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94)

― '강박의 문제', '치료실의 문제' 다듬기

등록 2010.03.25 17:36수정 2010.03.2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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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강박의 문제

 

.. 새 것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와 자기를 주장할 때, 우리에게 낡은 것은 이미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새 것에 대한 강박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  <서숙-따뜻한 뿌리>(녹색평론사,2003) 118쪽

 

"자기를 주장(主張)할"은 "자기를 외칠"이나 "나를 내세울"이나 "나를 뽐낼"로 다듬어 줍니다. "시간의 문제"는 "시간 문제"로 고쳐 줍니다. "문제가 되는 것이다"는 "문제가 된다"로 손봅니다.

 

 ┌ 강박(强迫) : 남의 뜻을 무리하게 내리누르거나 자기 뜻에 억지로 따르게 함

 │   - 언제 소집장이 날아올지 모르는 강박에 쫓기고 있거든

 │

 ├ 새 것에 대한 강박의 문제

 │→ 새 것에 얽매이는 문제

 │→ 새 것에 매이고 마는 문제

 │→ 새 것에 매여 버리는 문제

 └ …

 

내리눌려 있거나 억지로 따라야 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강박'임을 생각한다면, '새 것을 자꾸 따라야 하는 듯 느끼는' 마음을 가리키는 셈입니다. 새 것을 자꾸 따르게 되는 마음이라면, 새 것에 '끄달리는' 마음이기도 하고, 새 것에 '굴레가 매여' 있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더 좋은 새 것이 아니요 더 나쁜 옛 것이 아닐 텐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눈길과 마음밭을 가다듬지 못합니다. 우리 몸뚱이만 돌아볼 수 있다면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는 우리 삶은 자꾸자꾸 '더 헌 것'이 될 터인데, 우리 스스로 내 몸과 삶을 아끼는 마음을 잃어버리는구나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스스로 일컫는 반만 년 역사란 얼마나 '헌 것'인 셈입니까. 나이나 세월을 더 먹는다고 더 좋지 않으나, 나이나 세월이 아직 얕다고 더 나쁘지 않습니다. 저마다 제 그릇 값을 합니다. 모두들 제 몫이 있습니다. 우람하고 오래된 나무는 우람하고 오래된 대로 아름답고, 어리고 작은 나무는 어리고 작은 대로 곱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애틋하게 돌아보면서, 우리 눈길과 몸짓으로 우리 삶자락을 알차게 가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

 │→ 시간 문제가 아니라

 │→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고

 └ …

 

이 보기글을 곰곰이 돌아보니, '-의 문제'라는 말투가 앞뒤에 잇달아 나옵니다. "강박의 문제"는 "새 것에 대한"과 함께 묶어서 돌아보아야 하는데, 한자말 '강박'을 그대로 두고 싶다면, "시간 문제가 아니라 … 강박 문제이다"처럼 손질할 수 있습니다. 또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 강박이 문제이다"처럼 손질할 수 있어요. 앞과 뒤가 나란히 이어질 수 있도록 손질하면 퍽 잘 어울립니다. 앞뒤를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고 … 강박이 문제가 된다"처럼 손질해 보아도 됩니다.

 

이 글을 쓰신 분도 이야기합니다만,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를 더 곱고 싱그럽게 가꿀 수 있는 길을 우리 스스로 버린다고 할 만합니다. 시간에 쫓기든 무엇엔가 내리눌리든, 우리는 더욱 빛나고 알차면서 튼튼한 길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 것이 곧 헌 것이며, 헌 것이 곧 새 것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새 것과 헌 것, 또는 새 것과 옛 것이란 종이 한 장만큼만 다르거나 둘이 똑같은 줄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둘은 따로 나눌 수 없음을, 둘은 한몸임을 살피지 못합니다. 책이면 책이지 헌책과 새책이란 없습니다. 사람이면 사람이지 헌사람과 새사람이란 없습니다. 삶이면 삶이지 헌삶과 새삶이란 없습니다.

