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 끼 먹는 거 힘들지 않냐?"

[새터 찾아 삼만리 15] 아들 녀석과 집 짓는 현장에서 세 끼 먹기

등록 2010.05.05 15:11수정 2010.05.0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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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글세방 할머니가 채려준 밥상 앞에 앉아 있는 큰 아들 송인효.

사글세방 할머니가 채려준 밥상 앞에 앉아 있는 큰 아들 송인효. ⓒ 송성영


결국 고장 난 컴퓨터를 수리 센터에 맡겼는데 복구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드 디스크를 새로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출판 예정인 원고 자료는 물론이고 그동안 틈틈이 기록해 놓은 원고며 사진이 몽땅 날아가 버렸지만 다행히 공주 왕촌 학살지에 관련된 자료는 외장하드에 옮겨져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 어쩌겠습니까. 출판 예정인 원고는 프린트를 해 놓았기에 다시 정리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아빠 컴퓨터에 중요한 자료가 있으니 손대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그 약속을 어겨? 너 아빠하고 약속 어기고 사고 친 게 벌써 몇 번째여. 니가 선택해, 집 짓는 공사현장에서 아빠하고 생활하든지 아니면 혼자서 배낭 메고 여행을 떠나던지."

사고를 낸 당사자인 큰 아이 인효 녀석에게는 중요한 자료가 다 날아가 지난 1년 동안 고생한 것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됐다며 시치미 뚝 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녀석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습니다.

"아빠하고 고흥에 갈게."
"거기가면 틈틈이 책 읽어가며 아빠 일 도와야 혀."
"알았어."

녀석은 엄동설한에 홀로 배낭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질 않았던 모양입니다. 방송에 출연할 다큐멘터리 주인공을 섭외해 놓고 녀석이 독파해야 할 책 보따리를 싸들고 다시 고흥으로 향했습니다. 

녀석을 집 짓는 현장으로 데려 가는 데는 두 가지 노림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보금자리를 위해 거센 바람을 맞아가며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수고하는지 노동의 현장을 체험케 하고 싶었고 또 다른 이유는 방학 내내 공부를 하니 안하니 엄마 하고 티격태격 입씨름 하고 있을 게 불 보듯 빤하니 거기에서 잠시라도 해방시켜 주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유배지로 떠나는 죄인처럼 녀석은 기가 팍 죽어 내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평소 말 많은 녀석이 입을 닫고 있는 게 보기에 안쓰러워 말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미 지난 일이니까 다 잊어 버려, 고흥에 가서 아빠 일 거들어 줘 가며 여기저기 여행도 하고 그러자. 그 대신 너 아빠하고 약속 한 거 지켜야 혀."
"알았어, 먼저 데미안부터 읽을 게."


녀석의 얼굴이 금새 환해졌습니다. 녀석의 얼굴색이 밝아지는 것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비록 사고를 쳤지만 군소리 없이 아빠의 의견에 따라 주는 녀석이 고마웠습니다. 친구 하나 없는 바닷가 마을, 그것도 텔레비전은 물론이고 인터넷도 들어오지 않는 외딴 오지로 이사 가겠노라 했을 때 군소리 없이 동의해준 녀석이었습니다. 정든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는 심적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입니다.

내 마음자리에 따라 얼굴색이 달라지는 녀석.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를 떠나서 나는 녀석에게 무엇인가 싶었습니다. 평등한 인격체로서 나는 녀석에게 강요하는 측면이 더 많습니다. 돌이켜 보면 컴퓨터 자료가 날아간 것에는 녀석만의 일방적인 책임이 아니었습니다. 내 책임도 있었습니다. 비록 낡고 오래된 컴퓨터였지만 그걸 놔두고 따로 공사 현장에서 쓰겠다며 20만 원짜리 중고 노트북을 함부로 구입한 게 화근이 되었던 것입니다.

물질의 풍요는 그 어떤 소중함을 저버리게 합니다. 녀석은 '아빠에겐 노트북이 있으니 고장 나도 큰 걱정할 것없다'는 식으로 노트북을 단단히 믿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노트북이 없었더라면 비록 낡은 컴퓨터라곤 하지만 녀석은 함부로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결국 노트북 구입을 통해 녀석에게 화근의 씨앗을 뿌린 것은 바로 나였던 것입니다.   

