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넷의 강수진, 그녀는 아름다웠다

[리뷰] ' 발레 갈라' 공연을 보다

등록 2010.04.10 15:33수정 2010.04.1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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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 발레 갈라 까멜리아 레이디 ⓒ Credia


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으로 향하는 길. 연둣빛 봄 기운이 완연한 거리를 걸었다. 발걸음이 가벼운 건 눈이 빠지게 기다렸던 한 편의 공연 때문이다. 발레리나 강수진이 2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보여줄 레퍼토리부터가 심상치 않다. 고전발레 작품만 득세해 온 지난 한국의 무용계를 생각해 볼때, 그녀가 보여줄 네오 클래식 작품들, 흔히 모던 발레작품을 눈에 가득 담고 싶었다.

예전 인터넷에 한국인 최초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가 된 강수진의 발 사진이 올랐다. 무대 위 화려한 조명 속, 발끝으로 서는 균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발레리나의 발은 '환상을 깨려는 듯' 관절 마디마디가 일그러지고 부어있는 형상이었다. 평생을 휴가 한번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 연습에 매진한 결과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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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 발레 갈라 모던발레 소품 중에서 ⓒ Credia


발레 갈라, 쏠리고 들끓다

오랜 세월 발레를 비롯해 무용 공연을 빼놓지 않고 봐왔지만, 한국 무용계의 큰 단점은 역시 레퍼토리의 부재다. 고전작품에 매몰된 나머지, 동시대적 고뇌와 도전, 현대성을 담은 작품을 선보이지 못했다. 9일부터 11일까지, 딱 3일간만 진행되는 그녀의 '발레 갈라'에 출연한 4편의 소품 및 다른 작품들 모두가 네오 클래식 계열의 모던 발레 작품들이다.

유럽에서 발원된 드라마 발레의 산실이자 존 노이마이어, 지리 킬리언, 윌리엄 포사이드 등 세계적인 안무가를 잉태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강수진의 위상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녀는 작품해석과 미세한 디테일 모두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무용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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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 발레 갈라 까멜리아 레이디 하이라이트 ⓒ Credia


관객들의 반응은 뜨겁다. 한 마디로 충격이다. 극단적 우아함과 강건한 신체미를 바탕으로 했던 기존의 무용개념에, 현대적 특성이 아로새겨진 '극적 즐거움'과 '유머'가 돋보인 작품들이 무대위에 하나씩 올라왔다.

두 남자의 우정을 그린 <마이웨이> <에피>란 작품에선 상체를 벗은 남성 무용수의 뒷 모습에서 '육체를 통해 소통하는' 무용의 본질적 힘이 느껴졌다. 무용수가 토해내는 괴성과 더불어 격한 리듬의 팝송과 느린 자장가의 리듬을 결합, 독특한 작품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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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 갈라 발레 우아한 이인무, 파드되의 세계 ⓒ Credia


안무가 에릭 고티에의 작품인 <발레 101>은 작품 제목처럼 발레의 기초동작인 101가지를 다양하게 변주, 웃음을 주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국내 초연작인 라흐마니노프의 <스위트 NO2>는 서호주 발레단과 함께 출연,  집단무의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칸딘스키의 '컴퍼지션' 시리즈 그림을 후면 배경에 사용한 점이 눈에 와 닿았다. 무대 위의 무용수들은 마치 캔버스 위에 점을 찍듯, 그림 속 점과 선, 면의 움직임을 체화 해냈다. 칸딘스키의 "점은 침묵과 언어를 잇는 연결"이라는 말처럼, 무용수의 몸은 침묵 속에서 소통의 언어를 발화한다.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강수진, 이슬이 되어 승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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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갈라 기자 간담회 세명의 남자 무용수와 함께한 강수진 ⓒ 오마이뉴스 문성식 기자


강수진이 연기한 <Vapour Plains>는 제목처럼 응결된 이슬이 되어 날아가는 듯했다. 바닥과 천장을 연결하는 백색 천은 구름을 상징하는 듯했고, 강수진은 한번도 땅에 발을 닿지 않은 채 남자 무용수에게 들려, 공중에 뜬 상태로 연기했다. 몸이 응결된 사물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변화하는 순간이었다.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까멜리아 레이디>는 강수진의 부드럽고 섬세한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번 발레 갈라는 44살의 무용수가 가진 모든 걸 토해낸 무대다. 아름다움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건 그녀를 두고 한 말임을 인정한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작품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고 섬세하게 조율하는 지혜의 몫이 커진 탓이리라.

함께 한 남성 무용수들과의 호흡은 경이에 가깝다. 타인의 숨결이 내 것이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문제다. 일그러진 그녀의 발이 떠올리고선, 눈물이 맺혔다. 한 마디로 놀랍다. 그리고 고맙다. 대한민국에 이런 발레리나가 있다는 것이. 그녀에게 경배를!

덧붙이는 글 | 다음뷰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뷰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강수진 #발레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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