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안방 도배하고 나니, 신혼방 같네

'불편한 삶'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등록 2010.04.02 18:22수정 2010.04.0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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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모와 함께 도배한 안방 ⓒ 이장연


어디를 가든 자전거만 타고 도서관을 오가며 1년 넘게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 할 필요도 번듯한 직장을 구해 결혼할 생각도 없어 부모님 눈치가 보이지만, 5년여 동안 나름 치열하게 사회생활을 하며 모은 얼마되지 않는 돈을 모두 드리고 소유하지 않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궁상맞고 처량하고 볼품 없겠지만 존경하는 소로우와 간디가 그랬던 것처럼, '불편한 생태적 삶'의 의지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나름 1년이란 시간 동안 자신과의 약속을 깨트리지 않았습니다. 집을 벗어나 먼 길을 떠나진 못했지만.

그런데 요즘 들어 그 약속을 스스로 깨야 하나 걱정입니다. 이제 2014인천아시안게임 선수촌 건설로 남아있던 작은 논밭마저 강제수용 당하면, 당장 먹고 사는 걱정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34년 동안 다행히 밥 걱정은 하지 않았는데, 벼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면 쌀마저 사먹어야 할 판입니다. 더 이상 고된 농사일을 하시기엔 아버지도 힘이 붙이시니 더욱.

그래서 밥벌이도 못하는 서른셋의 '1달러 블로거'는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하나 이래저래 걱정입니다. 특히 지난 화요일과 수요일 허리가 안 좋은 어머니가 침대를 처음 들여놓으시면서, 13년 만에 안방의 낡은 벽지를 뜯어내고 금이 간 벽과 창틀에 실리콘을 쏴주고 방습지를 붙인 뒤 도배를 이모의 도움으로 끝낸 뒤, 지금껏 홀로 집안을 돌봐온 어머니를 생각하니 제 자신에 대해 회의마저 들었습니다.

고달픈 엄마를 위해 고작 할 수 있는 거라곤 농번기에 손을 보태거나, 집안 걸레질, 계단청소를 하거나 벽지에 풀을 붙이고 잘 잠기지 않는 수도꼭지를 교체하는 정도. 그것도 맥가이버처럼 손재주가 좋은 어머니를 곁에서 도와드리는 것뿐이라서, 제 집과 가족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주제에 '왜 이러고 살고 있나'란 근심걱정이 밀려왔습니다.

빗물이 창틈으로 새어 들어와 누렇게 변한 벽지를 뜯어내는 동안에.


그런 씁쓸한 걱정거리를 뒤로 하고 새로 도배한 안방을 둘러보니, 마치 신혼방처럼 말끔해졌습니다. "이 집에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라도 하고 살아야겠다"는 엄마가 편히 주무셨으면 하는 그 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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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약속을 깨고 다시 새 삶을 살아볼까?? ⓒ 이장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도배 #불편한삶 #안방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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