공주에서 고흥까지 3시간 40분 거리. 점심을 먹고 출발해서 고흥에 도착하면 어둠이 깔리기 시작합니다. 목수들이 며칠 동안 휴가를 떠난 상태라서 집 짓는 현장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가늘고 긴 밧줄을 늘어 뜨려 묶어 놓았던 우리 집 개 곰순이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밧줄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이빨로 끊은 자국이 선명했습니다. 어둠 속을 헤매고 다니며 수없이 불러 대자 5분쯤 지나서 녀석이 저만치서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왔습니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녀석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이틀 동안을 내내 혼자서 지냈으니 얼마나 반갑겠습니까? 밧줄까지 끊고 주인을 찾아 해매고 다녔을 녀석이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어? 아빠 곰순이 목걸이가 없어? 누구한티 잽혀 갔다가 탈출해 나온 거 아녀?"
"아녀 밧줄을 이빨로 끊었는디."

인효 녀석 말대로 곰순이 녀석의 목줄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녀석을 임시로 목줄을 만들어 묶어 놓고 사글세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밥은 먹었소?"
"도시락 싸와서 먹었는디요."
"아따 잘 생겼네이. 우리 손자도 저 만한 게 두 개나 되는 디..."

사글세방 주인 할머니가 인효 녀석을 보더니 녀석 만한 손자가 두개나 된다고 하십니다.훗날 알게 된 것인데 사글세방 할머니뿐만 아니라 내가 만난 대부분의 이곳 노인들은 손자들을 숫자 헤아리듯 한 개 두 개로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한 두 끼 겨우 먹고 생활할 무렵 기아로 죽어나가는 손주들을 보면서 그렇게 불렀는지 모릅니다.

"아빠 배고파."
"할머니가 밥 주신다고 할 때는 가만히 있더니 도시락 먹은 지 한 시간도 채 안 됐는디 벌써 배고퍼?"
"컵라면이 먹고 싶어서."
"그려 나도 모처럼 컵라면 한번 먹어 보자."

먹고 나면 배고플 나이 열 여섯, 송인효 녀석은 눈 깜박할 사이에 컵라면 한 개를 비우고 나더니 함부로 방구를 뿡뿡 발사해 댑니다. '컴퓨터 바이러스 사건'의 중압감에서 완전히 해방된 모양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면을 하다 보니 얼굴이 뚱뚱 부어 있었습니다. 속도 쓰렸습니다. 몇년만에 먹어 본 컵라면 때문이었습니다. 집터에 들러 곰순이 녀석에게 밥을 주고 인효 녀석과 함께 도화면에 있는 마트에 들러 빵을 샀습니다.

녀석은 바나나 우유와 낱개로 포장된 빵 두 개를, 나는 중간치 크기의 우유와 열 개가 들어있는 호떡 빵 한 봉다리를 사들고 텅 빈 겨울 바다, 발포해수욕장 앞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작은 발바리 한 마리가 저만치서 눈치를 살피고 있었고 우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빵과 우유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그 빵은 얼마여?"
"어디 보자 이거? 한 줄에 1800원이라고 써 있네."
"야, 그렇게나 싸. 열 개에 2000원도 안하네.."

발바리에게 빵조각을 떼주던 녀석의 두 눈이 휘둥그레 졌습니다.

"호떡 빵 열 개가 니가 산 빵 두 개보다 싸지? 아빠가 예전에 취재여행 다닐 때 밥 대신 이걸로 해결했어."
"결혼 전에?"
"그래. 결혼 전에 카메라 가방 들쳐 메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산 기행도 다니고 섬기행도 다녔지. 돈 모아서 인도 갈 비행기 표 구하겠다고 열차 대합실 같은 데서 쭈그려 자면서 이 호떡 빵하고 우유 중간 크기 하나를 사서 하루를 먹었어. 너두 한번 먹어봐봐..."

녀석은 우유 한 통과 호떡 빵 한 줄로만 하루 세끼를 때웠다는 것에 놀라워하면서 호떡빵 한 개를 채 먹지 못하고 얼굴을 찡그립니다.

"맛은 별로네, 나중에 먹을게."
"아직 배가 안 고파서 그려 임마. 하루 세끼 먹는 게 쉬운 중 알어?."
"근디 왜 인도에 가질 않았어?"
"엄마 배속에 니가 생겨서 그렇지 임마."

a  컴퓨터 사건으로 고흥으로 유배온 송인효 녀석. 열 개에 천8백원짜리 호떡 빵을 먹다가 처음에는 '맛이 별론디.' 하더니 점심 때는 잘도 먹습니다.

