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앨 것은 구의회가 아닌 풀뿌리 일당독재

정당명부 도입으로 풀뿌리 정당정치와 권력분립 복원

등록 2010.04.28 16:21수정 2010.04.2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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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국회 행정체제개편특위는 서울특별시와 6대 광역시 구의회를 폐지하는 '지방행정체제개편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구의회 폐지는 생활권이 겹치는 광역시에서 기초의회가 별도로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구의회 대신 구청장과 해당 구에서 선출된 광역의원으로 구성된 구정위원회를 설치하여 기초단체장의 비리와 부패를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의한 이러한 방침은 지방자치의 본질에 반한다. 선진국 지방자치의 흐름은 광역단체의 지위를 강화하여 중앙집권을 완화시키며, 기초자치단체에서 주민자치를 보장하여 풀뿌리민주주의를 확대시키는 것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토론과 설득을 통해 주민들의 자율적인 결정을 이끌어 낸다.

 

그러나 국회의 행정체제개편 논의는 이런 추세와 반대로 가면서 널뛰기를 하고 있다. 17대 국회에서 도를 폐지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사전단계로 시군구의 통폐합을 밀어붙이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고 용두사미가 됐다. 또한 읍면동의 예산과 행정기능을 제거하고, 이름뿐인 주민자치기구로 전환하겠다는 결정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

 

구의회 폐지는 지방자치단체장의 비리와 부패를 차단하는 근본적인 방안과 거리가 멀다. 자치단체장을 포함하여 지방정치인의 부패가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풀뿌리 일당독재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도권과 영남에서 광역단체장, 광역의회, 기초단체장, 기초의회를 한나라당이 독차지하고 있다. 호남의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풀뿌리일당독재로 정당 간의 경쟁과 견제가 사라졌다. 광역이나 기초, 단체장이나 의회가 모두 같은 당 소속이니, 지방차원의 권력분립이 불가능하다. 지역토호가 지방정치인 행세를 하고, 정경유착이 극심해도 이를 견제할 정당이 없고, 기관이 없다. 전부 한 통속이기 때문이다. 지방정치에서 일당독재로 인한 부패는 호남의 경우를 보면 민주당도 자유롭지 못하다.

 

풀뿌리일당독재를 극복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대안도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다. 제 식구끼리 모인 구정위원회가 단체장을 견제할 수 없다. 더구나 광역의회 일정으로 바쁜 광역의원들이 의결권도 없는 구정위원회에 공을 들일 까닭이 없다. 오히려 유명무실해지는 것은 물론, 은밀한 정치야합이 우려된다.

 

2006년 지방선거 광역의원 정당별 당선자를 보면, 1등만 당선되고, 나머지 표는 사표가 되는 소선거구제가 일당독재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국 광역의원 733명 중 557명이 한나라당 소속이며, 수도권의 96.5%, 영남의 91.1%가 한나라당 소속이다. 반면 호남에서 한나라당 소속은 전무하다. 사실상 헌법상 복수정당제가 지역차원에서는 실종된 셈이다.

 

지방정치의 정경유착을 근절하려면 풀뿌리 일당독재를 없애 정당정치와 풀뿌리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일당독재를 근본적으로 막는 방안은 전면적인 정당명부제를 실시하거나, 비례대표 의석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이다. 독일은 하원선거와 지방선거 모두 정당명부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프랑스도 지방선거의 경우 데빠르뜨망을 제외하면 헤지옹과 코뮌 선거에서 전면적인 정당명부제를 실시하고 있다.

 

지역차원에서 정당명부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하면 원내정당들이 지방의회에서 전혀 의석을 갖지 못하는 현상을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다. 즉 정경유착을 불러일으키는 풀뿌리일당독재를 없앨 수 있다. 또한 국회의원선거에서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검토한다면, 그에 선행하는 정치실험의 의미도 있다.

 

자치단체장의 부패를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구의회를 폐지하는 엉뚱한 방식이 아니라, 무엇보다 과도한 단체장의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 행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단체장에 당선되면 모든 행정을 좌지우지하는 현행의 제도는 단체장에게 과부하를 주고 있다. 권한남용은 물론 재선비용을 만들려는 단체장에게 뇌물수수와 같은 부패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프랑스나 독일처럼 각 당이 정당명부를 제출하고, 제1당의 1순위자가 지방의회 의장과 자치단체장을 겸임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지방의회 의장인 시장이 행정부시장을 임명하여 행정실무를 맡기고, 자신은 정치적 역할에 주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행정의 전문성을 보장하면서도 행정부시장에 대한 임면권을 행사하여 행정부패를 차단할 수 있다. 또한 시장이 의회 의장을 겸하기 때문에 행정 전반에 대한 의회의 감시와 통제가 의회 내에서 일상적으로 진행된다는 장점이 있다.

덧붙이는 글 | 본 글이 새세상연구소에도 동시에 게재됩니다.

2010.04.28 16:21ⓒ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본 글이 새세상연구소에도 동시에 게재됩니다.
#구의회 폐지 #행정구역개편 #단체장부패 #정당명부 #풀뿌리일당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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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12년간 기관지위원회와 정책연구소에서 일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연방제 통일과 새로운 공화국』, 『미국은 살아남을까』, 『코리아를 흔든 100년의 국제정세』, 『 마르크스의 실천과 이론』 등의 저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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