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것에 생명의 기를 넣는 꽃그림

국제갤러리 신관과 본관에서 열리는 '김홍주전', '이광호전'을 보고

등록 2010.04.26 11:24수정 2010.04.2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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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광호전'이 열리는 소격동 국제갤러리본관 입구. '김홍주전'은 신관에서 열린다

'이광호전'이 열리는 소격동 국제갤러리본관 입구. '김홍주전'은 신관에서 열린다 ⓒ 김형순


지금 국제갤러리 신관에서는 김홍주(1945~)전이 본관에서는 이광호(1967~)전이 나란히 열린다. 세밀화로 유명한 김홍주는 한국에서 그림을 가장 잘 그리는 작가로 소문나 있고 이광호는 그에 못지않은 극사실화가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두 작가의 전시회가 형과 아우사이처럼 잘 어울린다. 이는 갤러리 측의 의도이기도 하다.

가시의 아픔도 사막의 고통도 녹여낸 꽃그림


a   김홍주 I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96×96cm 2009

김홍주 I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96×96cm 2009 ⓒ 김형순


a  이광호 I '선인장(Cactus)연작' 캔버스에 유화 120×100cm 2009

이광호 I '선인장(Cactus)연작' 캔버스에 유화 120×100cm 2009 ⓒ 김형순


김홍주는 '꽃'이, 이광호는 '선인장'이 이번 전의 주제이다. 꽃은 아픔을 딛고 아름다움을 키우는 속성이 있다. 김홍주의 작품에는 장미의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가시의 아픔을 이기고 얻은 꽃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꽃의 이미지만을 가져왔기 때문에 꽃이 낯설게 보인다.

김홍주는 미술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힘을 믿는 작가다. 70년대 초 전위단체인 '시간과 공간(ST)'을 필두로 여러 실험을 해왔고 사조에 편승하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의 작품이라 그런지 그지없이 아름답다. 정신이 얼얼할 정도로 황홀하다. 게다가 예쁘기까지 하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다스리는 심미안이 주는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이광호의 선인장 연작은 조금 다르다. 생경하지만 생명력이 넘친다. 열악한 사막에서 독하게 생명을 지켜온 선인장을 그린 것이라 어느 꽃보다 질겨 보인다. 하여간 두 작가의 꽃그림은 가시의 아픔도 사막의 고통도 다 녹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막의 승자인 선인장의 에너지, 우리에게도 절박해

a  이광호 I '선인장(Cactus)연작' 캔버스에 유화 193×130cm 2009

이광호 I '선인장(Cactus)연작' 캔버스에 유화 193×130cm 2009 ⓒ 김형순


위 작품을 보니 하늘로 치솟는 관능적 이미지와 에로틱한 분위기에 숨막힌다. 이런 원시적 생명력에 매료된다. 우리도 이런 에너지를 긴급하게 수혈 받고 싶다는 욕구마저 든다. 극사실화가 주는 위력이 바로 이런 것인가. 사진과 다른 회화의 힘이 느껴진다.


요즘 우리는 살기등등한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삶의 에너지가 점점 고갈되어 간다. 한국은 OECD통계로 자살률과 이혼율이 세계1위다. 최근 '천안함' 등 예축불허의 사고로 통곡과 오열이 끝이지 않는다. 이렇게 치이고 죽고 상처입고 갈라지는 삶 속에서 예술은 그 생명력을 다시 살리고 축제적 삶의 기원인 '기운생동'을 복원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림의 속성이란 물질로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물성에 생명과 작가의 혼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예술이란 결국 죽어가는 것에 생명의 기를 넣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열악한 사막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선인장이 간직한 에너지가 오늘 우리에게 너무 절박하다. 그런 면에서 미술은 그 사회적 역할이 크다.


원시적 생명력 내뿜은 선인장의 황홀한 발정

a  이광호 I '선인장(Cactus)연작' 캔버스에 유화 139×130cm 2009

이광호 I '선인장(Cactus)연작' 캔버스에 유화 139×130cm 2009 ⓒ 김형순


김홍주의 세밀한 꽃이 감추어진 에로티시즘이라면 이광호의 극사실화 선인장은 드러난 에로티시즘이다. 꽃 하면 장미지만 잘 살펴보면 선인장은 장미보다 더 묘한 아름다움이 있다. 밤새 붉게 핀 선연한 선인장의 매력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

이광호의 선인장은 무엇보다 남근적 아우라가 강하게 풍긴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고 볼 때 자연이나 인간이나 에로스의 기운이 최강일 때가 전성기다. 위에 선인장은 그런 원초적 생명력이 하늘로 치솟는다. 이걸 '발정의 미학'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이런 삶의 열정과 성적 에너지와 창조적 상상력이 작동할 때 우리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극사실화가 추상화가 되는 극적 묘미

a  이광호 I '대관령' 캔버스에 유화 72×130cm 2009

이광호 I '대관령' 캔버스에 유화 72×130cm 2009 ⓒ 김형순


본관 2층에서는 1층과 다른 이광호의 '풍경화연작'도 선보이고 있다. 이 작가에게 '손으로 그리는 그림'과 '가슴으로 그리는 그림'과 '머리로 그리는 그림' 중 어디에 속하느냐고 물으니 역시 '선인장연작'에서 보듯 손으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풍경화연작'은 가슴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극과 극은 통한다고 극사실화가 추상화로 보이는 착시현상이다. 미가 노출될 때도 일부 감춰진 면이 있어야 더 짜릿한 맛이 나듯 극사실화도 추상적 요소가 살짝 얹히니 더 매력적이다. 여기에선 작가가 앞에서 언급한대로 작품에 작가의 감정이 이입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보인다. 그래서 자연에 대한 신령한 경외감을 일으킨다.