컴퓨터 사건으로 고흥으로 유배온 송인효 녀석. 열 개에 천8백원짜리 호떡 빵을 먹다가 처음에는 '맛이 별론디.' 하더니 점심 때는 잘도 먹습니다. ⓒ 송성영


고흥 곳곳을 둘러보면서 점심 역시 남아 있던 호떡 빵으로 해결했습니다. 녀석은 배가 고픈지 맛이 별로라던 호떡 빵을 맛있게 잘도 먹어 치웠습니다.

혹여 녀석이 '컴퓨터 사건'으로 아빠에게 당한 심적 고통이 가슴에 맺혀 있을까 싶어 실컷 바다 구경을 시켜주고 저녁 무렵에서야 집 짓는 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곰순이 밥을 챙겨주고 터 앞에 널려 있는 냉이를 캐서 밥을 지어 먹기로 했습니다. 아내가 챙겨준 전자 밥솥에 쌀을 안치고 미리 뜯어 놓은 냉이에 된장을 듬뿍 넣었으나 맛이 영 싱거웠습니다. 간장은 물론이고 소금조차 넣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빠 소금 대신 냉이국에 컵라면 수프를 넣으면 어떨까?"

녀석 말대로 컵라면을 뜯어 수프를 넣었더니 그런대로 맛이 났습니다. 밥도 아주 잘됐습니다. 종이 박스로 밥상을 만들어 바닥에 쪼그려 마주 앉았습니다. 냉이 국에 사글세방 할머니가 건네 준 파래무침과 김치가 전부인 상차림이었지만 녀석에게는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배가 고팠던지 공기 밥 세 그릇을 뚝딱 비웠습니다.

밖에서는 어둠과 더불어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커피 잔을 들고 유리창 사이로 내리 꽂히는 빗줄기를 바라보았습니다. 지붕만 씌워져 있는 속이 텅 빈 집이었지만 창문이 달려있어 아늑했습니다. 배도 채우고 커피까지 마시고 있자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습니다.

문득 비를 막아 주고 있는 집이 동굴처럼 다가왔습니다.원시의 동굴 속에서 있다는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머리 속에서 현기증 같은 것이 일었습니다. 빗줄기에 빠져 들수록 빗줄기를 타고 먼 시원의 전생 여행을 떠나기라도 하듯 존재감이 아뜩하기만 했습니다. 물 한 방울이 바다와 이어져 있듯이 빗줄기가 시원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나는 종종 비가 내리면 동굴 속 유인원을 떠올려 보곤 합니다. 단지 고픈 배를 채우고 비를 피 할 수 있는 동굴 속 같은 공간 하나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유로운 상상에 빠져봅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부터 너무나 멀리 와 있습니다. 원시의 동굴과 목조주택 만큼이나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a  자재가 부족해 방 한 칸을 남겨 놓고 이틀에 걸쳐 윤구씨와 단둘이서 보일러 배관공사를 마쳤다.

자재가 부족해 방 한 칸을 남겨 놓고 이틀에 걸쳐 윤구씨와 단둘이서 보일러 배관공사를 마쳤다. ⓒ 송성영


다음날 휴가를 마친 윤구씨가 맨 먼저 도착했습니다. 둘이서 보일러 배관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나머지 목수들은 배관공사가 끝난 다음에 오기로 한 모양입니다. 애초에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보일러 배관공사는 단 둘이서 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맨 바닥에 두터운 스티로폼을 깔아놓고 그 위에 '와이어매시'라는 철사판을 깔았습니다. 그리고나서 내가 원형으로 말려 있는 PVC파이프를 풀어 놓으면 윤구씨는 그걸 일정한 간격에 맞춰 가는 철사 줄을 이용해 와이어매시에 단단히 고정시켰습니다. 

둘둘 말려 있는 PVC파이프를 풀어 놓는 작업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잘못 풀어 놓게 되면 꼬이게 됩니다. 본래 급히 서둘러 하는 일에 젬병인 나로서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손에 익숙지 않은 일을 그것도 느려 터진 인간이 집짓는 선수인 윤구씨 장단에 맞추려니 여러 차례에 걸쳐  PVC 선을 꼬이게 했습니다.

