 조리원

뒷뜰에 활짝 핀

하얀 목련꽃송이

꽃송이 산모의 땀냄새같이

젖냄새 같이 

모락모락 꽃향기

비릿한 이슬냄새 피어난다.

 

2.

어떤 시인은 목련나무를

그저 습관적으로

좋아한다고 했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격렬한 고통 없이

목련나무 좋아할 수 없겠네.

 

목련꽃은 잎이 피기 전에

꽃을 피우는 인동의 꽃,

이 세상 고통 없이 

어떤 꽃을 피울 수 있으랴.

 

그 해 겨울 만삭의 몸으로

소금 함지 이고

읍내 장에 갔다오다가

산통이 시작되어

입술을 깨물고

허름한 소금 창고에서

이빨로 탯줄을 끊고

나를 낳았다는 어머니.

 

목련 꽃은 순결해서

남자들이 좋아하는 꽃이라,

비바람에 떨어져 

짓밟히는 순간,

 

그 꽃은 어떤 꽃보다 

빨리 몸이 더럽혀지는

불쌍한 여자들

같아서 싫다고 했지. 

 

3.

어떤 이는 꽃눈이 붓을 닮아서

목필(木筆)꽃이라고 부르는 

목련나무…

 

마지막 입춘의 끝에

촉을 내민

아기 목련 꽃송이

제 입술에 매달린

붓끝으로

 

엄마, 엄마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나보다 먼저 

시를 쓴다…

 

a 목 련

련 ⓒ 송유미

▲ 목 련 ⓒ 송유미

2010.03.21 17:41ⓒ 2010 OhmyNews
#백목련 #산고 #어머니 #사랑 #목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2. 2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3. 3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4. 4 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5. 5 윤석열 정부, 1차 독재 징후가 보인다 윤석열 정부, 1차 독재 징후가 보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