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달걀은 언제나 예쁘고 아름다웠습니다

아이들이 부활절에는 맥반석 구운계란을 먹는 날이라고 기억하면 어쩌나

등록 2010.04.13 16:58수정 2010.04.13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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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부활달걀 노란 딱지만이 붙었습니다

부활달걀 노란 딱지만이 붙었습니다 ⓒ 김관숙

▲ 부활달걀 노란 딱지만이 붙었습니다 ⓒ 김관숙

부활절(4월 4일) 날 성당에서 부활 달걀 두 개를 받았습니다. 부활 달걀은 예쁜 리본끈으로 묶인 작은 비닐봉지 속에 막대사탕 한 개와 같이 들어있었는데 모양새가 이상했습니다. 부활을 상징하는 그림이나 기호도 없이 그냥 노란딱지 하나가 붙어있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와서 리본을 풀고 부활 달걀을 꺼내 보았습니다. 노란딱지는 업자가 만든 표지였는데 '맥반석 구운계란' 이라는 글귀와 함께 판매처에 전화번호와 유통기한까지 찍혀있습니다.

 

a 달랑 노란딱지 하나 부활절에 관한 무엇도 없습니다

달랑 노란딱지 하나 부활절에 관한 무엇도 없습니다 ⓒ 김관숙

▲ 달랑 노란딱지 하나 부활절에 관한 무엇도 없습니다 ⓒ 김관숙

얼마나 황당하던지 웃고만 있는데 남편이 '올 부활절 달걀은 이상하네' 하더니 더 이상 관심이 없는 얼굴로 방에 들어가서 양복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 입습니다. 부활절은 즐겁고 기쁜 대축일 날입니다. 그래서 부활절 미사에 나도 남편도 정장을 하고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정장을 하고 다녀온 내 모습이 그만 무색해졌습니다. 

 

해마다 부활 달걀을 받으면 그림들이 너무 예쁘고 아까워서 바로 까먹지를 못하고 이틀쯤을 무슨 장식인양 식탁에 놓아두고는 하였는데 오늘은 바로 먹어 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생각일 뿐 바로 먹지도 못했습니다. 먹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부활 달걀은 언제나 예쁘고 아름다웠습니다. 물감으로 부활을 의미하는 단순한 글귀나 기호 또는 그림으로 꾸며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 어설프고 서툰 솜씨에 도안들이 얼마나 친근감을 주었는지 모릅니다. 그 친근감 때문인가 봅니다. 부활 달걀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부활 노래들이 귓가에서 맴을 돌고는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노래들이 조용히 내 안에 스며 들어와 가득히 차고는 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부활 달걀을 통해서 부활대축일의 기쁨을 느끼고는 했습니다. 

 

'맥반석 구운계란'이라는 딱지가 붙은 달걀에서는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부활의 상징 같은 건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비록 신부님이 축성을 하였다 해도 마트에서 사 온 건강에 좋은 무엇이라는 생각만이 듭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부활대축일을 상징하고 부활에 기쁨을 배가 시켜주는 그 친숙한 도안들이 그려진 달걀 모양새는 변하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변했습니다. 부활 달걀이라고 하면서 이웃과 한 개씩 나누어 먹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부활 달걀은 깊은 신심과 정성으로 만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부활 달걀을 준비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때는 어려운 시절이라 집집이 사는 형편들이 힘들었습니다. 성당 사정도 넉넉지가 못했습니다. 지금처럼 성당에서 달걀들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삶은 달걀들을 모았습니다. 그 해 역시 신심이 깊은 어머니는 부활절이 다가오자 달걀을 열 꾸러미씩이나 샀고 모두 삶아서 성당에 가지고 갔습니다. 지금은 흰 달걀보다 누런 달걀이 더 많지만 그때는 흰 달걀뿐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중간 무쇠솥에 굵은 호렴 한 줌을 넣고 장작불을 지펴 달걀을 삶을 때 어린 나는 속으로 그 달걀들이 모두 터져서 못쓰게 되기를 빌었습니다. 어머니는 터진 달걀들만을 내 손에 놓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해는 어찌나 정성을 들여 삶았던지 터진 달걀들이 별로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나마 눈치를 채고 모여든 동생들 손에 놓아지고 내 차례는 오지도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삶아서 가지고 온 하얀 달걀에 성가대원들과 학생들이 둘러앉아 물감으로 예쁘게 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손이 모자라 나 같은 단발머리 초등생들도 그림을 그렸습니다. 나는 주로 붉은 물감을 찍은 가느다란 붓으로 십자가를 그리고 '축 부활' 이라고 썼습니다. 너무 단순했던지 긴 머리에 눈이 큰 대학생 언니가 한 쪽이 허전하다면서 꽃송이, 별, 나무를 그려 넣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때도 나는 부활노래들이 귓가에서 맴을 돌았었습니다. 부활노래에 젖어 한참 달걀에 그림을 그리다가 보니까 서로의 그림을 비교해가면서 재잘대던 친구들도 조용히 그림을 그리기만 했는데 아마도 나처럼 부활노래들이 귓가에서 맴을 돌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축복인 줄을 몰랐습니다. 하느님에게 다가 가는 길인줄도 몰랐습니다.

 

작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그 대학생 언니가 누군가가 그림을 그려넣다가 떨어뜨려 금이 살짝 간 달걀 두 개를 내게 주었습니다. 금이 갔지만 까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달걀은 예쁘고 아름다웠습니다.

 

"넌 떨어뜨리지도 않고 아주 예쁘게 잘 그리는구나 이건 상품으로 주는 거야."

 

한 개는 먹고 한 개는 주머니에 간직했습니다. 어머니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궁이 앞에 앉아 타오르는 장작불 조절을 하면서 달걀들을 삶기만 했지 입에는 대지도 않았습니다.

 

이제는 아름다운 부활 달걀을 추억속에서나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성당에 모여앉아 달걀에 그림을 그리던 그 정감 넘치는 풍경이며 쓰고 남은 물감을 미술시간에 사용하라고 나누워 주시던 신부님의 모습이 새삼 그리워졌습니다. 

 

a 부활달걀 성당에서 받은 것과 길에서 교회사람들이 준 것을 모아 놓았습니다.

부활달걀 성당에서 받은 것과 길에서 교회사람들이 준 것을 모아 놓았습니다. ⓒ 김관숙

▲ 부활달걀 성당에서 받은 것과 길에서 교회사람들이 준 것을 모아 놓았습니다. ⓒ 김관숙

 

오후에 남편과 같이 마트장을 봐가지고 오다가 근처에 있는 교회 사람들이 길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부활 달걀입니다'라고 하면서 부활 달걀을 나누어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도 남편도 한 개씩 받았습니다. 달걀은 부활에 관한 글귀가 있는 호화로운 비닐스티커로 둘러져 있습니다. 무슨 상품처럼 보였지만 그나마 다행입니다 노란 딱지보다는 훨씬 나아 보입니다.

 

호화로운 비닐 스티커 때문인지 나는 순간적으로 살아있는 달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달걀을 가만히 뺨에 대 보다가 귀에 대보았습니다. 안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에 소리가 전해져 올 듯도 한데 그러면서 금방이라도 찬란한 모습을 보여 줄 것만 같은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내 가슴속에서 일고 있는 소리만이 들렸습니다.  

 

노란 딱지만이 붙어 있는 부활 달걀을 받은 어린 아이들이 부활절에는 '맥반석 구운계란'을 먹는 날이라고 기억을 하면 어쩌나... 

2010.04.13 16:58ⓒ 2010 OhmyNews
#부활절 #부활달걀 #맥반석 구운계란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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