"아이구 형님, 그쪽 방향으로 풀면 안 된다니까 그러네요."
"글세말유, 이게 아닌디 자꾸만 선이 그쪽으로 풀려 버리네. 나중에 돈 벌이가 없으믄 윤구씨 따라 다니며 일당 벌이를 해볼까 했는디 썬찮아서 안 되겠쥬?"
"처음에는 다 그래요. 몇 번 하시다 보면 익숙해 질 겁니다."

윤구씨는 속 터져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인효 녀석은 차안에서 데미안을 읽고 있었고 나와 윤구씨는 그렇게 이틀에 걸쳐 종일 작업을 한 결과 안방과 아이들 방 그리고 거실에 다락방까지의 배관 공사를 마쳤습니다.

와이어 매쉬와 스티로폼이 부족해 아내가 그토록 원했던 민박용 손님방 보일러 배관 공사를 시작할 무렵 부천에 살고 있다는 박용진씨가 밤늦게 도착했습니다. 부천에서 서울을 거쳐 광주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고흥에 도착하는데 장장 8시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a  민박용 손님방에는 처가에 있던 큼직한 유리문을 달기로 했는데 윤구씨는 문틀을 짜는 인건비가 더 많이 들겠다고 한다.

민박용 손님방에는 처가에 있던 큼직한 유리문을 달기로 했는데 윤구씨는 문틀을 짜는 인건비가 더 많이 들겠다고 한다. ⓒ 송성영


다음날, 인효 녀석과 뒤늦게 집 짓는 현장에 나가보니 두 사람은 민박용 손님방 문틀을 짜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본래 목조주택의 문틀은 자재상에서 문짝과 맞춰 나오는데 처가에서 가져온 큼직한 두 쪽짜리 중고 유리문은 따로 문틀이 없었습니다.

"문틀 짜는 것도 큰 기술이겠네요."
"이거 문짝을 새로 짜서 해 넣는 것 보담 새것을 사는 게 인건비가 덜 멕혀요."
"재활용 한다고 괜히 일거리만 늘리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뭐 도와 줄 꺼 없어요?"
"이 일은 둘이서 하면 돼요."

인효 녀석을 데리고 모처럼만에 식당 밥을 먹어 볼까 싶어 슬그머니 빠져 나오는데 윤구씨가 불러 세웠습니다.

"저기 형님, 자재상에 가셔서 사 오실 것이 있는데요..."

마저 끝내지 못한 민박용 손님방 배관 공사를 해야 한다면 PVC 파이프, 스티로폼, 와이어 매시, 소켓 등을 사와야 한는 것이었습니다. 포두면에 있는 건재상 주인은 품목이 적어 트럭으로 배달해 주기에는 남는 게 없다 하면서도 물건을 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도 이제 포두 사람인디요."
"집 짓고 이사 오시나 보네요."

건재상 주인이 건네준 커피 한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살아온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는 지난 해 까지만 해도 2백마지기 농사를 지었던 농부였는데 최근에 건재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농사지어서 돈 벌기 쉽지 않은디, 돈 벌어서 건재상 마련했나 봐요?"
"그런 셈이죠."
"나도 농사를 좀 지으려고 하는 디." 
"농기계는 절대로 사지 마세요. 빚만 지게 되니께요."
"농기계는 잘 몰라요. 농사도 많이 짓는 것도 아니고, 요즘은 다들 기계로 짓다보니 소작하기도 힘들고."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전 9시가 넘어서고 있는데 여태 아침을 먹지 못했습니다. 인효 녀석에게 물으니 배는 고프지 않다고 합니다. 자재를 구입하고 나서 간단하게 빵과 우유를 사먹고자 했는데 그것도 사먹지 못했습니다. 자재를 다 옮겨 실은 트럭 기사 아저씨가 마을회관 앞에서 기다리겠노라며 먼저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집 짓는 현장에 스티로폼과 와이어 메시 등을 내려놓은 기사 아저씨가 명함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나중에 집들이 행사가 있으면 불러 주세요"
"예. 무슨 행사요?"
"이벤트 같은 건디요."

번듯하게 집을 짓는 사람들은 집들이 행사 같은 것을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우리 집도 그렇게 번듯하게 보였나 봅니다. 우리가 한적한 곳에 별장 같은 것을 짓고 있는 돈께나 있는 부자인줄 아는 모양이었습니다. 부끄러워 낯짝이 화끈거렸습니다.

"아니, 거시기 우리는 그냥, 땅 한 평 없이 시골에 살다가요......"