눈 빠질 정도로 열심히 그리는 작가들

a  김홍주 I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29×147cm 2008. 이렇게 섬세한 그림을 그리려면 엄청난 작업시간을 요구할 것 같다

김홍주 I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29×147cm 2008. 이렇게 섬세한 그림을 그리려면 엄청난 작업시간을 요구할 것 같다 ⓒ 김형순


a  이광호 I '선인장(Cactus)연작' 캔버스에 유화 193×130cm 2009. 극사실화의 위력을 보여준다. 사진보다 더 실물 같다

이광호 I '선인장(Cactus)연작' 캔버스에 유화 193×130cm 2009. 극사실화의 위력을 보여준다. 사진보다 더 실물 같다 ⓒ 김형순


김홍주와 이광호의 공통점은 눈이 빠질 정도로 그림에 몰입해 그린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그들 작품을 모니터나 인쇄물로 보면 제 맛이 안 난다. 어떤 면에서는 손해인데 이를 어쩌랴. 이들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치열한 몸짓으로 자신과 작품과 혈투를 벌인다.

미술평론가 유진상의 말처럼 이광호는 한국화단에서 누구보다 구상에서 탁월한 재능과 독보적 노선을 걷어왔다는 말에 공감한다. 독일작가들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실력이 있으면 언제가 빛을 본다고 믿고 작품을 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 두 작가가 그런 것 같다. 

한중일 미술경쟁시대에 위기감

a  김홍주 I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29×147cm 1994-1995 신관 2층에서는 김홍주가 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시대에 한글의 서예전통을 기반으로 시도한 그래픽작품이다. 그 발상이 참신하다

김홍주 I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29×147cm 1994-1995 신관 2층에서는 김홍주가 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시대에 한글의 서예전통을 기반으로 시도한 그래픽작품이다. 그 발상이 참신하다 ⓒ 김형순


지금은 한중일 문화전쟁시대, 이 두 작가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아트인컬처>가 올 4월호에 '아트프라이스(Art Price)'를 인용해 소개한 <세계작가 50인>에 중국작가가 16명이나 들어있다. 1위는 중국의 자오 우키(Zao Wou-ki)고, 2위는 미국의 제프 쿤스다. 한국은 이우환이 유일하고 그 순위도 30위이다.

작가와 간담회에서도 이게 화제가 됐지만 의견은 분분했다. 물론 중국화교들이 많으니까 그런 현상이 있겠지만 바젤 아트페어 등 세계미술시장을 발로 뛰는 국제갤러리 이현숙 관장은 너무 인위적인 것 같다며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한국작가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독특함이 있음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위 통계는 한국미술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이는 한국교육제도의 치명적 약점에서 온 것이리라. 일제시대나 맞는 일제고사가 지금도 시행되고 있다. 노벨과학상에서 한일을 비교하면 0:13이다. 최근 삼성폰은 아이폰에 먹혀 최대 위기에 놓였다. 모방으로 1등은 해도 창의성이 없으면 그걸 유지 못한다. 창의성이 생명인 미술은 그런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한국구상회화의 가능성을 보다

a  이광호 I '선인장(Cactus No.47)' 캔버스에 유화 250×300cm 2010. 드로잉이 정교하고 색채의 아름다움도 독특하게 살아난 극사실화다

이광호 I '선인장(Cactus No.47)' 캔버스에 유화 250×300cm 2010. 드로잉이 정교하고 색채의 아름다움도 독특하게 살아난 극사실화다 ⓒ 김형순


그건 그렇고 두 작가의 여러 작품에서 보듯 세밀화나 극사실화에 취향이 없는 관객이라도 마음이 끌리지 않았을까 싶다. '구상회화의 죽음'은 서양미술사에서 여러 번 있었다. 미국에서는 80년대 이후 슈나벨 같은 신구상파작가가 나타나 이를 복원했다. 하여간 이번 전은 구상화의 가능성을 넓혔다. 

국제갤러리 전시장을 나오면서 국립현대미술관 예정지를 지나게 된다. 한중일 문화전쟁시대에 우리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이 건물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적 건축가를 국제적으로 공모한 1976년 퐁피두미술관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하여간 전시장을 나오면서 이런 결론이 내렸다. 남자는 분명 여자보다 힘이 세다, 그러나 여자의 아름다움이 남자보다 더 힘이 세다. 정치경제도 힘이 세지만 문화예술의 힘은 더 세다. 김구선생은 이를 알고 한국의 비전을 문화국에 두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것은 바로 아름다움, 그것은 죽어가는 것에 생명의 기를 넣고 인류를 구원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국제갤러리 전화 02)735-8449 홈페이지 www.kukje.org
[이광호-터치(Touch)전] 2010년 4월15일부터 5월16일까지 국제갤러리 본관
이광호 학력 및 경력 : 서울대미대 회화과 및 동 대학원졸업. 2006년 창동입주작가 선정

[김홍주-꽃그림전] 2010년 4월2일부터 4월30일까지 국제갤러리 신관
김홍주 학력 및 경력 : 홍대미대와 동대학원서양화과 졸업 2005년 로댕갤러리 대규모회고전. 목원대교수


덧붙이는 글 국제갤러리 전화 02)735-8449 홈페이지 www.kukje.org
[이광호-터치(Touch)전] 2010년 4월15일부터 5월16일까지 국제갤러리 본관
이광호 학력 및 경력 : 서울대미대 회화과 및 동 대학원졸업. 2006년 창동입주작가 선정

[김홍주-꽃그림전] 2010년 4월2일부터 4월30일까지 국제갤러리 신관
김홍주 학력 및 경력 : 홍대미대와 동대학원서양화과 졸업 2005년 로댕갤러리 대규모회고전. 목원대교수
#김홍주 #이광호 #세밀화 #극사실화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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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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