 

그리고 말이면 말이지 헌말과 새말이란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옳고 바르게 가누고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넋을 알맞고 아리땁게 다잡아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당차고 씩씩하게 움켜잡아야 합니다.

 

 

ㄴ. 치료실의 문제

 

.. 고비용이 드는 치료실의 문제를 한번 얘기해 보려고 시작한 건데 결국 장애교육에 관한 시스템과 연대 얘기로 맺어지는군요 ..  <함께 웃는 날>(민들레) 6호(2009) 29쪽

 

"고비용(高費用)이 드는"은 "돈이 많이 드는"으로 다듬고, "시작(始作)한 건데"는 "처음 했는데"나 "해 보았는데"로 다듬습니다. '결국(結局)'은 '끝내'나 '그예'나 '어쩔 수 없이'나 '돌고 돌아'나 '이렇게'로 손봅니다. "장애교육에 관(關)한 시스템(system)과 연대(連帶) 얘기로"는 "장애교육과 이어진 (사회) 얼개 얘기로"나 "장애교육 얼거리 얘기로"로 손질해 줍니다.

 

 ┌ 고비용이 드는 치료실의 문제

 │

 │→ 돈이 많이 드는 치료실 문제

 │→ 돈이 많이 드는 치료실이 왜 문제인지

 │→ 돈 많이 드는 치료실이 어떻게 말썽거리인지

 │→ 돈 많이 드는 치료실이 얼마나 안 좋은지

 │→ 돈 많이 드는 치료실이 어찌어찌 나쁜지

 └ …

 

지난 한때 적잖은 지식인들은 이 보기글을 "고비용의 치료실의 문제"처럼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토씨 '-의'를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집어넣으면서도 무엇이 잘못이요 말썽인가를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고비용의 치료실의 문제"처럼 이야기할 분이 제법 많으리라 봅니다. 이 자리에서는 한 군데에서 토씨 '-의'를 씻어냈다 하지만, 언제라도 얄궂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마땅한 소리이지만, 낱말 하나하나 살뜰히 살피려는 마음이 없다면 언제라도 얄궂거나 짓궂은 말투가 두루 퍼지고 맙니다. 낱말 하나하나 알차게 보듬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언제라도 반가우며 싱그러운 말투가 널리 퍼집니다. 우리 마음먹기에 따라 내 글과 말이 아름다울 수 있는 한편, 내 글과 말이 엉망진창이 될 수 있습니다.

 

 ┌ 치료실의 문제란 → 치료실이 왜 문제인가 하는 소리

 ├ 학교의 문제란 → 학교가 왜 문제인가 하는 소리

 ├ 친구의 문제란 → 친구한테서 무엇이 어떻게 문제인가 하는 소리

 └ …

 

먼저 '(무엇)의 문제'라는 말투가 어떻게 문제인가를 느껴야 합니다. 이 말투가 말썽거리임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 말투뿐 아니라, 다른 얄궂고 짓궂은 말투를 어떻게 가다듬으면서 내 말과 글을 살릴 수 있는지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무엇)' 자리에 다른 낱말을 하나씩 넣으면서 '우리 스스로 무슨 생각과 마음을 나타내고자 하는지'를 차근차근 곱씹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의 문제"라 한다면, "우리 아이한테서 무엇이 문제"라고 느끼는가를 곱씹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우리 아이한테 어떤 일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지" 헤아려야 합니다.

 

흐름을 짚고, 앞뒤를 돌아봅니다. 말길을 트고, 마음을 엽니다. 속내를 들여다보고, 매무새를 가다듬습니다. 어떠한 삶이고 어찌 흐르는 삶이며 어찌어찌 되어 가는 삶인지를 내 가슴속으로 깊이 받아들이면서 내 말마디를 가꾸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3.25 17:36ⓒ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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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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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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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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