사람들을 만나면 고해성사하듯 푼수처럼 주절주절 늘어놓듯이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분수에 넘치는 집을 짓고 있다고 말했더니 기사 아저씨는 믿기지 않는 모양입니다.

"행사가 있으면 꼭 불러 주세요이."

재차 이벤트 행사가 있으면 불러 달라는 기사 아저씨를 미안한 마음으로 보내놓고 나자 윤구씨가 물품 잘못 사왔다고 합니다. 다시 포두면으로 달려갔습니다. 25미리짜리 PVC 파이프를 사와야 했는데 20미리짜리를 사왔던 것입니다. 소켓도 잘못 사왔다고 합니다.

"PVC 파이프는 잘라서 팔기 때문에 본래 반품해 주지 않는데, 할 수 없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서로 살아온 얘기를 나누기도 했던 건재상 주인은 25미리 파이프로 바꿔 줬습니다. 윤구씨가 원하는 소켓은 포두면에서 살수 없어 고흥 군내에서 구입했습니다. 얼빵한 잔심부름꾼인 나는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낯설기 만한 건축자재들이었기에 일일이 적어 주지 않으면 잘못 사오기 일쑤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인효 녀석과 빵과 우유를 사먹었습니다. 인효 녀석은 여전히 바나나 우유에 야채 찐빵을, 나는 콩 우유에 팥 찐빵으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했는데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고 으스스한 한기까지 몰려왔습니다.

저녁은 윤구씨와 함께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했는데 생선반찬이 거의 대부분이라서 자장면 집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인효 녀석이 비린내 나는 생선을 입에 대 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장면 집에서 나와 담배를 피우려 하는데 라이터가 없어서 부러 오래된 구멍가게를 찾았습니다. 철제 장식장에 먼지가 뽀얗게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달랑 라이터만 사는 것이 미안해 담배 한 갑을 더 사려고 하는데 인효 녀석이 먼지 묻은 껌 한통을 집어 올립니다. 자동차 안에서 껌을 씹던 녀석이 투덜거립니다.

"이거 사과 맛인디 그냥 뚝뚝 부러지네, 어? 유통기간이 1년이 훨씬 넘게 지났잖어."

다음날 아침부터 두 사람은 화장실과 다용도실의 내부 벽 마감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몸살기가 몰려와 일을 거들지 못하고 내내 차안에 있다가 추운 날씨에 일하는 사람들 보기에 미안해 온몸을 추스려 밖으로 나왔습니다. 집 머리 위에는 구름이 수상하게 떠 있고, 날씨조차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습니다.

a  으시시한 몸살기운이 몰려 오면서 집 머리 위로는 찬바람에 검은 구름이 수상하게 몰려 다니고 있었다.

으시시한 몸살기운이 몰려 오면서 집 머리 위로는 찬바람에 검은 구름이 수상하게 몰려 다니고 있었다. ⓒ 송성영


"힘드시면 들어가 쉬세요. 오늘은 도와주실 거 없으니까요"

목수들에게 따끈한 커피 한 잔씩을 타 주고 인효 녀석과 사글세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카메라 가방과 노트북을 양손에 챙겨들고 너른 마당으로 들어서다가 살얼음 바닥에서 미끌, 노트북과 카메라를 챙기느라 그만 뒤로 발라당 나자빠지고 말았습니다. 생각도 없이 걷다가 넘어져서 그런지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습니다. 엉덩이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멀쩡하게 털고 일어서 몸살기를 달래기 위해 보일러를 팡팡 돌려 이부자리를 깔았습니다. 뜨끈한 방바닥에 눕자마자 가슴팍이 뜨끔거렸습니다. 몸의 기운들이 가슴팍으로 몰려와 갑자기 정지하듯 숨이 막혀 왔습니다. 목구멍까지 숨이 턱턱 막혀왔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숨 고르기를 했습니다. 어떤 일이든 지나치면 탈이 나기 마련입니다. 분수에 넘치는 집짓기는 하루 세 끼 이상을 먹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처럼 다가왔습니다. 하루 세 끼 먹기도 힘든 일인데 그게 얼마나 큰 욕심인가 싶어 인효 녀석이 듣거나 말거나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인효야, 하루 세 끼 먹는 거 참 힘들지 않냐?"

그건 바로 내 자신을 향한 묻음이기도 했습니다.
#하루 세 끼 먹는 일 #보일러 배관작업 #문틀 작업 #잔 심부름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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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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